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LDN-P0013, LDN-P0011, LDN-P0094
송추향
할머니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맥시멀리스트다. 46년간 써온 가계부는 물론, 엄마가 입던 아기 옷까지 버리지 않았다. 이미 기록물 보관소가 된 거실, 그것도 모자라 기록 창고까지 마련한 우리 집보다도 물건이 두 배는 더 많다. 부산에 내려가면 다른 식구들의 "정리 좀 하자"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엄마가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기로 했을 때 필요한 자료들을 잔뜩 모을 수 있었다.
"기록 관리의 첫 번째는 전수조사를 하는 일이란 말이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무작정 모으고 보는 거야. 할머니 물건이 워낙 많아서 일단 사진이랑 앨범들을 먼저 모았어. 앨범은 오래되면 접착력이 떨어지면서 사진들이 막 나뒹굴거든. 앨범을 열었는데 딱 그 상태인 거야. 질서가 다 사라져버린 거지. 그래서 몇 만장 되는 사진들을 시기, 장소별로 정리했어."
- LDN-P0012 1966년 '이ㅇㅇ 중학생 때 뒤쪽에 글씨 있음 / 이둘녀 사진'
- LDN-P0013 1966년 '친구 이ㅁㅁ과 함께 뒷면 글씨 / 중3년 하복의 마지막 날'
- LDN-P0011 1977년 가을, 선보려고 찍은 사진
- LDN-P0001 1975년 '용두산 공원 이◯◯, 이▲▲, 최△△ / 엄마가 국제 시장에 한일 모사 점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중학생이었던 ㅎㅎ 이모가 놀러왔다 7살 위인 큰 이모는 당시 결혼하고 최◯◯과 최◻︎◻︎까지 출산한 상태였는데 같이 놀러 온 사진이다'
- LDN-P0094 1988년 7월 10일 '송◯◯가 말하길 송◯◯, 송◻︎◻︎, 박ㅇㅇ가 할머니 집 가는 길에 셋이 가는데 (송◻︎◻︎이) 갑자기 사라졌다 한다 알고 보니 도랑에 빠졌던 것. ◯◯은 그 이야기를 2023년 8월 지금 하면서 아직도 눈물 날 만큼 웃는다'
엄마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들려준 구술 증언을 토대로, 사진에 얽힌 이야기까지 함께 기록했다. 할머니가 모아두고 엄마가 정리한 사진들을 보며, 온 가족이 과거를 함께 추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냥 앨범으로 두면 또 뒤섞이거나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누군가는 짐이라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고. 그래서 디지털화를 하는 거야. 사진을 장소별로 그룹화해서 A4 용지에 붙이고, 빈 칸에는 사진 코드와 날짜, 이야기를 적어둬. 이렇게 해두면 스캔할 때 자동 급지가 돼서 훨씬 효율적이야."
엄마는 앨범 아카이빙을 하면서 할머니를 더 잘 알게 됐다고 했다. 그때를 묻는 내게 엄마는 차근히 할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집이 어릴 때 되게 가난했어. 겨울옷도 다 할머니가 직접 떠줬는데, 몸이 커져서 옷이 안 맞으면 실을 다시 다 풀어. 그 실을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 주둥이 부분에 넣어서 뚜껑 쪽으로 빼는 거야. 그럼 스팀 다리미질을 한 것 같은 효과가 생기거든. 그렇게 펴낸 실로 다시 몸에 맞게 옷으로 만들어줬어. 외식도 못 했어. 가끔 특별한 음식 먹어야 되는 날에는 치킨, 피자, 짜장면 이런 걸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서 주고. 할머니가 엄마를 가졌을 때는 귤이 너무 먹고 싶은데 살 수가 없으니까 귤껍질 버려진 걸 주워 먹기도 했대. 그래서 지금 일흔이 넘도록 일을 못 놓는 이유가 쉴 틈 없이 일하던 삶의 습관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
할머니는 청소 노동자, 신문 배달원, 어린이집 교사, 요양보호사로서 일하면서 비정기적으로 지역 신문 기자 일, 풍물패 장구 치는 일, 아파트 통장 일도 했다. 투석을 시작하면서 어린이집 교사 일은 포기했지만, 일 자체를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엄마는 늘 갈등했다. 할머니를 쉬게 해야 할까, 그 삶을 존중해야 할까.
"그런데 할머니가 재밌대. 아파트를 통장일 하면서 주민들 만나 떠드는 것도, 풍물패에서 공연하는 것도. 신문에 실린 자기 기사도 다 스크랩 해뒀더라고. 어린이집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웠는지도 계속 얘기하고. 말로는 '해야되니까 하는 거지'라고 말하지만 할머니 눈은 엄청 반짝반짝한 거야. 그때부터 할머니한테 힘들게 안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안 하게 됐어. 할머니를 기록하는 일도 의미가 더 커졌고."
엄마에게 할머니는 '이미 다 아는 사람', '더 이상 물을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기록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가 엄마를 기록하겠다며 처음 기사를 쓰던 때가 떠올랐다. 엄마가 힘든 일을 하며 사는 게 아니라 치열하게, 즐겁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은 날. 새로운 엄마를 만난 날. 아카이빙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방식이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누군가를 다시 나아가게 했다

▲ 2021년 핑계부엌 판대매 위 할머니의 작품들 (좌측 하단 갈색 깔개와 컵받침)
송추향
엄마가 다음으로 기록한 할머니의 물건은 D.N.콩팥 컵받침, D.N.콩팥 장식깔개였다.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코바늘을 뜨는 거야. 투석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지난 시점에. 근데 수술 받은 손은 움직일 수가 없잖아. 그래서 나머지 한 손만 써서 뭔가를 막 만들더라고. 할머니가 수술 이후에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나름의 소일거리를 찾아 즐긴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좋았어. 할머니가 만든 것들이 좀 특별하게 느껴졌어."
인생에서 유일하다시피 찾아온 휴식기에도 할머니는 할 일을 놓지 않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직접 뜬 컵받침과 장식깔개를 아카이빙 하고, 이야기를 브랜딩 해 자신이 운영하는 동네 공유부엌에 내놓았다. 단순히 '그런 일도 있었다'라는 말로만 남기기엔 너무 아까운 기록이었기에.
"할머니가 만들 걸 산 사람이 투석을 앞둔 친구를 둔 사람이었어. 근데 일상이 다 무너질까봐 투석 시작하기를 꺼렸던 거야. 한 번 시작하면 그만둘 수가 없거든. 그래도 살려면 해야 하잖아. 그래서 친구한테 할머니가 투석하면서 만든 컵홀더랑 받침깔개를 선물했대. 투석을 해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아카이빙은 단순히 한 사람의 삶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타인의 삶을 나아가게 만들기도 한다. 엄마가 남긴 할머니의 이야기가 투석을 앞둔 한 여성에게 버틸 힘이 되어준 것처럼.
인생을 기록하는 할머니, 할머니를 기록하는 엄마, 엄마를 기록하는 딸
엄마는 여전히 명절이면 부산에 내려가 할머니를 기록한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살던 동네 골목을 촬영하기도 하고, 할머니를 종일 쫓아다니며 그 하루를 담기도 한다. 이모가 선물한 편지, 삼촌이 쓴 '자식탐구영역' 문답공책, 할머니 할아버지가 적은 '어버이 자서전'같은 실물 기록물도 꾸준히 디지털 아카이빙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할머니를 기록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무언가를 모으고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려는 습성도 유전일지 모른다. 엄마는 할머니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 집안 내력이 수집과 기록이라니. 나는 늘 엄마에게 "엄마랑 살면 미니멀리스트는 절대 못 되겠다"고 말해왔었는데, 독립해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 해도 미니멀리스트는 못 될 듯하다.
이번 추석에도 부산에 갔다 오는 길, 엄마는 또 할머니 물건들을 차에 잔뜩 싣고 올 거다. 집안에 물건은 더 쌓이겠지만, 이제는 이해하기로 한다. 그건 우리 집의 내력이자, 언젠가의 내 모습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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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할머니가 살려고 시작한 일... 이런 사연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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