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사건'으로 엄마공부방 개원 16일 만에 첫 휴원

12일부터 17일까지, 6일의 기록

등록 2025.09.11 14:18수정 2025.09.1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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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걱정 없이 가정에서 학습이 가능할지 궁금해 엄마가 직접 실험에 나섰습니다. 중등 과학교사인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를 직접 가르치며 겪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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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 12. EBS 단추

주말이면 공부가 뚝 끊어진다. 일요일 저녁 아쉬움이 들 때쯤 올해부터 무료 강의와 개인 학습 관리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EBS가 떠올랐다.

"담아, EBS에 진단평가가 있다는데 해 볼래?"

싫다고 할 새라 얼른 덧붙였다.

"그거 하면, 전국에서 몇 등인지가 나온대."

말하고 보니 EBS가 그렇게 경쟁심을 유발할까 싶고, 내게 아이를 학습으로 이끌 방편이 이뿐인가 싶어 실망스러운데 "그래? 그럼 해 봐야지. 빨리 해줘, 엄마." 담이는 기꺼이 달려와 앉았다. 이렇게 쉽게 앉히다니, 내적 동기 유발이 어려운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렇게 "EBS 초등 단추"를 찾아 4학년 1학기, 수학 진단평가를 2회 치렀다. 나는 틀린 문제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담이는 빠르게 답을 확인하고는 덮고 싶어했다. 학습 시간을 실랑이로 만들지 말자, 곱씹으며 오늘은 여기까지. 복습 자체에 의의를 두고 나를 달랬다. 엄마공부방은, 엄마가 물러서는 연습을 하는 곳이다(참고 자료 : EBS 단추 https://ai-new.ebs.co.kr/).


Day-13. 작은 성취의 기쁨

단원평가를 앞두고 문제집으로 1단원 마무리를 풀었다. 점수를 떠나, 처음으로 학교 진도와 나란히 문제집을 따라왔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하다. 작은 성취 경험이 큰 성취를 이끈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번 학기는 이렇게, 끝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Day-14. 나와 다른 독립체

며칠째 인라인을 못 타자, 담이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겠다고 했다. 아침 7시 반, 정말로 인라인을 타러 학교로 갔다. 내 학창시절 12년 동안 상상도 못한 방식이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독립체임을 확인할 때마다 간담이 서늘하다. 아이를 내 틀에 구겨 넣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며, 이 아이를 잘 기를 지혜와 용기를 주십사 간절히 고개 숙인다.

오후 공부방에서는 <기본편>을 마쳤으니, <실력편>을 풀어 보기로 했다. 마음만 앞서던 담이도 실제로 해 나가며 기대감이 생긴 듯하다. 같은 반 1등 친구처럼 자신도 잘할 수 있냐고 묻는다.

"걔는 통분? 그런 멋진 거 하던데. 엄마, 나도 빨리 그런 거 하고 싶어."
"그래? 벌써 5학년 걸 하나보네. 지금처럼 이렇게 꾸준히 하면 담이도 곧 할 수 있지."

담이네 시골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뿐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줄어 올해는 8명. 한 명씩 떠날 때마다 우리도 언젠가 떠나야 할까 걱정이 스친다. 선행학습을 하는 친구가 있다는 말에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같은 걱정을 다른 집도 하고 있을 터. 몇 안 되는 반에서도 서로 응원하며 즐겁게 배울 수 있길, 우리부터 잘해야겠다. 담이는 새 문제집을 내리 7장 풀었다. 2주 만에 거둔 놀라운 변화다. 결국 아이의 학습 습관은 집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Day-15. 쉬어가는 날

합창 수업이 취소되면서 하루 여유가 생겼다. 마음 같아서는 밀린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밀린 놀이를 하기로 했다. 마침 솔이가 저녁 식사 후, 친구들을 다시 만나 자전거를 타며 노는데 담이도 같이 나선 것이다. 솔직히는 나도 쉬고 싶었다. 충분한 휴식도 공부방의 일부, 오늘은 푹 쉬기로 한다.

Day-16. 도마뱀 때문에 휴강이라니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와야 할 담이가 영 늦다. 전화를 해야 오는 것도 습관이다 싶어 스스로 돌아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시간이 다 되어 소리없이 조용히 들어오는 모양새가 영 이상한데 가만보니 손에 도마뱀을 들고 있다.

"엄마, 학교에서 이걸 잡았는데. 나 이거 키울래."
"안돼. 지금 우리 나라에 이런 도마뱀류는 다 보호종이야. 놓아 주고 와."
"싫어. 내가 키울래."
"담아, 이런 야생에 살던 애들은 온도도 습도도 안 맞으면 살기 힘들어. 어차피 우리 집에 있으면 일주일도 못 살고 죽을 거고, 보호종을 가져와서 키우는 건 불법이야."

그렇게 한참의 실랑이 끝에 울먹이며 도마뱀을 들고 나갔다. 다시 돌아온 담이는 저녁도 안 먹겠다며 골이 났고, 결국 잠이 들었다. 엄마공부방 개원 16일차, 난데없는 도마뱀으로 처음 휴원을 맞았다.

Day-17. 웃음기 가신 공부방

자고 일어난 아침에도 담이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법적으로도, 생태적으로도 밖에서 잡은 도마뱀은 집에서 키울 수 없다고 누차 설명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마 때문이라며 뽀루퉁한 채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 하교 후에도 삐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나도 더는 참을 수 없어 엄포를 놓았다.

"도마뱀 핑계로 네 할일까지 미루려 하지 마. 이제 그만이야. 와서 앉아."

억지로 앉혀, 미뤘던 문제를 풀렸다. 웃음기 싹 가신 공부방,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회의가 몰려온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엄마공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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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얻는 힘과 지혜를 동경하며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를 펴냈다. 두 아들(초1,4학년)을 키우며 늘 흔들리면서도 읽고 쓰고 나누길 멈추지 않는, 앎을 삶으로, 삶은 예술로, 좋은 건 다 하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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