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한강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 배경 위에서 다시 되새긴 그날

등록 2025.09.08 14:29수정 2025.09.0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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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의 앞 표지다.
한강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의 앞 표지다. 이돈삼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을 묘사하고 있다.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다 죽은 소년이 주인공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아들 잃은 어머니도 등장한다. 국가가 얼마나 처참하게 주권자 국민을 학살했는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소설 〈소년이 온다〉 17쪽

1980년 5월 광주는 신군부의 반란에 맞섰다. 계엄군 탈을 쓴 공수부대는 한낮에 시민을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쐈다. 광주는 통곡의 바다가 됐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국가 폭력에 광주는 패배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승리했다.


 전일빌딩은 80년 당시 광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10층 높이에서 시민들의 항쟁과 공수부대의 만행을 다 지켜봤고, 시민군의 마지막 모습도 목격했다. 5?18의 목격자인 셈이다.
전일빌딩은 80년 당시 광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10층 높이에서 시민들의 항쟁과 공수부대의 만행을 다 지켜봤고, 시민군의 마지막 모습도 목격했다. 5?18의 목격자인 셈이다. 이돈삼

 전일빌딩 10층에 만들어진 헬기 사격으로 인한 탄흔 모형. 탄흔이 남은 창밖으로 광주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전일빌딩 10층에 만들어진 헬기 사격으로 인한 탄흔 모형. 탄흔이 남은 창밖으로 광주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이돈삼

소설 속 그 길

광주에는 소설 속 소년이 걸었던 길이 있다. 상무관, 도청, 민주광장, 금남로, 전일빌딩, YMCA 등이다. 보안부대, 상무대 등도 여기에 속한다. 작가 한강이 걸었던 길도 있다. 중흥동과 효동초등학교 일대, 전남대학교, 5.18민주묘지 등이다. 광주 시내 곳곳이 소설 속 현장이고 배경인 셈이다. 지난 8월 31일 관련 현장을 찾았다.

소설도 45년 전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소년을 통해 지금 우리를 돌아보고, 앞날을 그리게 한다.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삶과 직결된다. 소년이 걸었던 길을 따라간다. 공간도 소설과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상무관은 '소년' 동호의 공간이다. 한강 작가가 동호의 영혼과 처음 만난 곳이다. 주인공 동호는 여기에서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을 적고, 확인했다. 동호가 상무관에 온 건, 친구 정대를 찾아서였다. 하지만 동호는 정대가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상무관은 희생자 주검을 임시 안치하는 공간으로 쓰였다. 시민들은 주검을 보며 분노의 눈물을 삼켰다. 민주화 의지도 불태웠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주검을 임시 안치한 옛 상무관. 소설 속 주인공 동호의 활동 공간이었다. 복원공사를 시작하기 전 모습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주검을 임시 안치한 옛 상무관. 소설 속 주인공 동호의 활동 공간이었다. 복원공사를 시작하기 전 모습이다. 이돈삼

 5.18민주화운동의 중심 공간이던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 일대. 전일빌딩245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5.18민주화운동의 중심 공간이던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 일대. 전일빌딩245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가 있는 민주광장은 항쟁 중심지였다. 동호가 은숙, 선주와 만난 곳이다. 도청은 5월 27일 새벽, 공수부대에 맞선 시민군의 최후 항전지이기도 하다. 5.18민주광장은 시민들이 분수대를 연단 삼아 집회를 열며 항쟁 의지를 불태운 곳이다.

"여자의 선창으로 애국가가 시작된다. 수천 사람의 목소리가 수천 미터의 탑처럼 겹겹이 쌓아올려져 여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린다. 무겁디 무겁게 올라가다가 절정에서 결연히 쓸려 내려오는 그 곡조를, 너도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소설 〈소년이 온다〉 8쪽

시민들이 부른 노래는 애국가와 군가였다. 군인에 의해 죽은 시민 주검 앞에서도 애국가를 불렀다. 폭력 진압에 밀려 잠시 흩어졌다 다시 모이면서 부른 노래도 애국가와 훌라송이었다. 시민들은 '진짜사나이'를 부르며 계엄군에 맞섰다. 5월 21일 오후 1시, 비무장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도청 앞 집단 발포 신호탄도 애국가였다.


 광주 금남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날마다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에 맞선 항쟁의 거리다.
광주 금남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날마다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에 맞선 항쟁의 거리다. 이돈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년이 온다' 특별전. 전시는 소설을 중심으로, 80년 5월 광주의 진실과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년이 온다' 특별전. 전시는 소설을 중심으로, 80년 5월 광주의 진실과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이돈삼

금남로는 시민들이 모여 계엄군에 맞선 항쟁의 거리다. 5월 20일 저녁엔 버스를 앞세운 차량 시위가 펼쳐졌다. 전일빌딩은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적십자병원과 전남대병원에는 부상자 치료를 위한 시민의 헌혈 행진이 이어졌다.

선주가 동호의 죽음을 확인한 가톨릭센터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 탈바꿈했다. 지금 <소년이 온다> 특별전도 열리고 있다. 오는 10월 19일까지 계속될 전시는 소설을 중심으로,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과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5·18자유공원 풍경. 80년 당시 헌병대 본부사무실과 내무반, 식당, 영창, 법정 등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5·18자유공원 풍경. 80년 당시 헌병대 본부사무실과 내무반, 식당, 영창, 법정 등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이돈삼

505보안부대는 계엄군의 광주의 현장 지휘본부였다. 광주학살 시나리오를 짜고 행동으로 옮겼다.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한 곳도 여기다. 내란음모 짜맞추기에는 갖은 폭력과 고문이 동원됐다.

상무대에는 전남북 계엄분소와 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됐다. 합수부 수사관들은 시민을 곡괭이 자루로 때리고, 송곳으로 찔러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상무대는 무고한 시민 때려잡는 '인간 도살장'이었다. 옛 상무대 헌병대 자리에 5.18자유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국립5.18민주묘지 전경. 1997년 망월동 옛 묘역의 주검이 옮겨졌다.
국립5.18민주묘지 전경. 1997년 망월동 옛 묘역의 주검이 옮겨졌다. 이돈삼

 망월동 5.18묘역. 80년대 ‘금단의 땅’으로 만든 신군부에 맞서 시민들은 묘역을 찾고, 참배하는 일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식했다.
망월동 5.18묘역. 80년대 ‘금단의 땅’으로 만든 신군부에 맞서 시민들은 묘역을 찾고, 참배하는 일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식했다. 이돈삼

소년이 이끄는 빛 속의 길

작가 한강이 찾아간 국립5.18민주묘지는 학생기록부 흑백사진으로 남은 소년의 안식처다. 언덕 너머에 '망월동묘역'도 있다. 1980년 5월 희생된 주검이 묻힌 곳이다. 지금은 이한열, 박태영, 김남주 등 1980년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들이 잠들어 있다. 민족민주열사묘역이다.

작가가 동호의 영상 속 흔적을 찾으려고 간 전남대학교는 5.18민주화운동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이다. 5월 18일 학교로 가던 학생과 출입을 막는 공수부대의 충돌이 도화선이 됐다. 학생 시위에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민중항쟁으로 변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전남대학교 정문. 1996년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전남대학교 정문. 1996년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돈삼

 소설 속 주인공 동호의 실재인물인 고 문재학 열사가 80년 당시 살았던 옛 집터. 지금은 재개발돼 중흥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동호의 실재인물인 고 문재학 열사가 80년 당시 살았던 옛 집터. 지금은 재개발돼 중흥도서관이 들어서 있다. 이돈삼

동호의 실재인물인 고 문재학 열사가 산 곳은 지금의 중흥도서관 부근이다. 엄마(김길자) 손 뿌리치고 돌아섰다가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 소년의 옛 집터다.

"마지막 날에 내가 너를 찾아갔을 적에, 네가 그리 순하게 저녁에 들어갈라요, 말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으까이. 나는 안심을 하고 집에 가서 느이 아부지한테 그랬어야. 여섯시에 문 잠그고 집에 온다요. 다 같이 저녁 묵자고 약속했소." -소설 〈소년이 온다〉 184쪽

<시집, 1979년, 한강>을 엮은 어린 한강은 옛 호남전기(구 호전) 인근에 살았다. 집은 헐리고, 빈터로 남아있다. 여덟 살 한강은 일상의 기억을 연필로 또박또박 써 내려가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한강이 3학년까지 다닌 효동초등학교에는 작가의 소설 책 표지를 활용한 건반 모양 조형물이 설치됐다.

 어린 한강 살았던 옛 집터. 옛 호남전기(구 호전) 인근이다.
어린 한강 살았던 옛 집터. 옛 호남전기(구 호전) 인근이다. 이돈삼

 한강 작가가 펴낸 소설 책 표지를 활용한 건반 모양 조형물. 어린 한강이 3학년까지 다닌 효동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다.
한강 작가가 펴낸 소설 책 표지를 활용한 건반 모양 조형물. 어린 한강이 3학년까지 다닌 효동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1980년 5월, 숱한 정대와 정미가 사라졌다. 은숙과 선주, 진수와 교대 복학생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을 살지 못하게 했다. 동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호는 그들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현재로 호명됐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 213쪽

소년은 그늘이 드리운 쪽으로 걸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볕이 들고 꽃 핀 쪽으로 향했다. 볕이 든 길로 향하는 그의 곧고 투명한 양심이 우리를 밝은 쪽으로 이끌고 있다. 소년은, 광주는 그렇게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광주 농성광장 지하철역. 역사에 한강, 김대중 등의 얼굴이 조형돼 있다.
광주 농성광장 지하철역. 역사에 한강, 김대중 등의 얼굴이 조형돼 있다.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매일에도 실립니다.
#소년이온다 #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소년동호 #518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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