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3년 ‘동아일보’ 신년 광고에 소개된 군산한호예기조합 기생들
동아일보
심화경 부단장이 1923년 <동아일보> 신년 광고에 군산한호예기조합 기생으로 소개되어 흥미를 끈다. 하긴 기생 활동을 중단하고 여학교에 진학하거나 유학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연예계로 스카우트 되어 영화배우도 되고, 모델도 되고, 유명 가수가 된 기생도 많았다. 이처럼 만능 엔터테이너로 한국 연예인 효시가 일제강점기 기생들이었다.
당시 기생들은 신여성의 상징으로 모순된 식민지 근대화를 받아들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해 갔다. 초창기 미술전람회 모델은 기생 출신이 장악했고, 리뷰 댄스 대중화도 기생의 기여가 컸다.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뤘던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과 왕수복, 선우일선 등이 기생 출신이었다. 이들에 의해 유성기판(SP)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극장이 흥행을 누릴 수 있었다.
심화경이 언제 연극 활동을 접고 기생으로 돌아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군산 개복동에 거주하면서 신문 광고란에 자신과 권번 이름으로 새해를 축하하고, 조선인 야학교 설립, 재외동포 위문금 모금 등에 상당한 액수의 동정금을 전달한 것 등이 검색된다. 이로 미루어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했으며 동포애도 깊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김춘자 간사 활동도 관심을 끈다. 영신여학원 설립(1922), 재외동포 위문금(1923), 조선 여자교육협회 남선 연극단 일행 군산 공회당 공연 동정금(1923), 재만 피란 동포 위문품 모금(1931), 삼남지방 수재의연금 모금(1934) 등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이 보여서다. 흥미로운 대목은 대부분 심화경 부단장과 함께 움직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실과 바늘 사이'로 무척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 신파극단은 임성구(林聖九·1887~1921)가 일본 신파극의 영향을 받아 1911년 조직한 혁신단(革新團)으로 전해진다. 혁신단 일행은 그해 초겨울 남대문 밖 어성좌(御成座)에서 창립 공연을 하였다. 국내 최초 여성 신파극단이 궁금해지는데, 최근까지 밝혀진 기록으로 미루어 1921년 8월 군산에서 창립된 동광단(東光團)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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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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