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산길
안호용
이제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숲길이 종착점에 다다랐다. 우리는 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에서 마지막 남은 샤인머스켓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15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이제 나머지 5킬로미터를 더 가면 오늘의 여정은 끝날 것이다. 처음엔 지형적으로 볼 때 조망도 없고 거칠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막상 접해보니 그와 상반된 풍경이었다. 시야가 넓지는 않았지만 고적하고 때론 몽환적이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색계를 빠져나와 욕계로 발을 내디뎠다. 이제 세속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십여분 내려가자 첫 농가가 나왔다. 길가 마당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던 농부에게 인사를 하니 그도 흰 이를 드러내며 반갑게 응대를 했다. 도반이 나에게 웃는 모습이 참 순박하다고 말했다. 이 깊은 산골에 살다 보면 제아무리 세상이 치닫더라도 세속의 벽을 쉽게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보충 설명을 하였다. 사실 문명의 이기는 공간의 간극을 쉽게 넘을 수 없다.
깊은 던지골을 따라 농가들이 뜨문뜨문 불규칙하게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로 빨갛게 익는 고추밭과 아직 이른 콩밭과 배추밭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개 짖는 소리가 한가한 풍경을 깨뜨렸다. 마을은 한적하지만 그 안에서는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길이 넓어지면서 시야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종착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화면 읍내는 여느 읍내와 같이 한산했다. 우리는 막국수 집에서 메밀묵을 안주삼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평균적으로 한 시간에 4킬로미터를 걸은 셈이다. 경사가 완만해서 발걸음이 빨랐던 것 같았다. 좀 더 느긋하게 걸으며 숲길에 오래 머물러도 되지만 사실 말처럼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운동선수처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행위가 몸에 밴 결과인지 모른다.
식당을 나와서 읍내를 걸었다. 5시 25분에 평창역 가는 버스를 타려면 아직도 한 시간 이상 남았다. 우리는 어느 추레한 커피가게를 기웃거리다 손님 받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서 길 건너편에 보이는 다방에 들어갔다. 옛날식 다방이었다. 장이 서면 사람들이 북적대겠지만 지금은 손님 하나 없이 조용했다. 최백호의 <낭만을 대하여>가 떠올랐다. 도라지 위스키와 짙은 색소폰 소리는 없지만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다.
항상 그렇듯, 속계에 내려와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삼독이 범람하는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7시 조금 넘은 시간이면 우리는 상봉역 부근 어느 음식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지금 이 풍경에 대해 떠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초선과 같았던 백석산 숲길은 마음속에 적립되어, 적어도 일상 속에서 탁한 영혼을 정화하는 기능으로 작동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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