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국어문화원연합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부와 언론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https://www.plainkorean.kr/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최근 발표된 '쉬운 우리말 쓰기 50개 제안'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한 결과물이다. 어려운 외래어를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어 소통의 문턱을 낮추려는 노력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이 좋은 제안들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괄 적용'이 아닌 '맥락 중심의 유연한 적용'이라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체와 독자에 따른 '맞춤형 활용'
'AI'와 '인공지능' 중 어느 표현이 더 쉬울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누구에게, 어떤 글에서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IT기술 전문가들이 보는 전문보고서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포괄적인 표현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오히려 머신러닝, 딥러닝 등 세부기술을 지칭하는 원래 용어가 더 정확한 소통을 보장한다. 반면,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 정보 안내문에서는 '키오스크'보다는 '무인 주문기'가 훨씬 효과적이다. 언론보도, 학술논문, 산업 보고서, SNS 콘텐츠 등 각 매체의 장르와 독자층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소통 장벽을 만들 뿐이다.
득실 분석을 통한 '단계적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우리말 대체어를 도입할 때는 그로 인해 얻는 '이해도 향상'의 이익과, 치러야 할 '학습 비용', '번역 비용', '사회적 혼란' 등의 손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단계적인 전환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현명하다.
| 새로운 우리말 대체어 도입을 위한 '단계적 전환' 전략 |
1단계: 이중 표기 병행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는 초기에는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처럼 두 표현을 함께 사용해 국민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우리말 표현에 익숙해질 시간을 준다.
2단계: 우리말 중심 사용 사회적 수용도가 충분히 높아졌다고 판단되면, 우리말 표현을 중심으로 사용하되 괄호 안에 원래 용어를 표기하여 전문성을 보완한다.
3단계: 완전한 대체 및 정착 대체어가 원래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사회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을 때 비로소 완전한 전환을 고려할 수 있다. |
'미디어 리터러시'를 '매체 이해력'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면, 단순히 용어 제안에 그쳐서는 안 된다. 초·중·고 교과 과정, 공공기관 업무 매뉴얼, 언론인 교육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해당 용어를 일관되게 반영하고 교육하는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만 전환의 효과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과 함께 만드는 '개방적 언어 정책'
'쉬운 우리말 쓰기'는 몇몇 전문가의 제안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실제 언어 사용자인 국민의 참여와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단순한 항목별 치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특정 표현에 대한 대국민 설문조사, 연령별·직업별 이해도 테스트, 실제 '사용현장 모니터링' 결과를 반영해 대체어의 수용성을 과학적으로 측정해야 한다.
특히 '빅데이터(Big Data)', '블록체인(Blockchain)',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메타버스(Metaverse)'와 같이 아직 우리말 대체어가 정착되지 않은 핵심 신기술 용어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관련 산업계 전문가, 기술자, 학자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 가장 적절한 우리말 대체어를 제안하고, 그 용어가 실제 현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일방적인 '계도'가 아닌, 살아있는 '언어 생태계'를 가꾸는 길이다.
결론: 순화를 넘어, 풍요로운 세계화를 향하여
K-문화가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 언어 정책의 지향점 또한 안으로만 향하는 '닫힌 순화'가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열린 세계화'가 되어야 한다. '쉬운 우리말 쓰기'와 그 결과물인 '우리말 사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 의미를 온전히 살리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배척이 아닌, 맥락을 읽는 지혜와 단계적 전환을 꾀하는 전략적 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어 및 외래어를 단순히 배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2차원적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말의 고유한 힘을 지키면서도 국제적 호환성을 높이는 3차원적 언어 정책을 펼칠 때, 한국어는 비로소 더욱 풍성하고 강력한 소통의 도구로 거듭날 것이다. 세계와 소통하며, 세계를 이끌어갈 K-문화 시대의 언어는 바로 그런 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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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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