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파 김학규 장군-오광심 애국지사 제58주기 추모회
이호인
19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백파 김학규(1900~1967) 장군과 부인 오광심(1910~1967) 지사의 제58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김학규 장군과 오광심 애국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열린 이번 행사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 김학규장군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광복회·한국광복군유족회 등 관련 단체가 후원하였으며, 유족, 보훈단체 관계자, 그리고 일반시민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했다.
백파 김학규(1900~1967) 장군은 평안남도 출신으로 1919년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교관과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1930년대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영릉가·통화 등 만주 일대 전투를 지휘했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참모처장과 제3지대장을 맡아 선전·초모·정찰과 국내 진공 준비를 총괄했고, 광복 직후에는 상하이 판사처장을 맡아 교민 보호와 귀국 지원에 힘썼다.
해방 이후 정치적 격변 속 옥고를 겪었으나 1960년 명예를 회복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부인 오광심(1910~1967) 애국지사는 평북 선천에서 교사로 일하며 조선혁명당·광복군에서 사무·선전 업무를 맡아 항일운동을 뒷받침했고, 광복 후에는 민족교육에 헌신했으며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부부 광복군의 헌신, 정의의 길을 남기다
염정림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은 광복 80년의 의미를 짚으며 "김학규 장군님과 오광심 지사님은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서 부부 광복군으로 대일 선전과 정보 활동에 앞장섰다"고 평가했다. 그는 "두 분은 광복 후에도 중국 각지의 한인 4만2천여 명 귀환을 도운 커다란 동포애를 실천했다"며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예우를 더욱 높이겠다"고 밝혔다.
이기중 광복회 부회장(이종찬 회장 추모사 대독)은 장군의 생애를 요약하며 "장군은 3.1운동 참여 뒤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조선혁명군 참모장으로 무장투쟁의 중심에 섰고, 전시 수도 중경에서 광복군 창설을 주도했다"고 상기했다. 이어 "해방 직후에도 즉시 귀국하지 않고 현지 동포들의 안전과 귀환을 위해 활동했으며, 환국 뒤에는 정치적 모함과 옥고 등 비운을 겪었다"면서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는 신념으로 독립정신을 꿋꿋이 계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장병화 한국광복군유족회장은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열의 헌신을 기리는 한편 "일본의 역사 부정과 국내 일부의 왜곡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청년 세대 교육과 선양 사업을 통해 선열의 애국·애족 정신을 더욱 굳건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창제 목사(고 김학규 장군 외증손)는 유족 뜻에 따라 짧게 예배를 진행하며 서주식 장로(김학규 장군 손녀사위)를 호명해 기도를 올렸다. 서 장로는 "장군 서거 58주기 기념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한다"면서 1940년 11월 12일 충칭 국제방송에서 발표된 '광복군 당면공작' 방송문 초록을 상기했다.
이어 "광복군은 겨레의 힘을 하나로 모아 하나의 구령 아래 총공격을 개시한다"는 대목을 인용해, 독립전선의 연대 정신을 오늘의 과제로 연결했다. 그는 한반도 안보 긴장과 사회 갈등, 국제 통상 환경의 급변을 언급하며 "나라를 위한 길이라면 하나로 뭉쳐 이 시기를 헤쳐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전쟁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강의 기적을 예로 들며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켜 달라"는 간구로 마무리했다.
김창제 목사는 성경 고린도후서 3장 17절(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을 본문으로, '참 자유'를 주제로 짧은 설교를 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주권 상실의 기억과 광복의 회복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얻은 것은 우선 외적 자유였지만, 오늘의 과제는 마음과 영혼의 자유"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서사와 6·25 전쟁의 경험을 나란히 들며 "번영 속에서 감사와 절제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빌립보서 4장 4절과 사도행전 16장의 바울 일화를 예로 들어 "환경의 쇠사슬을 넘어서는 내적 자유"를 역설했다. 이어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는 구절을 상기시키며, "김학규 장군이 외친 국가의 자유 위에 오늘의 우리는 영혼의 자유를 더해야 한다"고 맺었다.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단상에 선 김일진 유족대표(장군의 아들)는 "아버님이 별세하신 지 벌써 58년"이라며 "초장 때는 국가 사회장으로 광화문에서 영결식을 치렀다"고 회고했다. 그는 해방 뒤 부친이 김구 선생 시해 사건과 관련해 15년형을 선고받는 등 억울한 시련을 겪었다고 전하면서 "그 시절 어머니는 망원동에서 홍대입구까지 수레를 끌고 다니며 술지게미(주박)로 돼지를 먹이고 밤새 삯바느질을 했다"고 전했다.

▲ 추모사를 전하는 염정림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이호인

▲ 김학규 장군의 외증손, 김창제 목사가 추모예배를 전하고 있다.
이호인

▲ 김학규 장군의 아들 김일진 유족대표가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이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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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백파 김학규 장군 ·오광심 애국지사 제58주기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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