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지난 6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새 정부가 기후정의 원칙에 기반한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에 맞게 수립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2035NDC 정의롭게 수립’ ‘탄소중립기본법 전면 개정’ ‘많이 배출하는 자, 많이 책임져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재구성’ 등을 촉구했다. 이재명 대통령 가면을 쓴 한 참가자가 ’온실가스 감축’을 선택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권우성
재계 측의 연구는 지나치게 전기요금의 인상 폭을 과장한다. 대표적으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제시한 산업계 전기요금 연간 인상폭이 연간 2조 5000억 원이다(신동현, 2025). 이는 탄소가격을 탄소중립국가기본계획이 제시한 6만 원도 아닌 3만 원이라는 낮은 가격으로 임의로 가정했음에도 지나치게 과다한 비용으로 추계되었는데, 50% 가까이 감축되어야 할 2030년 발전부문의 배출량이 아닌 2023년 배출량을 적용했기 때문에 배출권 비용이 높게 책정된 것이다. 이런 엉뚱한 가정, 즉 낮은 탄소가격과 줄어들지 않는 배출량을 미래의 전망으로 설정한 데서 재계가 과연 에너지 전환과 탄소배출 목표 달성에 협조할 생각이 있는지 우려스럽다.
전기요금 인상을 비용으로만 보는 태도도 문제다. 기업에 부담이라면 무엇이든 비용을 다 줄여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조세와 부담금과 정책으로 부담과 신호를 주지 않는다면 시장은 망가진다. 특정 분야에 대한 특혜는 다른 분야에 대한 혁신의 기회를 축소시키고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감소시킨다.
특혜라는 표현은 결코 과격한 표현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주요 에너지집약적 산업의 성공은, 누군가가 겪고 있는 기후재난과 녹색산업의 기회 억제를 대가로 치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자원 분배를 그토록 찬미하면서도, 수십 년째 사실상의 보조금을 통해 싼 에너지로 특정 경제 부문에 특혜를 주는 방식을 열렬히 옹호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제조업 비용 부담을 주장하는 연구들은 하나같이 탄소가격이 새로운 산업의 확장을 자극하고, 배출권 비용이 산업에 다시 재투자되며, 감축된 온실가스 배출이 가져올 미래의 편익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려 든다. 총산출의 변화가 없다면, 심지어 증가하기까지 한다면, 유상할당 확대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일방적 '기업과 가계의 비용 부담'이 아닌 '자원분배의 효율화'라는 정상화 과정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가.
당당하게 배출자들에게 청구서를 내밀 때
앞선 기후정치바람의 조사에서 시민들은 기후변화의 비용 부담을 더 많이 탄소를 배출한 주체, 그리고 더 부유한 주체가 짊어져야 한다고 봤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적절한 재원으로 탄소세와 부유세, 법인세라고 답변한 비율이 88%에 달했다. 이런 감각은 인류가 이미 합의한 바 있는 기후위기 대응 책임 부담 원칙에 정확히 부합한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은 '공동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과 각자의 역량(CBDR-RC)'라는 문구로 이 원칙을 명문화한 바 있다. 더 많이 배출한 이들과 더 많이 버는 이들이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서 이 원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배출자들이 지불하는 탄소가격은 형편없이 낮다. 1만 원도 되지 않는 배출권 가격은 EU 배출권의 13분의 1에 불과해 기업들은 감축 노력보다는 배출권을 사들이는 편이 비용효율적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이 과잉 할당으로 남은 배출권을 팔아 돈을 벌어들이는 현실이다. 2022~2023년 유류세 감면액은 15조 원에 달했는데 기후대응에 쓰인 배출권 유상할당 수입은 0.4조 원이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대부분이 도로건설에 사용되고 기후대응기금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단 7%와 전력산업기금 일부만 편입될 뿐이다.
그 결과 기후대응기금은 사업비 규모 2.5조 원 수준을 몇 년째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에너지와 산업 전환에 필요한 지원이나 인프라와 시장 구축은 요원한 지경이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온실가스 9천만 톤 정도를 감축했는데, 2024년부터 2030년까지 9천만 톤의 최소 두 배를 더 감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투입해야 할 돈은 막대한데, 책임져야 할 이들은 모두 내빼고 있으니 전망은 어둡다.
앞서 확인했듯 발전부문 유상할당 확대는 배출자에게 책임을 확대하면서도 국민들의 적은 부담과 제한적인 제조업 부담으로 총산출의 저하 없이 해낼 수 있는 기후재원 확보의 출발점이다. 주춤주춤 재계 눈치 볼 필요 없다. 당당하게 청구서를 내밀어 협조를 요구하라. 그것이 공정하면서도 국민경제 전체에 바람직한 길이다. 최근 한 연구는 대한민국의 상위 10대 기업이 12년 간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폭염 피해액을 161조 원으로 추산한다(
조정호·임소연, 2025). 과연 이들을 이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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