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원도심 걷기 12일, 안양작가회의 조동범 회장이 대농단지로 불리던 곳 앞에서 안양지역의 역사와 기형도 시인의 안양에서의 활동에 대해 얘기 하고 있다.
김은진
기형도 시인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답사팀은 안양일번가에 위치한 서이면사무소(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674-271)까지 오게 되었다. 1914년, 이곳은 과천군 상서면(동안구 일원)과 하서면(만안구 일원)이 시흥군 서이면으로 통합되면서 두 개의 서면이라 서이면이라고 했다고 한다. 1941년에 안양면으로 변경되었고, 1949년 읍으로 승격되면서 청사를 신축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현재 안양시의 근대 역사가 잘 정리돼 있었고 독립운동가인 하영홍, 이영래, 원태우, 한흥이, 이재천, 이재현 지사 등의 업적도 판넬에 걸려 있었다.
일행은 이제 옛 본백화점 앞에 섰다. 1980년대에 이곳의 지하에는 롯데리아가 입점해 있었고 십 대와 이십 대를 아우르는 젊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안양다방'에서도 수리시 동인들이 자주 모였다. 함께한 작가님들도 젊고 애송이 같았던 1980년대의 추억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그즈음 평촌에 신도시가 생겨서 이사를 왔어."
"그때 삼원극장에서 친구들하고 영화 봤잖아."
"안양다방에서 시화전도 열리고 그랬지."
"일번가에서 친구들하고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었지."
흐뭇한 추억을 뒤로하고 현재 국민은행 안양지점 뒤쪽에 위치한 현재 댕리단길로 불리는 대농단지에 도착했다. 대농단지는 일제 강점기에 친일 매판자본가 박흥식이 '조선비행기 주식회사'를 세운 곳이라고 한다.
박흥식은 1931년 종로 화신백화점과 화신연쇄점을 운영하며 당시 '조선의 최고의 갑부'로 불렸다. 1944년 7월 박흥식은 조선총독부로부터 항공기 제조사업을 허가받아 같은 해 9월, 회사를 창설하고 다음 해 3월부터 안양의 구 대농방직 터에 있던 조선 직물과 동양방적을 헐값에 인수, 공장 가동과 함께 평촌지역에 비행장 부지를 계획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인 1949년 반미족 특별법에 의한 공판 청구 기록을 보면 "공장과 비행장 부지로 농토 2,300여 평, 45만여 평에 달하는 토지를 군부 세력을 이용, 강제 몰수하여 250여 지주와 900호에 달하는 농가 4,000여 농민이 농지를 박탈당하고 생로가 막혀 가두에서 방황하여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해방 후 박흥식은 구속되었으나 공민권 2년 정지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국민들을 허탈하게 했다."
출처 : 안양시 제공
조선 비행주식회사는 문을 닫고 김성곤에 의해 1949년 금성방직이 설립된다. 1956년 현 안양1동 진흥아파트 자리에 있던 태평방직도 인수하여 사업을 확장했다고 한다. 1968년 금성방직과 태평양방직이 청주로 이주하고 1973년 대농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1977년까지 운영하다가 한국토지금고 택지개발로 640여 개의 단독필지로 일반에게 분양되어 안양최초의 대규모 주택단지로 변모했다.
댕리단 길에도 기형도 시인의 흔적이 있었다. 정종과 맥주를 파는 작은 술집이었는데 주인아저씨가 밖에 나와 앉아 계셨다. 조용한 걸 좋아하셔서 3인 이하의 손님만 받으신다고 한다. 일행은 얌전히 가게 앞을 지나쳤다.
병목안까지 걸어가서 수리산 성지까지 볼 생각이었지만 아쉽게 비가 내렸다. 다음을 기약하고 우리는 답사를 마쳤다. 조동범 회장은 지난 4월에도 책방 '뜻밖의 여행'의 후원으로 '기형도 시인의 흔적 따라 안양 원도심을 걷는 뜻밖의 여행'을 했다고 한다. 안양작가회의는 앞으로도 답사 프로그램을 꾸준히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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