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9.17 14:40수정 2026.03.0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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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원보다 조경이라는 개념에 익숙하다. 정원과 조경은 다르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는 이미 조경이 들어서 있지만 이는 시각적 장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정원은 단순히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 아니라 명상과 사색, 감성의 공간이다.
우리 아파트는 조경은 있으나 정원이 없다. 외형적으로 보면 같은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는 공간일지라도 내용이 다르다. 조경이 공공영역이라면 정원은 개인이 가꾸고 누리는 비밀스런 공간이다. 조경이 정원이 되려면 자연이 내 삶의 일부가 되는 환경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왜 집안에 정원을 만들까? 자연을 내 삶에 끌어들이고 싶은 욕망때문이다. 정원은 개인이 누리는 자연이다. 내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향을 맡으며 꽃을 바라보고 싶은 거다.

▲ 행잉바스켓은 도시의 빌딩숲 속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도구다.
유신준
요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일본에서 실시하는 행잉바스켓 마스터(강사) 자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행잉바스켓이 뭐냐면 (바구니) 걸이 화분이다. 바닥에도 두고 벽에도 걸고 공중에도 매달아 꽃을 즐기는 식재기법이다.
행잉바스켓은 화분을 고르고 화분에 맞는 꽃모종을 선별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색상과 모양을 보며 머릿속으로 전체 그림을 그린다. 꽃 모종을 늘어놓아 배색을 맞추고 서로 어울리게 구성하며 화분에 심는다.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식생이다. 모아 심는 꽃들이 상생 가능하도록 다습이나 건조 조건을 맞춰야 한다. 맞지 않으면 사이 안 좋은 부부처럼 한 집안에서 견디지 못한다. 일단 함께 살아남는 게 첫째다. 살아 남아야 모양도 볼 수 있는 거다.
행잉바스켓은 한번 만들어 걸어 놓으면 보통 한 계절을 즐길 수 있다. 계절에 따라 꽃을 바꾸면 마치 패션에서 시즌별 액세서리처럼 작동한다. 봄엔 파스텔, 여름엔 선명한 색, 가을엔 따뜻한 톤…
행잉바스켓은 바닥에서 벽, 공중까지 입체적으로 공간의 품격을 끌어 올려주는 장식 원예기술이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단순 실내장식을 넘어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작은 정원 역할을 할 수 있다. 참 된 발견은 새로운 풍광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얻는 것이다.
몇 년 간 일본에서 정원에 뜻을 두고 일을 배웠으나 한국에서 쓰임새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최근 국내 정원 붐이 일고 있다 해도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걸림돌이 문제다. 신생 세종시의 경우 96.3%가 아파트일 정도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독특한 주거환경에서 정원이 국민 문화로 자리잡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쓸모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내게 눈이 번쩍 뜨이는 계기가 생겼다. 일본의 행잉바스켓 문화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정원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부지런히 배워서 쓸모 있게 사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 아파트의 행잉바스켓은 공간의 품격을 끌어 올리는 홍일점이 될 수 있다.
유신준
아파트의 행잉바스켓은 공간의 품격을 끌어 올리는 홍일점이 될 수 있다. 브로치 하나로 정장이 완성되듯, 단조로운 콘크리트 벽에 생명과 감성을 불어넣는 순간, 그 공간은 삭막한 거처에서 자연이 숨쉬는 안식처로 변한다. 행잉바스켓의 마법이다. 어떤 식물을 선택하고, 어떤 색의 화분을 쓰는지에 따라 그 집의 분위기와 사람의 성향이 드러난다. 아파트라는 획일적인 공간에 '나만의 이야기'가 새겨진다.
행잉바스켓으로 이웃 간의 소통을 유도할 수도 있다. "저 꽃 예쁘네요"라는 말 한 마디가, 낯선 이웃과의 첫 인사가 될 수도 있다. 아파트 복도에 걸린 꽃 바구니 하나가 공동체의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된다.
행잉바스켓은 도시의 빌딩숲 속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도구다. 특히 아파트처럼 실내외 공간이 분리되고 단절된 구조에서는, 행잉바스켓 하나가 자연과의 인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작은 창'이 될 수 있다.
땅도 없는데 무슨 정원. 아파트 사람들이 지레 포기하는 데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행잉바스켓이라는 작은 정원을 집안에 들임으로 정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정원에 들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다.
아파트는 정원 문화 진흥을 앞둔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아파트를 적극적 정원 인구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정원 산업의 기반을 확대하고 정원 문화의 조기 정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행잉바스켓은 어느 곳에 걸어놓든 공간의 품격을 높여 준다.
유신준
물론 행잉바스켓이 아파트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 주택이나 상가나 어느 곳이든 들여놓으면 공간의 품격을 높여 준다. 다만 우리 주거 형태가 대부분 아파트라서 특히 아파트를 중심으로 살핀 것이다.
내가 구태여 자격증 취득까지 목표 삼아 공들여 공부하는 것은 작은 신념 때문이다. 행잉바스켓이 우리 아파트들을 채워 줄 정원 블루오션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30년전 오사카박람회를 계기로 서구 문화인 행잉바스켓을 받아들였다. 가꾸고 노력한 결과 일본만의 중요한 문화자산으로 찬란하게 꽃피우고 있다. 우리도 이들처럼 우리만의 행잉바스켓 문화를 가꿔 나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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