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가 수감됐던 509호에 놓인 왕생화 김정연
509호는 당시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 돼있다. 박종철 열사가 수감되고 고문 끝에 사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방 안에는 박종철 열사의 사진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84학번 동기들의 근조기가 있다. 그는 방에 있는 좁은 욕실에서 비인권적 물고문을 당하다 욕조의 턱 부분에 목이 눌려 질식사했다.
박종철 열사의 영혼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평안한 극락 세계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왕생화'가 바쳐있다. 박종철 열사와 그의 가족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두었다. 전시는 박종철 열사뿐 아니라 그 순간을 살았던 그의 친구, 가족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이 독재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제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나아가 마음의 응어리를 내려놓기를 기원한다.
민주주의는 당연하지 않았다
1987년 6월항쟁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마음 한구석에 한을 품고 있다. 국가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공격했으며, 내 친구와 가족을 죽였다는 한이 가슴에 맺혀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죽은 자들을 위해 남은 이들은 더욱 민주주의를 외쳤다. 저항만이 억울한 세상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운 내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자유를 위해.
이 한과 저항은 결코 과거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또다시 비슷한 밤을 마주해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헌정 질서 수호'를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곧 1호 포고령이 발표됐다. 정치활동과 집회는 금지되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 당했으며, 거리에 선 사람들은 언제든 체포될 수 있었다. 어둠은 다시 우리 곁으로 스며들려 했다.
계엄 해제를 위해 일부 국회의원은 국회의사당으로 뛰어갔고, 시민들은 군인과 경찰 앞에 섰다. 두려웠지만, '계엄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함이 용기를 만들었다. 새벽 내내 대치하며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기를 기다렸다. 무장한 군인도 차가운 겨울 바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설 수 없던 사람들은 집에서 뜬눈으로 그들의 안전과 가결을 응원했다. 1987년의 기억처럼, 사람들은 또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날의 용기가 없었다면 역사는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갔을 것이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언론은 침묵하고, 거리는 폭력에 짓눌리며, 또다시 소중한 존재들이 희생됐을 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우리의 가슴에는 지워지지 않을 한이 남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런 억울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다. 또한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이제는 그들이 억울했던 시절과 원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한풀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았고, 쉽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8
공유하기
남영동 대공분실에 피어난 꽃, 시대를 위로하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