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2등이라던 아이, 1등이 되었다

책상이 아닌 골목에서 얻은 성적표

등록 2025.09.08 14:02수정 2025.09.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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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1

2학기 두 번째 토요일, 교대에서 진행된 '청소년 체육성장 프로젝트' 마지막날이다.
첫날처럼 인바디, 체격, 체력 측정을 했다. 두 달 사이 담이는 2cm 크고, 2kg 늘었다. 윗몸 일으키기 1분 58개, 제자리 멀리 뛰기 190cm. 개근상에 우수 참여상까지 받았다. 놀라운 성과에 담이도 환하게 웃었다.

2개월 전 수업 첫날, 담이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어찌 그리 기분이 좋으냐 하니 자기가 다 1등을 했다고 한다. 무얼 물어도 늘 스스로를 2등이라고 말하던 담이가 1등이라니 내 귀가 솔깃했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늘 마음 한켠 애가 쓰였는데,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보니 사연을 몰라도 반갑기만 했다. 들어보니 체력 측정에서 자기 기록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윗몸일으키기를 몇 개 했길래?"
"1분에 58개, 선생님이 내가 1등이래."
"오? 1초에 1개씩 했다는 건데, 대단한데? 멀리 뛰기는?"
"180cm"

그런데 정작 나는 놀라면서도 사실을 명시하려고 했다. "네가 했을 때까지만 1등이었다는 말이지. 다른 분반까지 합치면 1등이 아닐 수 있지." 뱉고 보니 참 적절치 못한 말이다. 다행히 다음 문장은 삼켰다. '너무 우쭐하지 마. 그러면 친구들이 싫어해.' 밤이 되니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는 말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같이 다닌 친구 어머니가 "담이는 운동 정말 좋아하네요, 운동 시켜도 되겠는데요?"라고 했을 때도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시골에서 옛날 우리 어릴 때처럼 뛰어다니니까, 그냥 체력이 있는 거에요. 운동신경은 없어요."

사실과 틀림없는, 그야말로 '정확히 말하기 대회' 같았다. 부모가 자녀에게 할 말은 정확한 분석이나 사실 적시가 아니다. 그런 것이 필요한 때가 있다 하더라도, 최소한 지금은 아니었다. 재미도, 보람도, 누구에게도 유익하지 않은 말이었다.


부족한 점부터 찾아 스스로를 괴롭히는 건 나의 단점이다. '아이의 미래는 지금 부모의 모습'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자신의 부족함에 사로잡혀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사는 일이다. 소란한 낮에 지나쳐 버린 나의 모난 습성이, 조용한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래도 이 밤 덕분에 조금 더 반듯해질 것을 안다.

동시에 약간의 안심을 찾은 날이기도 했다. 이제 와 학습을 소홀히 여긴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의 결과는 그 불안을 진정시켜 주었다. 담이는 운동에 특별히 재능이 있는 아이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성과를 보인 것은 시골에서, 우리 세대의 어린 시절처럼 몸으로 뛰어놀며 자란 덕분이다. 지난 유년기를 책상에서 보냈는지, 골목을 뛰어다녔는지가 그대로 이 체력 성적표에 드러났다. 성적표라기 보다 우리의 생활 기록부 그 자체다. 부모로서 내 선택이 잘못이 아니었다는 위안이 되었다.


담이는 이 수업을 무척 좋아했다. 끝을 아쉬워하며, 다음에도 이런 수업이 있으면 꼭 신청해 달라고 재차 당부한다. 담이는 정말로 무엇이 그렇게 좋았을까.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건, 아직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이의 성장 1mm, 1mm를 내가 다 알지 못한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2cm가 훌쩍 커 있을 뿐이다. 눈앞의 한 순간만 보고, 다 아는 듯 평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새삼 부끄럽다. 담이가 무슨 씨앗으로 우리에게 왔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 꽃씨 그대로 펼쳐지도록,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양 함부로 단정하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온전히 알 수 없어도 괜찮다.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작일 테니까. 아이들이 저마다, 날마다 자라듯 엄마도 자라는 중이다. 오늘은 이것만 기억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저마다, 날마다 잘 자라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엄마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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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얻는 힘과 지혜를 동경하며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를 펴냈다. 두 아들(초1,4학년)을 키우며 늘 흔들리면서도 읽고 쓰고 나누길 멈추지 않는, 앎을 삶으로, 삶은 예술로, 좋은 건 다 하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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