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9.10 11:25수정 2026.03.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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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은 시어머님 9주기 기일이었다. 남편의 회사 일이 바빠 당일에 찾아뵙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엄마한테 왔다가 갑니다. 다들 바쁘시니 올해는 제가 대표로 온 것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형님에게 제가 대신 왔다 갔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바쁘더라도 건강 꼭 챙기라고 전해주세요."
막내 시동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알릴 수도 없을 만큼 바빠 밤늦게야 겨우 전달했다. 남편은 겹벌이 중이다. 책임감과 사명감이 투철한 남편은 궂은일은 본인이 도맡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일하다 보니 하루를 온전히 쉬는 날이 잘 없다. 오전에 쉬면 오후에 일해야 하고 오후에 쉬면 오전에 일해야 하니, 나들이를 가는 것은 몇 해 동안 꿈속의 일이었다.
며칠 전인 지난 7일은 모처럼 남편이 하루를 통으로 쉬는 날이었다. 오전부터 분주하게 채비를 마친 뒤 부산 추모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이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대구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고의 데이트 시간이다. 늘 어머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다. 어머님과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고 남편과 같이 있어서 좋다.
어머님을 뵙고 온 9월의 어느날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고 처음 4년 동안은 집에서 제사를 모셨다. 그 이후에는 삼형제가 의논한 끝에 아버님과 어머님 두 분을 한 날에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어머님 기일은 한여름인지라 추모공원에서 간단히 지내게 된 것이다. 매일 집에서 가족들을 맞이하고 음식을 준비하던 나에게는 추모공원에 가는 것이 신나는 일이었다.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이, 그곳이 어머님을 만나는 곳이라 더 설레고 좋았다.
출발하기 전 남편이 막내 시동생에게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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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머니 뵈러 출발하려고 하는데 끝나고 밥이나 같이 먹자. 우리가 김해로 갈게."
"예, 형님, 4시쯤 오시겠네요. 저희 집으로 오세요. 아, 그리고 추모공원 가실 때 가족 사진을 찍어서 가세요. 사진을 편집해서 기존 명패와 함께 부착해 준답니다."
우리 부부는 어머님 칠순 때 찍었던 가족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가지고 갔다. 가는 길에 청도 휴게소에 들러 아침 겸 점심으로 떡볶이와 빵을 간단하게 먹었다. 어머님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 이야기와 추억에 담긴 보따리를 풀며 부산 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추모 공원 부산
황윤옥
도착하자마자 가족사진을 신청하기 위해 상담실로 갔다. 추모용 세라믹 가족사진을 붙여준다는 배너 광고가 있었다. 일반 사진 1컷은 7만 7000원이고 2컷~4컷은 9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에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신청했다. 상담 직원이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말했다.
"사진 원본은 안 가져오셨나요? 사진에 빛이 생겨서 곤란하겠는데요. 원본을 가져오시면 스캔해서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사진을 가져오시면 해 드리겠습니다."
요즘엔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는 세상이다. 사진으로 찍어간 것이 이렇게 당황스러울 줄은 몰랐다. 가족사진을 부착하려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가족사진은 우리 집에만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의 일이 좀 한가해지면 다시 추모공원으로 데이트를 가야 할 것 같다. 어머님을 한 번 더 뵐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어머님을 뵈러 갔다. 주변에 가족사진이 부착된 고인은 몇 되지 않았다. 아마 이 일을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사진 속의 어머님은 여전히 다정하게 웃고 계신다. 몸도 풍성하시고 마음의 품도 여유롭던 때였다. 어머님은 65세에 암이 발병한 어머님은 몇 번의 수술과 항암을 견뎌내시고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 어머님의 사진은 그때 사진이라 건강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칠순 잔치를 하고 2년 후 급작스럽게 재발하여 손쓸 새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님, 저희 왔어요. 그동안 잘 계셨죠? 아범이 바빠서 기일에 못 왔네요. 저희 잘 보고 계시죠? 아범 하는 일 잘 되게 해 주시고 가족 모두 건강하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저도 글을 잘 쓸 수 있게 어머니께서 지켜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저 요즘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도 몇 번 채택되었어요."
내가 어머님께 조잘거리는 동안 남편은 말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으리라 생각했다.
어머님은 살아 생전 큰며느리인 내가 상을 받아오는 것을 당신 일처럼 기뻐하셨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을 때나 시 낭송 대회에서 상을 탔을 때도 축하한다는 말씀을 하고 또 하셨다.
부산 추모공원에서 40분을 운전해 김해에 있는 막내 시동생네로 갔다. 오래간만에 보는 형제는 그간의 안부를 물었고, 동서와 조카는 맛있는 음식을 내왔다. 여기 왔으면 꼭 먹어보아야 한다며 해물찜도 사와서 같이 먹었다. 형제 우애가 좋으니 어머님 뵙기에도 좋고 내가 보기에도 뿌듯했다.
어머님 만나러 가는 길에 남편과의 데이트도 행복했고, 가족을 만나는 일도 가슴 벅찼다. 어머님께 가족사진을 선물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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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가끔 음식 이야기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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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기일 맞아 큰며느리가 전한 '글쓰기'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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