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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과 꼴등이 함께 찾는 곳, 지역 명물된 비결

[사례로 보는 대안 정책] 서울 중랑구 딩가동의 모태가 된 상상발전소

등록 2025.09.15 14:42수정 2025.09.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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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노동-시민사회의 연대 문화 확산을 위해 만들어진 솔라시 조직위원회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체적 현실 속에서 더 나은 내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례로 보는 대안 정책'을 연재합니다.[편집자말]
마을에서 공간의 의미는 각별하다. 온라인에서는 실시간으로 세계를 넘나드는 초연결 시대라지만, 누군가를 만나 어떤 일을 도모하려면 서로 연결이 가능한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청소년에게는 '학교'라는 일상의 공간이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할까?

동네에 작은 공간만 있으면 어느 집 아이나 쉽게 어울리던 시절은 흘러간 옛노래가 된 지 오래고, 이제는 각종 학원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친구도 사귈 수 없어진 시대, 마을 공간의 의미는 여전히 살아 있을까?

서울 중랑구에 자리 잡은 '딩가동'은 청소년들이 서슴없이 어울려 딩가딩가 놀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공동체 공간이다. 하나가 아니다. 2020년 11월, 중랑구청이 직영하는 1번지를 시작으로 5번지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졌고, 이제 '딩가동 6번지'가 문을 열 채비 중이다. 청소년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놀 수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직접 운영하는 딩가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아이들의 놀이터 1318상상발전소는 청소년들이 편하게 쉬면서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중랑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놀이공간 '딩가동'의 모태가 됐다.
아이들의 놀이터 1318상상발전소는 청소년들이 편하게 쉬면서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중랑구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놀이공간 '딩가동'의 모태가 됐다. 1318상상발전소

1318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딩가동의 뿌리를 찾으려면 10년도 넘게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도 청소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복지사 등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밴드를 만들어 지역아동센터나 보육원, 소년원 등으로 봉사 공연을 다녔다. 그러다 2012년 서울시에서 3년 일몰 사업으로 '청소년 휴카페'(서울시의 청소년 전용공간 사업으로 31개소가 운영됐다)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끔 아이들을 만나 잠시 시간을 보내고 마는 것에 대한 공허함이 밀려올 때, 청소년들이 원할 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은 가슴을 뛰게 했다.

당시 서울시 휴카페 사업은 1년에 2000만 원 정도를 지원했다. 나중에야 공간을 운영하기엔 큰돈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봉사로 하던 청소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원을 받으려면 단체가 필요하니 '1318상상발전소'라는 이름으로 비영리민간단체도 뚝딱 만들었다. 1318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상징한다.

"중·고등학생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법적으로 청소년은 9세에서 24세까지지만,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과 세계관 자체가 달라져요. 물론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너무 다르지만 초등학생과는 격차가 더 크죠. 중·고등학생들은 초등학생들이 있으면 안 와요. 유치하다는 거죠(웃음)." - 1318상상발전소 박상용 대표


서울시 휴카페 사업 지원으로 몇몇 청소년과 1318상상발전소라 이름 붙인 공간을 단장했다. 학원을 다니지도 않고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편하게 와서 놀다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청소년기 2~3년을 견디지 못해 엇나가는 아이들에게 잠시 숨통을 틔워줄 공간을 제공할 수 있으면 족하니까.

그런데 소박한 바람이라 믿었던 것이 엄청난 꿈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기 넘치게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홍보해서 억지로 아이들을 끌어모으지는 않겠다'는 고집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일주일이 지나자 '청소년 휴카페'가 뭔지 궁금해서 왔다며 한 명이 찾아왔다. 다음 날에는 2명이 찾아왔다. 다시 일주일 후, 찾아오는 청소년이 100명으로 늘었다.


낡은 당구대를 갖다 놓으니 공짜 당구치는 재미로 오는 친구들이 생기고, 더 낡은 노래방 기계를 구해 놓으니 공짜로 노래를 부르려는 아이들이 왔다. 의자가 모자라 불편하다고 해서 뚝딱 의자를 만들어 놨다. 기타를 쳐보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으면 기타를 가르쳐 주고, 드럼을 신기해하면 드럼도 가르쳤다. 내친김에 밴드를 만들자고 팀을 모았는데, 서로 음도 맞지 않고 목소리도 올라가지 않아 감동적이라기보다 그냥 웃겼다. 그렇게 만든 1기 밴드명은 '대일밴드'.

항상 이런 식이었다. 네일아트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이 쭉 늘었다가 어느새 메이크업을 배우는 아이가 많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댄스부도 생겼고 그림을 그리는 '펜앤브러쉬'도 만들었다.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비싼 최신형 기계도 사놨는데 금방 고장 나서 고치고 또 고장 나는 일이 반복됐다. 창의력 하나는 갑인 아이들이 신제품을 개발했다며 커피에 된장을 풀어 놓기도 했다. 색이 비슷하니 먹어보기 전엔 예측 불가다.

아이들이 원하면 전문 강사를 구하고 또 다른 걸 하고 싶다고 하면 전문 강사나 봉사자를 찾아야 했다. 절실하게 뭔가를 계속하면 누구보다 전문가가 되는 법이다. 지원금 2000만 원은 공간 임대료로 다 나갔으니 여기저기 사업계획서를 써서 지원을 받아내는 데 도사가 됐다.

 상상발전소에서는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모임을 만든다. 제일 처음 만들어진 밴드 이름은 '대일밴드'였다.
상상발전소에서는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모임을 만든다. 제일 처음 만들어진 밴드 이름은 '대일밴드'였다. 1318상상발전소

꽉 막힌 시대의 중립지대

아이들이 학교 아니면 학원에서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대, 처음 상상발전소에 모인 아이들은 이런 조건조차 제대로 누릴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밥을 먹기 위해 학교에 가는 친구, 엄마아빠가 10년 동안 서로 말을 하지 않아 학원의 '학'자도 꺼낼 수 없었던 친구, 거리를 거닐어도 친구를 만날 수 없는 친구. 예전 같으면 서로 몰라도 동네 공터에서 어울려 놀았을 아이들은 '공터를 빼앗긴 시대'에 갈 곳이 없었다.

이런 시대에 숨 쉴 공간이 뚫리자 금방 아이들이 몰렸다. 학교와 학원에 내몰리는 환경에서 벗어나 있는 아이들은 거칠었다. 한번은 한 중학생이 친구에게 욕을 해 발전소 관리자가 말렸더니 대들면서 멱살을 잡았다. 어른과 청소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싸움박질 일보 직전에 겨우 끝났다.

이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발전소에 찾아오던 또 다른 '거친 아이들'이 관리자 멱살을 잡은 중학생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찾아다녀 겨우 말렸다. 밖에서는 거친 아이들도 이곳은 일종의 중립지대, 서로 괴롭히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곳, 모두가 평등하게 쉬어야 할 곳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건 아이들이 이 공간의 가치관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여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모두가 똑같다는 걸 명확히 인식시키고 3가지 원칙을 특별히 강조해요. 첫째는 다른 친구 방해하지 말자, 둘째는 비속어 쓰지 말자, 셋째는 자기가 사용한 건 자기가 정리하자. 여기 들어오는 순간 모두가 지켜야 하는 원칙이죠. 세 번째는 잘 안 지키지만(웃음)."

상상발전소는 어떤 청소년에게나 동일한 잣대로, 동일하게 평가하고, 동일하게 처분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2~3시간씩 나눠 관리하는 다른 청소년 공간은 이게 잘 안된다. 서로 기준이 다르면 아이들이 눈치채고,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느끼면 제멋대로 하기 쉽다. 예전에 인근의 다른 청소년 공간에서는 싸움 1짱과 2짱이 시비가 붙어 소화기를 집어 던지며 싸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일관되고 명확한 기준, 자유로운 활동, 안전함을 느끼는 공간, 이로 인한 신뢰의 관계는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모두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자리잡히니까 이 공간을 헤치는 건 모두의 적이 됐다. 그렇게 상상발전소는 전교 1등과 꼴등이 함께 찾아오는 중립지대, 모두의 놀이터, 성역, 소도가 됐다. 학교 밖에서도 차별 없이 아이들이 숨 쉴 수 있고, 청소년이 주도해 운영하는 민주적인 공간을 만들자는 계획은 성공으로 보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었던 휴카페 사업이 3년을 끝으로 없어지는 '일몰 사업'이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행사를 열었다. 이 역시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행사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행사를 열었다. 이 역시 청소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행사다. 1318상상발전소

마을이 지킨 공간, 청소년이 살린 공간

서울시 우수사업으로 자주 거론되던 상상발전소는 3년이 지나자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인근 대학생들과 공간을 이용하던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전달했지만, 서울시는 단호했다. 그곳만 잘된다고 일몰 사업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독지가가 나타날 리도 없고 개인 돈을 넣기에도 버거웠다. 게다가 원래 있던 장소도 건물주 아들이 쓴다며 비워달라고 했다. 모든 조건은 문을 닫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포기하긴 싫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하소연을 시작했다.

그때 마을이 움직였다. 공동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타고 소문이 돌았다. 돈도 모이고 구의원도 움직였다. 마을 사람들이 출자한 돈으로 새로운 공간의 보증금도 마련했다. 문제는 인테리어.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넣어봤던 사업계획서 쓰는 탁월한 능력이 빛을 발했다. 공간의 반 정도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나머지 반은 도시재생사업의 지원으로, 운영비는 혁신교육지원사업으로 마련했다.

그러다 상상발전소 모델을 공약에 넣었던 구청장 후보가 당선되면서 탄력이 붙었다. 몇 년 간의 준비 끝에 구청에서 직접 운영하는 딩가동 1번지가 탄생했다. 만족도가 높으니 딩가동 2~5번지에 이어 이제 6번지가 준비 중이다.

상상발전소는 현재 운영 중인 다섯 개의 딩가동 중 2곳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상상발전소는 하루 40여 명의 청소년이 이용하지만, 규모가 큰 딩가동은 하루 100명의 청소년이 이용하기도 한다. 이곳은 모두 정해진 프로그램에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놀면서 청소년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당연히 운영위원회도 이용하는 청소년이 꾸린다.

물론 상상발전소와 딩가동이 다른 점도 있다. 상상발전소는 13~18세 청소년만 이용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딩가동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이용할 수 있다. 딩가동 같은 공간은 초등학생에게도 필요하니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원성이 거셌다. 결국 5학년부터 입장 가능으로 타협했다.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가 유명해지면서 동네 행사에서 공연도 한다. 진로상담 행사에서 공연하는 댄스동아리 어텐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동아리가 유명해지면서 동네 행사에서 공연도 한다. 진로상담 행사에서 공연하는 댄스동아리 어텐션. 1318상상발전소

공동체 공간, 법적 근거 마련해야

광주나 수원, 고성, 의정부, 서울 노원구 등에서 딩가동을 벤치마킹해 청소년 공동체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공간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수익이 나지 않는 공동체 사업의 특성상 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있다면 낫지만, 자치단체장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서울시장이 바뀐 후 수많은 마을공동체 사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았던가?

딩가동은 법적 근거를 갖춘 청소년 시설이 아니라 자치단체장의 선의로 유지되는 사업이다. 그렇다고 딩가동 같은 공간을 청소년 시설에 포함해 달라는 의미는 아니다. 청소년 시설은 유해시설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하는 등 설치 조건이 까다롭다. 그렇지만 청소년 공동체 공간은 무엇보다 청소년의 동선에, 작은 규모로 존재해야 효과적이다. 딩가동 같은 청소년 공간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력 인정 등의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 각종 지원 사업의 까다롭고 비현실적인 절차도 개선할 부분이다.

물론 이런 공간을 만들고 유지하는 일에는 당연히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상상발전소나 딩가동을 이용하는 아이들 중에는 평소에는 많이 어둡고, 사고를 많이 내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잠시 쉬어가고 편안하게 놀 공간을 찾으니까, 누구나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됐어요. 그래서 이제는 전교 꼴찌와 전교 1등이 모두 와서 평등하게 어울리는 공간이 됐죠. 만일 이런 공간이 없을 때, 10년 뒤에 나타날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너무 적은 거죠." - 박상용

어른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서로 돌봄이 가능한 공간이 필요하다. 서로 돌보는 경험은 성장하면서 계속 이어지고, 학교에서 동네로, 마을에서 사회로 넓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공간이 청소년만 지원하는 것일까? 사회까지 치료하는 시작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마을정책 10년 임팩트 모델 현장 사례 보고서에 실린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손우정 기자는 한국마을연합 부설 한국마을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상상발전소 #딩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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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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