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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를 추억하는 두 여자가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

아버지 돌아가시고 퇴근 후엔 어머니 집으로 간 지 한 달... 마음을 나누고 있습니다

등록 2025.09.19 08:51수정 2025.09.1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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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요즈음 나는 퇴근 후 어머니 집으로 향한다. 아버지와 살던 집에서 어머니가 혼자 지내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처음 며칠은 현관으로 들어서면 온 집안이 컴컴한 동굴 같았다. 이제는 그런 단계는 지났는지 내가 초인종을 누르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머니가 바로 문을 열어준다. 온 집안이 환해져 있기까지 하다.


밤 늦은 시간 우리는 과일을 먹으며 자신의 마음과 기억을 꺼내 놓는다. 내가 수학강사로 있는 학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을 말한다. 이해심 많은 고마운 학부모들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니는 꼭 "아버지가 도와주시는 거야"라는 말씀을 덧붙인다.

어머니도 오늘 일어났던 일을 말씀하신다. 위층의 혼자 사는 아가씨가 수시로 찾아와 말동무도 해 주고 산책도 같이 하나 보다. 서른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위안이 되어 주는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허약한 우리 인간은 무언가 부여잡고 삶을 지탱해야 하나 싶다.

밤 늦은 담소 시간에는 어머니의 어렸을 적 이야기부터 시작해 갈등을 빚었던 정치 이야기까지 스스럼 없이 말한다. 이제는 어머니의 그 어떤 말에도 반감이 생기지 않고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어머니가 저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여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평생 봉사하는 삶을 사셨던 외할아버지와 아침마다 머리에 비녀를 꽂고 두어 시간씩 신문을 보았던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아련하고 그립다. 그분들의 딸이 나의 어머니라서 다행이라 여긴다.

때로는 좋은 칼럼이나 기사를 오려 가서 어머니에게 읽어드린다. 어머니는 귀 기울여 듣는다. 내가 원본을 식탁에 놓고 나오면 나중에 다시 또 읽으시는 듯하다. 우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것을 매개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변함없는 하늘 자연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변함없는 하늘 자연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임혜영

예전에는 부푼 가슴으로 행하던 일들이(공부든 취미든 독서든) 이제는 아무 쓸모 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내가 이럴진대 어머니는 더하리라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을 추스려 본다.


저녁마다 집으로 향하며 통과의례처럼 행하는 일이 있다. 내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제서야, 죽음을 접하고 난 후에야 깨우치고 있다. 죽음이 사람을 이렇게 크게 변화시킨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알 수 없는 큰 영역이 있었다.

이런 힘든 과정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의 무게를 자각하는 시간을 나는 길 위에서 갖는다. 울었다는 흔적을 남기면 안 되니 얼른 단속을 하고 어머니집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어쩌면 어머니도 내가 도착하기 전에 다 울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마주하는 걸 수도 있다.


이 동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한 과정을 지나고 있으며 이 시기를 거쳐 새로운 관계와 미래가 펼쳐지리라 예상해 본다. 우리의 지금 이 노력이 평온과 평화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본다. 친구들은 나에게 "네가 엄마에게 큰 위로를 주고 있다" 말하지만 사실은 나야말로 어머니에게서 적지 않은 위안을 받는다.

한 남자를 추억하는 두 여자가 서로를 보듬는다. 아버지의 큰 선물 중 하나는 어머니를 부모가 아닌 본연의 한 인격체로 보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유지하는 부모자식 관계가 아니라 생의 중요한 동행자로 벗으로 인식하고 서로를 경험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그동안은 모르고 살았다. 사람들 사이의 진정 어린 공감과 연결이 거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어떤 지극한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죽음 #부모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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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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