▲ 영국 산업안전보건청 온열질환 체크리스트
HSE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기후재난 대책
#1 성공회대학교는 2023년 여름, 냉난방기를 틀지 않는 '에코주간'이라는 미명하에, 2주간 학교를 폐쇄했다. 하지만 곰팡이가 슬 것을 염려하여 빈 강의실의 에어컨을 켰다는 그 '에코주간'은 청소노동자와 교직원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용도로 추진되었다. 그달의 청소노동자 임금은 110만 원이었다. 2024년에도 성공회대학교는 일주일간 에코주간을 강행했다. 일방적으로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해 비판받았던 걸 의식이라도 한 듯, 2024년에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투입했다. 이번에도 청소노동자들은 강화된 노동강도를, 출근하지 못함에 따른 50여만 원의 임금 삭감을 강제당했다.
#2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96시간 내 배달 200건 완료 시 18만 원 보상'. '117시간 내 배달 260건 완료시 30만 원 보상' 등 배달노동자에게 추가 보상금을 미끼로 목숨을 걸고서라도 배달을 하라고 부추긴다. 라이더유니온 이상진 부산지회장은 "배달플랫폼은 한 치의 손해는커녕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인하된 기본 수수료를 기반으로 배달노동자에게 더 많은 배달을 요구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선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미션을 달성할 수밖에 없다"며 분노했다. 폭염에서도 노동자 간 경쟁과 성과 달성의 속도전을 위해서 올해에만 벌써 16명의 배달노동자가 길 위에서 사망했다.
#3 전국 곳곳에 70여 개의 쿠팡물류센터가 있지만 그중 냉난방 설비가 되어있는 곳은 10~15%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도 경악스럽지만, 정부의 폭염 대응 규칙인 체감온도 '33도'에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행태는 더더욱 문제적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물류센터에서조차 작업 구역을 세분화해 온도계를 설치한 후 동일한 작업장임에도 구역에 따라 33도보다 0.2도가 낮다는 이유로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기도 하고, 사람에게 향해야 할 에어컨을 온도계를 향해 설치한 물류센터도 있다고 한다.
사업장마다 업종과 직종, 규모와 환경이 다른 만큼 노동자들이 주로 맞닥트리는 위험 또한 달라진다. 그러나 이것이 사업주의 책임 회피를 위한 명분이 될 순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사업장 특징에 맞게 온습도 등 작업환경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온열질환 등 예방을 위한 자체 규정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현장 노동자의 힘과 통제권은 너무도 중요하다.
노동과정 통제로 기후위기를 멈추고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작업중지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그럼에도 더 예측 불가능해질, 자본주의가 심화시키는 기후재난의 시대. 노동자 불건강을 멈추기 위해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 노동자들이 천천히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 확보가 중요하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위험 상황에 노동자가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그 자체로 일터에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특히나 생산량과 생산방식에 대한 결정권은 지금까지 자본의 고유 권한처럼 인식돼 왔다. 이에 제동을 거는 노동자 작업중지권의 발동을 통해 탄소집약적인 산업의 공적 통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노동자 운동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과 "경제 민주주의"가 쟁취되었을 때의 영향에 관한 연구
[4]는, 노동자의 생계와 회사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
(시장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화폐의 흐름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 일과 휴가 일정, 작업 속도, 고용과 해고, 작업 분배, 사용된 기술과 도구, 제품의 품질과 수량, 이윤 분배, 투자 결정 등을 포함)에 노동자가 집단으로 참여할 때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극한의 기후재난을 비롯해, 일터의 위험을 예방적으로 통제하고, 현장의 기준을 이윤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에 맞출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작업중지권까지, 보다 폭넓은 의미의 '작업중지권'이 필요하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근골격계 집단 산재 요양 투쟁을 통해 작업장 민주주의를 강화해 왔고, 노동강도 강화 및 구조조정 저지를 위해 싸워왔다. 마찬가지로 작업중지권 확보 투쟁을 매개로 작업장 민주주의를 확대하며, 노동자의 몸과 삶을 기준으로 생산방식과 속도를 결정하는 운동을 보다 많은 현장에서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멈추는 방법이자, 기후위기시대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해 요구되는 유일한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전-사회적으로 누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윤이 아닌 노동자의 몸과 삶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생산 체계를 정착시킨다는 것은 곧 사회적 필요에 따라 사회의 시간표를 새롭게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시간표를 재편할 수 있고, 재편해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전체 공동체에 우선으로 충족돼야 하는 필요가 무엇인지, 사회의 잉여 자원을 어느 부문에 우선 투입할 것인지, 만약 인간의 필요 충족과 생태환경의 보전이 충돌한다면 이를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지 등등 경제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흐름이 무엇인지"
[5] 등을 충분히 논의, 결정할 수 있는 역량과 힘을 노동자들은 이미 갖고 있다. 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충분히 발휘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실천과 그 경험의 축적이 관건이다. 다양한 몸과 마음을 지닌 노동자들과 만나 고민을 나누는 것을 시작으로 '기후정의와 노동자 건강권 실현'의 길을 함께 찾아 나서자.
각주
[1] 질병관리청 2025년 온열질환감시체계 운영결과(5.15~8.26)
[2] 질병관리청 2024년 온열질환감시체계 운영결과(5.20~9.30)
[3] '폭염작업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의무화…17일부터 시행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46031
[4] Ryan Gunderson. "Work time reduction and economic democracy as climate change mitigation strategies: or why the climate needs a renewed labor movement" Journal of Environmental Studies and Sciences (2019) 9:35–44
[5] 사회주의를향한 전진. 사회주의기초학습 8강. 기후위기와 민주적 계획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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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기후재난 시대, 노동자의 몸과 삶을 기준으로 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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