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에 피어난 꽃, 시대를 위로하다

민주화운동기념관 다여스님 지화 전시 <재, 꽃잎, 풀림의 의례>... 오는 9월 28일까지

등록 2025.09.22 10:07수정 2025.09.22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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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독재시절, 사람들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었고, 살아있는 이들에겐 기억으로 남아 한이 되었다. 그 시절 우리는 국가 폭력에 매일 밤 소리 죽여 울었고 그 기억과 슬픔이 아직도 깊은 곳에 맺혀있다.

세월이 흘러도 그때의 비극은 현재 속에서 다시 호명된다. 지난 8월 24일,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불교 지화 장인 다여스님의 지화 전시 <재, 꽃잎, 풀림의 의례>를 관람했다. 이 전시는 국가 폭력과 억울한 죽음에 대한 기억의 공간인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대공분실에서 펼쳐진다. 동시에 "조용한 의례이자 치유의 행위"다. 전시는 오는 9월 28일까지 진행된다.


지화가 품은 기억과 위로

전시는 지나간 사람들을 추모하는 자리이자,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풀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남은 사람은 할 말도 쌓인 감정도 많다. 국가 폭력이 자행되던 시절, 누구에게 한이 없었겠는가.

지화는 모두를 위한 꽃이다. 손수 만든 꽃 한 송이 마다 불자의 추모와 애도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안에는 극락왕생의 불심과 염원이 응축돼 있다. 그래서 지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남은 이의 응어리진 마음을 위로하는 한풀이 역할을 한다. 한과 염원을 담아 바치는 전통 매개체가 된다. 이번 전시 속 지화는 남겨진 자의 원통한 마음을 어루만지며, 떠난 이들이 극락왕생과 평온을 이루기 바라는 뜻을 품고 있다.

나선형 계단과 매화.
▲나선형 계단과 매화. 김정연

그 시절,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눈이 가려진 채 1층의 나선형 계단을 올랐다. 나선형 구조는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어 층수를 알 수 없게 만들었고, 디딜 때마다 울려 퍼지는 쇳소리는 공포를 더 심화시켰다고 한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지 못했고 일상 생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사람은 두려움과 억압 속에서 목소리를 잃고 무기력해진다. 이 계단은 그런 계단이었고, 그런 시절이었다. 다여스님은 나선형 계단에 매화를 놓아 그들의 넋을 달랬다. 이 매화에는 국가 폭력 피해자들이 가정으로 무사 귀환하고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2층은 간첩 조작 사건을 이야기한다. 과거 이곳에서는 물고문, 전기고문, 손톱뽑기 등 수많은 고문이 행해졌다. 평범한 사람들은 고문에 못 이겨 빨갱이가 되었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며 죽어갔다. 이 공간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죄인이 될 수 있었다. 고문으로 받아낸 허위 진술로 국가는 빨갱이를 잡았다며 세상에 공표했고, 자신들의 입지를 굳혔다. 간첩 조작 사건의 가장 무서운 점은 국가 주도 하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흰색과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색으로 만든 지화 군집.
▲흰색과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색으로 만든 지화 군집. 김정연

이곳에는 "주로 흰색과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색으로 만든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지화 군집"을 놓았다. 그중 하나인 '약사여래칠불공덕화'는 "중생의 병을 고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부처님의 공덕을 상징"한다. 공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힘을 뜻한다. 그 힘은 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현실적 고통과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중생이란 당시의 일반 사람들을 뜻한다. 이 지화에는 위축되어 있던 무고한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이겨내라는 의미가 담겼다. 지화 군집을 놓은 이유도 같다. 여러 지화를 함께 두어 사람들이 당시 상황에 위축되지 않고 억울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바랐다.


희망을 꺾어도 꽃은 지지 않는다

3층에는 가장 끔찍한 고문이 자행 됐던 특수조사실이 있다. 특수조사실은 고위급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의 존재'이기도 했다. 국가는 이 사람들을 잡아 고문하고 조사하며, 국민의 미래를 짓밟았다. 인간은 당장 오늘이 무서워도 언젠가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면 힘을 갖고 나아갈 수 있다. 즉, 이곳은 사람들의 희망을 끊어낸 공간이었다.

특수 고문실 고문기구와 지화 특수 고문실 고문기구 위에 놓인 실국화와 별꽃 지화
▲특수 고문실 고문기구와 지화 특수 고문실 고문기구 위에 놓인 실국화와 별꽃 지화 김정연

"고문이 자행됐던 이곳에 추모의 의미로 '실국화'와 사후 하늘의 별이 된다는 믿음을 담은 '별꽃'이 헌화돼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 <재, 꽃잎, 풀림의 의례> 팸플릿, 2025

특수 고문실을 나와 옆문으로 들어가면 가해자인 고문 경찰과 조사자들이 쉬던 반장실이 있다. 손 한 뼘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로폭이 굉장히 좁은 창문만 있는 조사실과 달리 반장실의 창문은 야외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이 창문에 흰색 번가사를 걸어 풍경을 가렸다. 끔찍한 고문을 행한 "자신을 되돌아보라는 의미"다.

번가사 밑에는 불두화, 라망화, 반야화, 육판화, 산지화를 두었다.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깨끗한 마음을 드러내며, 어리석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고 구원받으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러한 지화를 통해 가해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사죄하며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4층의 지화는 다른 장소의 지화와 다르게 아름다운 색으로 염색돼 있다.

"희생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목소리를 낸 국가폭력 저항자의 푸르고 만개한 모습을 기리기 위함이다." - 민주화운동기념관, <재, 꽃잎, 풀림의 의례> 팸플릿, 2025

희망과 번영을 상징하는 보배나무
▲희망과 번영을 상징하는 보배나무 김정연

당시에는 국민을 국가의 소유물로 여겼기 때문에 언제든지 마음대로 데려가 고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폭력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물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에 '보배나무'를 두었다. '보배나무'는 "희망과 번영을 상징"하는 지화다.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해 1987년 6월 항쟁 기록이 담겨있는 공간에는 만다라화, 대만다라화 등 7가지 지화가 놓여있다.'만다라'는 부처님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도구를 상징한다.

전시 팸플릿에 따르면 이 지화에는 민주화라는 역사적 전환이 단순한 정치적 변화를 넘어 새로운 세계관의 실현이었음이 담겨있다. 이들이 바란 건 민주주의였다. 수많은 희생은 독재 종식을 넘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고통의 자리, 해원의 꽃이 피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가장 무서운 공간은 5층 조사실이다. 독재 정권 시기 운영된 각 조사실 중 유일하게 현장이 보존된 곳이다. 1970년대에 지어졌다고 하기엔 정교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5층 조사실의 모든 것이 단 하나만의 목적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목적은 고문이었다. 이것은 국가 차원의 고문이었다. 근대 국가의 민주는 국민을 독립적인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국가는 국민의 몸과 삶을 마음대로 다뤘다. 그래서 모든 폭력이 죄가 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국가 폭력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다.

5층 조사실 복도에 놓인 팔길상공양
▲5층 조사실 복도에 놓인 팔길상공양 김정연

다여스님은 5층 조사실 복도에 피해자들의 정신을 기리는 '팔길상공양' 지화를 바쳤다. 전시 팸플릿에 따르면 "각 조사실 방에는 '육광보살화' '화엄범계화' '전심화' 등 하늘을 향하는 수직적 형태의 지화기물을 두었"는데, 이를 통해 과거 수감자들의 모습을 단순한 고통의 이미지가 아닌 "저항 정신으로 피어난 인간상"으로 상상해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희생자들이 결국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해원에 이르렀다는 의미"도 담았다.

박종철 열사가 수감됐던 509호에 놓인 왕생화
▲박종철 열사가 수감됐던 509호에 놓인 왕생화 김정연

509호는 당시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 돼있다. 박종철 열사가 수감되고 고문 끝에 사망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방 안에는 박종철 열사의 사진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84학번 동기들의 근조기가 있다. 그는 방에 있는 좁은 욕실에서 비인권적 물고문을 당하다 욕조의 턱 부분에 목이 눌려 질식사했다.

박종철 열사의 영혼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평안한 극락 세계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왕생화'가 바쳐있다. 박종철 열사와 그의 가족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두었다. 전시는 박종철 열사뿐 아니라 그 순간을 살았던 그의 친구, 가족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이 독재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제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로 나아가 마음의 응어리를 내려놓기를 기원한다.

민주주의는 당연하지 않았다

1987년 6월항쟁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마음 한구석에 한을 품고 있다. 국가가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공격했으며, 내 친구와 가족을 죽였다는 한이 가슴에 맺혀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죽은 자들을 위해 남은 이들은 더욱 민주주의를 외쳤다. 저항만이 억울한 세상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운 내 친구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자유를 위해.

이 한과 저항은 결코 과거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또다시 비슷한 밤을 마주해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헌정 질서 수호'를 내세워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곧 1호 포고령이 발표됐다. 정치활동과 집회는 금지되고 언론은 침묵을 강요 당했으며, 거리에 선 사람들은 언제든 체포될 수 있었다. 어둠은 다시 우리 곁으로 스며들려 했다.

계엄 해제를 위해 일부 국회의원은 국회의사당으로 뛰어갔고, 시민들은 군인과 경찰 앞에 섰다. 두려웠지만, '계엄은 절대 안 된다'는 절박함이 용기를 만들었다. 새벽 내내 대치하며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되기를 기다렸다. 무장한 군인도 차가운 겨울 바람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거리로 나설 수 없던 사람들은 집에서 뜬눈으로 그들의 안전과 가결을 응원했다. 1987년의 기억처럼, 사람들은 또다시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날의 용기가 없었다면 역사는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갔을 것이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언론은 침묵하고, 거리는 폭력에 짓눌리며, 또다시 소중한 존재들이 희생됐을 지 모른다. 민주주의는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우리의 가슴에는 지워지지 않을 한이 남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런 억울함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다. 또한 남겨진 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이제는 그들이 억울했던 시절과 원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한풀이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는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았고, 쉽게 이뤄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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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 #지화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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