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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총독상 글짓기 대회에 비친 '조선 어린이'의 일상은 이랬다

    [인터뷰①] <제국의 어린이들> 펴낸 작가 이영은씨

    등록 2025.09.27 19:23수정 2025.09.2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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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표창 경성일보 1940년 3월 9일 기사. <슬픔을 넘어서>라는 수필로 당시 총독상을 수상한 한옥영(경성여자사범부속 소학교 6학년) 양에 대해 경성일보는 "조선 내의 교육 관계자와 심사 회원의 극찬을 받았다"며 "한옥영 양은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맡아, 이번 수상을 계기로 훌륭하게 경기고등여자학교에 입학한 수재"라고 보도했다. 한 양은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글짓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 글짓기 안에 나오는 야마구치 토라오라는 병사님은 지금 오사카에 계십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겉으로는 ‘어린이다운 표현’을 장려했다던 글짓기 대회가 사실은 '내선일체'를 주입하기 위한 총독부의 교육 전략이었다.
    ▲제2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 표창 경성일보 1940년 3월 9일 기사. <슬픔을 넘어서>라는 수필로 당시 총독상을 수상한 한옥영(경성여자사범부속 소학교 6학년) 양에 대해 경성일보는 "조선 내의 교육 관계자와 심사 회원의 극찬을 받았다"며 "한옥영 양은 1학년 때부터 반장을 맡아, 이번 수상을 계기로 훌륭하게 경기고등여자학교에 입학한 수재"라고 보도했다. 한 양은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서 글짓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 글짓기 안에 나오는 야마구치 토라오라는 병사님은 지금 오사카에 계십니다.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겉으로는 ‘어린이다운 표현’을 장려했다던 글짓기 대회가 사실은 '내선일체'를 주입하기 위한 총독부의 교육 전략이었다. 이영은 작가 제공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키워야 한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처럼 들리지만, 정작 '어린이다움'의 정의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져 왔다. 복종과 자율, 훈육과 체벌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결국 어린이가 '이 사회'의 일부로 편입될 수밖에 없는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정한 규범 속에서 주는 대로 받고, 이끄는 대로 따르며 어린이들은 그렇게 자랐다. 더더군다나 그것이 '제국'이라는 틀 안에 갇히면 이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제국이 설계한 어린이 상으로 길들여지게 된다.

    이영은 작가의 책 <제국의 어린이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 반도의 어린이들이 쓴 삶의 풍경'의 부제를 빌려 '어린이다움'이 가장 극단적으로 규정된 그 시절을 파헤친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1938년 조선총독부 주최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로, 당시 조선에 살던 일본과 조선 어린이들이 일본어로 직접 썼던 글이다. 군국주의가 지배한 제국의 식민지 사회에서, 일본과 조선 어린이들이 어떻게 길들여졌는지를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볼 수 있다. 당대 사회와 어른들의 야욕이 만들어낸 허상에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평범한 아이들 삶에 스며든 제국의 민낯

    책은 1940년 개봉해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낸 영화 〈수업료〉가 전남 광주 한 어린이의 글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일본 어린이는 무료, 조선 어린이는 수업료를 내야 했다. 결국 가난에 못이겨 수업료를 내지 못해 결석이 잦자 일본인 선생이 그 학생의 집을 찾아가 수업료를 할머니에게 내밀지만, 할머니는 이를 밀린 집세로 대신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60리(24킬로미터) 거리를 걸어 친척에게 수업료를 빌리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학교에 돌아오기 위해.

     1940년 당시 조선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 <수업료>의 한 장면. 수업료를 내지 못한 조선 어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 주의를 듣고 있다(왼쪽). 이후 이 어린이의 집을 찾은 일본인 선생이 직접 수업료를 할머니에게 건네지만, 이는 밀린 집세로 대신한다.
    ▲ 1940년 당시 조선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 <수업료>의 한 장면. 수업료를 내지 못한 조선 어린이가 자리에서 일어서 주의를 듣고 있다(왼쪽). 이후 이 어린이의 집을 찾은 일본인 선생이 직접 수업료를 할머니에게 건네지만, 이는 밀린 집세로 대신한다. 유튜브 캡처

    이 영화는 제1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학무국장상을 받은 동명의 작문이 원작이다. 이는 일본 식민기구가 내세울 만한 좋은 선전거리가 됐다. 일본 교육 제도 편입에 반대하던 조선인들이 결국 이 새로운 교육제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의 글이기 때문.

    이 같이 저자는 당시 조선과 일본 어린이들의 글을 나란히 보여주며, 천황에 대한 충성, 전쟁의 미화, 식민지적 고뇌가 교묘히 스며든 기록들을 여과 없이 펼쳐낸다. '순수한 글' 속에 녹아든 제국주의의 야욕의 윤곽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읽다 보면 '어린이다움'이라는 말이 단순히 아이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수준을 넘어, 사상까지 지배하는 사회적 도구였음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어린이다운 표현'을 장려했다던 글짓기 대회가 사실은 '내선일체'를 주입하기 위한 총독부의 교육 전략이었다는 점, 조선인을 단순한 피지배층이 아니라 제국의 말단 일원으로 길러내려 했던 야심이 어떻게 초등 교육 속에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책은 아이들의 일상에서 출발해 점차 전쟁으로 향하는 흐름을 따라가며, 평범한 하루가 어떻게 제국의 야심 속에서 재구성됐는지 깨닫게 한다.

    저자는 또한 친일과 반일의 단순한 구도를 넘어선다. 당시 조선의 아이들이 '친일' 범주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제국의 틀 안에서도 여전히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평범한 아이들의 삶, 바로 그 일상의 기록이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흥미로운 것은 출간 과정이다. 이영은 작가와 16, 20일 양일간 주고 받은 서면 인터뷰에서 의외의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일본 측에 먼저 출간 제의를 했지만 "국가주의 교육의 폭력성을 지나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한국의 을유문화사에 제안을 했고, 책은 곧바로 출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여기서 한일 양국이 역사를 바라보는 '온도차'를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또 하나 놀랐던 것은 이영은 작가가 '이아이'라는 예명으로 우리나라에서 배우로 활동했다는 사실. 동시에 오랫동안 일본에서 공부한 사학자다. 전공은 '여배우 역사' '영화사' '연극사' '한일관계사'.

    다음은 그와 주고 받은 내용이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집필한 이영은 작가
    ▲ <제국의 어린이들>을 집필한 이영은 작가 이영은

    조선총독부 주최 글짓기 대회, 어린 눈에 비친 제국의 삶의 기록

    - 일본에서 먼저 출판하려 했는데.

    "처음엔 일본에서 출간할 생각이었다. 앞서 여배우 역사에 관한 박사 논문을 일본에서 출판해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책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출판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거절당했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쉽게 출간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의 온도차에 적잖이 놀랐다. 이 책은 두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가능하다면 동시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 출간 무산 이유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일본 본토에서 보면 조선 반도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거의 없었고, 또 이 원고의 전쟁 파트에 담긴 '국가주의 교육의 폭력성' 해설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일본 독자들이 외면할 거라는 얘기였다. 원로 학자들에게 당시 제국주의 시대는 이미 패전과 반전 운동을 거치며 극복된, 지긋지긋한 과거였을 테니까. (이들은) 다음 세대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이 주제가 '동시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 일제강점기 어린이들의 글을 연구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교과서처럼 알고 있던 '친일'과 '반일'이라는 단순한 구분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을 발견했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도 고등학교 때까지 한국에서 검정된 역사 교과서로 근현대사를 공부했다. 안중근 의사를 존경했고 이봉창 의사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여배우를 통한 대중문화를 연구해왔는데, 대중문화는 자본을 빼고는 형성될 수 없었던 것이기에 친일과 반일의 경계에 있던 인물들을 많이 목도해왔다. 이 대회(조선총독부 주최 일본인과 조선인 소학생 전체를 상대로 글짓기 경연대회)에 참여한 어린이들 역시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친일 범주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 제국의 체제를 거부하고 조선 반도를 떠나지 않은 당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자식들이었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던 어린이들이었다."

    총 7회에 걸쳐 진행된 이 대회 가운데 1938∼1939년의 우수작만이 '총독상 모범 문집'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으로 묶여 출판됐다. 그러나 이 기록물의 존재와 의미는 오랫동안 학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은이는 이 자료를 발굴해 소재별(전쟁·비전쟁)로 나누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글을 대조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함의를 끌어냈다.

    대체로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은 심사위원의 눈을 의식해 글을 쓴다. 서슬 퍼런 제국주의에서 오죽했을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몇 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처지에 젖어 들었을 테고 어린 마음에서 우러난 솔직한 정서가 글 속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 시절 독후감 쓸 때 먼저 읽어볼 선생님을 의식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 생각과 처지에 집중하곤 했으니까. 여튼, 지은이는 경연대회 출품작이라는 한계와 조건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드러나는 단정한 문장과 순정한 마음의 결을 부정하지 않았다.

     <제국의 어린이들> 책
    ▲ <제국의 어린이들> 책 을유문화사

    조선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의 글, 이렇게 달랐다

    - 주석과 설명을 덧붙이면서 자료 해설에 특별히 공을 들인 이유는.

    "그 시대를 생생히 전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라 봤다. 고민 끝에 우연히 만난 <땅의 심장>이라는 동화책이 큰 영감을 주었다. 글짓기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 땅에서 들려오는 심장 소리처럼 느껴졌고, 그 가치를 전하고 싶어 411편 가운데 작품을 신중히 골랐다. 또한 당시의 단어와 지명은 주석으로 보완해 독자들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제국의 어린이들>에는 식민지 어린이들의 일상이 수필 형식으로 담겨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본 당시 시대상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보나.

    "한자 문화권에서 어린이가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은 큰 노력이 필요했다. 패전 일본의 글짓기 교육은 형식주의, 자유 발표주의, 사생주의, 문예주의, 생활주의, 황국주의로 나뉘었는데, <제국의 어린이들>에 실린 제1·2회 조선총독상 글짓기는 '생활주의'와 '황국주의'의 경계에 있었다."

    - '생활주의와 황국주의의 경계'라니.

    "1940년 제2회 대회 이후 일상을 다룬 글은 사라지고 전쟁을 위한 글만 쓰이게 됐다. 전쟁을 소재로 하지 않은 글들은 어린이들이 일상을 솔직히 기록한 것이었으며, 그 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조선인 어린이들은 가난했다'는 점이었다."

    - 조선 어린이와 일본 어린이가 함께 글짓기에 참여했다. 이 어린이들의 생활상을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이나 세계관은?

    "조선인 어린이들의 글을 보면,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가계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하고, 소 먹이 값이나 소 판 돈, 일꾼의 삯 등을 적어 마치 가계부를 쓰듯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에서는 고학년이 될수록 자신과 주변 인물, 또는 위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 인식이 뚜렷해졌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거나, 에디슨이나 이토 히로부미 같은 위인전에 나오는 인물과 자신을 비교하는 글들이 등장했다."

    그랬다. 전라남도 광주 중앙공립 심상고등소학교 제3학년 타마루 사다코 일본 어린이가 쓴 '군대에서 돌아온 오빠'의 내용을 보면, "전쟁터에서 돌아온 오빠는 어딘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며 "한쪽 눈은 유리 눈을 했고 이는 천황폐하가 주셨다"고 말하며 오빠를 걱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가 하면, 이영은 작가는 여기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착하고 모범적인 얼굴, 그 만들어진 얼굴(혹은 가면)은 종주국인 일본인 어린이들보다 식민지인 조선인 어린이들에게 더 두텁게 씌워져 있었다. 이런 얼굴-가면들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씌워진 것일까?'라고.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감추고 '제국'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은이),
    을유문화사, 2025


    #제국의어린이들 #조선총독부 #수업료 #을유문화사 #이영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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