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이 가장 맛있어요" 아이의 말에 깨달음 얻었다

[주장] 강릉 물 대책엔 왜 빗물이 빠졌을까?

등록 2025.09.10 11:45수정 2025.09.1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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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은 지금 물이 부족한 도시가 되었다. 가뭄으로 오봉저수지는 말랐고, 소방차와 헬기까지 동원해 외부에서 물을 실어와 정수장에 퍼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해수담수화 장기 대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일부 언론은 "강릉 해수담수화 본격 검토"라는 제목까지 내걸었다.

그런데 그 대책 어디에도 '빗물'은 없다. 물은 하늘에서 시작되는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장 순수한 물인 빗물은 왜 대안에서조차 배제된 것일까?

"빗물이... 달아요"라고 말한 아이

2014년, 베트남 중부 쿠케 마을의 유치원. 롯데백화점의 CSR 후원으로 서울대학교와 환경재단이 함께 만든 빗물 식수화 시설의 준공식이 열리던 날이었다. 한 유치원 어린이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베트남의 유치원 어린이가 빗물을 마시면서 하는 말-빗물이 달아요 2014년 베트남 중부 쿠케 마을에 빗물식수화 시설을 준공하면서 유치원 어린이가 빗물을 마신다음 한 말- 빗물이 달아요. 이 프로젝트는 롯데백화점의 CSR 활동의 하나로 환경재단(최열 이사장)과 서울대학교가 함께 만들었다.
▲베트남의 유치원 어린이가 빗물을 마시면서 하는 말-빗물이 달아요 2014년 베트남 중부 쿠케 마을에 빗물식수화 시설을 준공하면서 유치원 어린이가 빗물을 마신다음 한 말- 빗물이 달아요. 이 프로젝트는 롯데백화점의 CSR 활동의 하나로 환경재단(최열 이사장)과 서울대학교가 함께 만들었다. 한무영

"빗물이... 달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수많은 사람이 빗물을 마시며 "부드럽다"거나 "깔끔하다"고 말했지만, '달다'는 말은 아이의 순수한 감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단물'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당분이 있는 물이 아니라, 센물(경수)에 대비되는 순하고 목 넘김 좋은 물, 바로 빗물이었던 것이다.

서울 보덕사, 그리고 '지장수'


서울 관악산 자락의 사찰 보덕사. 기자는 이곳에 200리터급 빗물식수 저장조 4개를 연결한 시설을 설치했다.

관악산 보덕사 빗물식수화 시설 2025년 8월 설치한 200리터 짜리 4개의 통을 직렬로 연결하여 빗물을 받으니 탱크를 지날수록 정화된다. 마일리지가 짧은 물이라 처리할 대상이 매우 적어서 간단한 침전처리만으로도 음용수 수질기준을 만족시킨다.
▲관악산 보덕사 빗물식수화 시설 2025년 8월 설치한 200리터 짜리 4개의 통을 직렬로 연결하여 빗물을 받으니 탱크를 지날수록 정화된다. 마일리지가 짧은 물이라 처리할 대상이 매우 적어서 간단한 침전처리만으로도 음용수 수질기준을 만족시킨다. 한무영

장맛비가 내린 날, 기자는 스님께 말했다. "이 물로 커피를 끓여주실 수 있나요?" 스님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부터 절에서는 차를 마실 때 항아리에 받아 둔 빗물, 즉 '지장수'를 씁니다. 땅이나 강보다 오염이 적고, 맛도 깔끔해요."


빗물로 만든 커피 관악산 보덕사의 스님이 빗물로 만든 커피를 대접한다. 가장 마일리지가 짧은 빗물로 만든 커피나 차는 다른 이물질이 적어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빗물로 만든 커피 관악산 보덕사의 스님이 빗물로 만든 커피를 대접한다. 가장 마일리지가 짧은 빗물로 만든 커피나 차는 다른 이물질이 적어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무영

<동의보감>에도 빗물은 이렇게 기록돼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맑고 순수한 물로, 땅의 흐린 기운이 섞이지 않아 약재의 효능을 높이고, 늙지 않게 한다." 이 오래된 지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단지 잊고 있을 뿐이다.

미얀마 고등학생 35명의 선택

가장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고등학생들과 함께 생수, 일반 정수, 빗물을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비싼 생수를 고른 학생: 7명, 일반 생수를 고른 학생: 11명, 빗물이 가장 맛있다고 선택한 학생: 17명

미얀마 Genius 고등학교에서 행한 빗물블라인드테스 트A는 비싼 생수, B는 빗물, C는 저렴한 생수 ,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 A=10, B= 17, C= 13, 빗물이 가장 맛있는 것으로 투표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실험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미얀마 Genius 고등학교에서 행한 빗물블라인드테스 트A는 비싼 생수, B는 빗물, C는 저렴한 생수 ,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 A=10, B= 17, C= 13, 빗물이 가장 맛있는 것으로 투표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실험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한무영

사람들은 두 번 놀랐다. "빗물을 마신다고?" 그리고 "그게 제일 맛있다고?" 맛은 기호의 영역이지만, 편견은 실험 앞에서 무너졌다.

병물은 믿고, 빗물은 왜 못 믿나?

우리는 병에 든 물은 기꺼이 돈 주고 마시면서, 하늘에서 떨어진 물은 두려워한다. 공짜이기 때문에 불안한 걸까? 어릴 적 교육받은 산성비 공포, 대기오염, 미세먼지에 대한 집단 기억이 '빗물은 더럽다'는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져버렸다.

그러나 정수장에서 나오는 물도, 강이나 댐에 저장된 물도, 그 시작은 모두 빗물이다. 오히려, 깨끗한 날의 지붕에 떨어진 빗물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시작되며, 적절한 저장과 단순한 정화만으로도
수돗물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한 물이 될 수 있다.

신뢰의 문제 — 물보다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인식

"정말 마셔도 되는 물인가요?" 이 질문은 물의 성분이나 정화 장치에 대한 의심이라기보다는,
그 물을 건네는 사람, 그 물을 마시는 사회에 대한 신뢰를 묻는 말이다. 빗물은 오랜 시간 동안 '마시면 안 되는 물'이라는 인식 속에 가려져 왔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빗물을 받아 마시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스스로 그 물의 안전성과 맛을 확인하고 신뢰하게 된다.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먼저 받아 마시고, 함께 마시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빗물은 단지 수자원이 아닌 공감과 신뢰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강릉은 왜 빗물을 외면했을까?

강릉은 상수원 고갈로 비상이 걸렸고, 정부는 해수담수화와 지하수 개발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빗물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기자는 이 상황을 보며 다시 묻고 싶었다. "당신은 정말로 빗물을 믿지 않는 겁니까? 아니면, 믿지 않도록 길들여진 겁니까?" 가장 순수한 물, 가장 가까운 물이, 가장 멀리 밀려난 현실. 강릉은 그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 기사는 카드뉴스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3COZuR4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랜드뉴스에도 실립니다.우리는 병에 든 물은 비싸도 믿고,
수돗물은 정수했으니 믿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가장 순수한 물은 왜 의심할까요?

그건 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믿도록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산성비 교육, 오염에 대한 불안, 광고와 수돗물 중심 정책이
빗물을 ‘믿을 수 없는 물’로 길들여 놓았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혼자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 먼저 마시고, 함께 마시고, 경험을 나눌 때
신뢰는 만들어집니다.

빗물을 마신다는 건 단지 한 잔의 물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물에 대한 인식과 미래의 물 관리 철학을 바꾸는 일입니다.
지금도 하늘은 매일 해답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물을 의심하기 전에 먼저 받아보는 것입니다.
#강릉물문제 #빗물이용 #빗물식수화 #빗물에대한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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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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