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에 목은 축였지만 최악의 가뭄으로 식수난을 겪는 강원 강릉지역에 지난 13일 황금과도 같은 단비가 내려 시민들의 목은 축였지만, 아직 해갈까지는 갈 길이 멀다. 14일 강릉지역 87%의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 오봉저수지의 물 밖으로 드러난 맨땅이 쩍쩍 갈라진 상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변화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히 '기술 vs. 환경'의 대립 구도로 바라보거나, 인공지능을 물 부족의 주범으로 단죄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해법은 재난관리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을 강화하는 데 있다.
'범인 찾기'의 함정과 재난관리의 참된 목적
재난관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급한 책임 추궁보다 '왜 재난이 발생했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2025년 강릉시 오봉저수지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올해 여름부터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어 저수율이 급락하며 생활용수가 위기에 처했을 때, 김홍규 강릉시장은 "저수지가 바닥나는 최악의 경우, (오봉저수지) 사수량(死水量)을 사용해 버틸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재난 복구의 핵심은 자연현상을 탓하거나 특정 기술만을 지목하는 데 있지 않다. 종합적 원인 규명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 예측 시스템과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본질이다. 강릉 사례에서도 가뭄이라는 자연재해 외에 수원 다변화 미흡, 비상계획 부족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음이 드러났다.
재난 복구의 올바른 순서는 즉각 대응 → 원인 분석 → 장기 대책 수립이다. '범인 찾기'에만 매몰되면 정작 중요한 자료 수집과 분석이 뒷전으로 밀린다. 기후변화, 인프라 노후, 관리 부실 등 다층적 원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데이터센터를 물 재난의 범인으로 몰아선 안 된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물 사용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일부 데이터센터가 지역 전체 물 사용량의 20%를 차지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아이오와주 알투나의 한 데이터센터는 도시 전체 물 사용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텍사스와 애리조나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 후 지하수 고갈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의 물 사용량은 냉각 방식, 지리적 위치, 전력 구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하루 수백만 갤런의 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추정하지만, 이는 최악의 조건을 가정한 것이며 실제로는 시설별로 편차가 크다. 따라서 구체적 수치보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에서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수자원 관리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기후위기 대응, 재난 예측, 실시간 수자원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 솔루션을 제공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AI 기반 홍수 예측,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물관리 플랫폼, 스마트 정수장 기술을 통해 물 관리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있다.
데이터센터 유치는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분명한 이익을 가져다준다. 단순히 사업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기회비용만 키울 뿐이다. 핵심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대폭 강화해 공공 이익과 민간 투자를 동시에 살리는 조건부 승인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자원 보호를 위한 3대 CSR 조건
첫째, 저수지·댐 연계 의무화: 데이터센터 인근 저수지에 냉각용·방류용 시스템 구축을 법적 조건으로 명시하고, 장마철과 가뭄기 수량 변화에 따라 자동제어하는 스마트 댐 기술 도입을 지원한다. 이는 단순한 물 사용 제한을 넘어 지역 수자원 인프라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효과를 낳는다.
둘째, 재생수 활용 및 배출 관리: 생활용수 수준의 정수 대신 산업용 재생수를 우선 사용하도록 유도하며, 폐수 배출 시 배관·펌프 부식 방지를 위한 정밀 모니터링 시스템을 의무화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일부 지역에서 재활용 폐수나 침수 냉각 기술을 도입해 물 사용량을 대폭 줄이고 있다.
셋째, 수자원 관리 협의체 구성: 지자체, 기업, 주민 대표가 참여하는 상시 협의회를 법제화하고, 물 사용량·수질·전력 수요를 통합 관리하는 실시간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여러 지방정부가 데이터센터 허가 과정에서 수자원 보호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애리조나주 일부 카운티는 신규 데이터센터에 '지하수 보존계획'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지하수 사용량 상한제를 검토 중이다.
이러한 CSR 조건은 기업에게 초기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사회와 동반 성장하는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한다. 갈등 완화와 주민 신뢰 확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경영의 확산으로 CSR 활동이 더욱 체계화·전략화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술혁신과 사회적 책임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난관리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혁신과 보존의 균형이다. 인공지능을 기술 불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단기적 안도감만 줄 뿐, 지속가능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재난관리의 본질은 '누가 나쁜 짓을 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다.
미래지향적 접근은 제도화된 CSR 및 엄격한 기술 관리체계를 바탕으로 한다. 데이터센터가 '기후위기' 대응과 재난 예측의 도구로 기능하면서도, 동시에 지역 수자원에는 부담을 주지 않는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추진 중인 'AI 기반 물관리 혁신'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물 관리 전 분야에 AI를 도입하되,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AI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법의 핵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수자원 보호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핵심은 조건부 상생 모델을 통해 기술 발전과 환경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기업의 적극적 CSR 이행, 시민사회의 건설적 감시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재난관리의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은 '범인'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물 부족 문제를 관리·예측·해결하는 진정한 해결사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는 맹목적 기술 낙관론이 아니라, 제도화된 사회적 책임과 과학적 관리체계가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
21세기 디지털 전환의 성공은 기술 자체의 우수성보다는, 그 기술을 얼마나 지혜롭고 지속가능하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급한 단죄보다는 장기적 안목으로, 갈등보다는 협력으로, 배제보다는 포용으로 접근할 때 진정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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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로 있으며,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주된 관심분야는 글로벌 위기관리 및 재난·안전학, 일본의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제관계, 국제기구론, 국경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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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인공지능을 '주범'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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