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천리 용천수, 자손 대대로 맑게 흘러야

올레길 18코스 용천수 탐방길을 걷다

등록 2025.09.23 09:33수정 2025.09.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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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문화와 함께하는 제주 조천리 용천수 탐방길. 제주 올레길 18코스에 있다.
역사, 문화와 함께하는 제주 조천리 용천수 탐방길. 제주 올레길 18코스에 있다. 전갑남

9월의 한날, 조천읍 바닷가 인근 숙소에 오후 늦게 도착했다. 눈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가 그림 같다. 여행 첫날은 여독 때문에 일찍 잠속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새벽 5시. 해가 많이 짧아졌다. 이제나저제나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6시가 한참 넘어서야 창밖이 훤해진다.

제주인의 삶과 함께한 용천수


제주 올레길 18코스. 출발한 마을 골목길은 아기자기한 시골 정취가 묻어있다. 따뜻한 고향 집에 온 듯하다. 해안가 바위는 온통 숯가루가 묻은 듯 검은색이다. 화산 현무암이 바다에 쭈욱 깔렸다.

 아름다운 해안이 있는 제주도 동부지역 조천리
아름다운 해안이 있는 제주도 동부지역 조천리 전갑남
 용천수가 있는 조천읍 조천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지역주민의 소박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용천수가 있는 조천읍 조천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지역주민의 소박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전갑남

조금 걸으니 검은 돌탑들이 군데군데 있다. 돌탑은 다듬어지지 않은 큰 돌 작은 돌로 막 쌓아놓았는데, 그런대로 멋을 담았다. 돌탑 하나하나에 염원을 담은 것 같아 이색적인 느낌이 든다. 이곳에 용천수 탐방길 있다는 데, 길을 잘못 든 건 아닐까? 걱정도 잠시. 마을 안길에 탐방길 안내 간판이 보인다. 반갑다.

용천수라? 용이 승천한 물이라는 뜻일까. 그게 아니다. 물 솟을 '용(湧)'자를 쓰인 것에서 답을 얻는다. 용천수(湧泉水)는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 땅 밑에서 지표면으로 솟아 나오는 샘물이라 한다. 지하수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뚫고 나온 맑은 물이다.

 맑은 물이 있는 조천리 용천수.
맑은 물이 있는 조천리 용천수. 전갑남

제주도에는 많은 용천수가 있다고 알려졌다. 제주 자연부락은 용천수를 중심으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천수는 제주민의 삶을 지탱해 주는 생명수였다. 식수뿐만 아니라 동네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하며 얘기를 나누던 생활 터전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땀을 식히며, 몸을 씻고 지내던 추억의 장소였으리라.

조천리 해안가 일대는 20여 개의 용천수가 있다. 제1물 '궷물·궤물에서 시작하여 제23물 '이들물'까지 각기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 조천리는 해안도로가 없으므로 다행히 용천수가 잘 보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용천수의 가치를 알리고, 이를 활용한 주민들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탐방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20여개가 있는 조천리 용천수는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20여개가 있는 조천리 용천수는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전갑남

용천수는 주택가 붙어 있기도 하고, 좀 떨어져 있기도 하다. 우물터를 탐방할 때 포인트가 있다. 칸이 나누어졌느냐, 그렇지 않냐이다. 칸이 나누어진 곳은 여성들이 이용한 곳이고, 한 칸으로 된 곳은 남성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사용한 곳은 주로 세 칸으로 되어 있다. 둘러친 담이 높다. 맨 위쪽은 식수로 사용했고, 중간은 야채를 씻는 용도이고, 아래쪽 물은 빨래하거나 목욕을 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남성들은 등목을 치거나 바다 일을 마치고 어구 등을 씻느라 한 칸으로도 족했으리라.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을 쓰임새에 맞게 사용하는 지혜가 놀랍다.


용천수 중 '도리물'이라는 이름이 있는 곳이 있다. 왜 도리물일까? 들어가는 입구 돌담부터가 예쁘고 색다르다. 돌담길을 따라 나타나는 예쁜 도리물! 세 칸 나누어진 것을 보니 여성들이 이용한 것 같다.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 보물처럼 숨어있는 맑은 물이다.

이곳 물은 흐르는 방향이 마을을 향하고 있다. 대부분 용천수가 낮은 바다 쪽으로 흐르는데 여기는 특이하다. 그래서 도리물이라는 이름이 붙인 것 같다. 흐르는 물에 손을 씻어 봤다. 엄청 차갑다. 등목이라도 치면 몸이 오싹할 것 같다.

 보호종 2급 생물인 두이빨사각게도 용천수에서 만날 수 있다.
보호종 2급 생물인 두이빨사각게도 용천수에서 만날 수 있다. 전갑남

용천수마다 많은 게가 기어 다닌다. 카메라를 들이댈 사이도 없이 감쪽같이 돌 틈으로 숨어버린다. 게 중에는 평범하지 않은 보호종 2급인 두이빨사각게도 있다. 녀석들은 어찌나 겁이 많고 예민한지 자세히 관찰하기도 전에 내빼기 바쁘다. 칙칙한 몸통 색과는 달리 집게발이 주황색을 띠고 있어 여느 게와 구별된다.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귀엽다.

용천수가 있는 갯가에서 할머니 한 분이 열심이시다.

"할머니, 게 잡으세요?"
"아냐. 이걸 따고 있지!"
"그게 뭔데요? 보말이란 건가요?"
"맞아. 이걸로 죽도 쒀먹고, 칼국수 끓여 먹으면 맛나!"

 용천수가 있는 갯가에서 마을 주민이 보말을 따고 있다. 거둔 해산물을 용천수로 깨끗이 씻는다.
용천수가 있는 갯가에서 마을 주민이 보말을 따고 있다. 거둔 해산물을 용천수로 깨끗이 씻는다. 전갑남

할머니는 개흙이 묻은 보말을 용천수로 깨끗이 씻는다. 용천수가 아직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닷물이 들락이는 용천수 주위에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눈에 띈다. 게와 보말뿐 아니라 고동 등이 숨쉬고 있다. 바다와 용천수가 만나 하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녀석들의 생존에 방해가 될까 발길 옮기기가 꽤 조심스럽다.

용천수가 예전 모습을 되찾으면 좋겠다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온 용천수! 이제는 집집마다 상수도시설이 설치되고부터 가까이 하는 일이 없어졌다. 관심 밖에 놓인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용천수는 오염이 되고, 냄새까지 난다. 어떤 곳은 메마른 곳도 있다니 안타깝다.

용천수 탐방길을 만들어 그 가치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맑은 물이 예전처럼 흐르도록 잘 관리되면 참 좋겠다. 탐방길 여행자에게도 깨끗한 용천수 한 바가지를 들이킬 수 있도록 말이다. 수맥을 끊기지 않게 하고, 오염된 물이 용천수와 섞이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역 주민들이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관리하고 있다지만, 너저분한 몇 군데 용천수를 보면서 자연이 준 소중한 선물을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씁쓸함이 남는다.

들숨으로 머금고 날숨으로 솟구친 제주 용천수! 지금 여행자에게 말을 걸어온다. 용천수가 제주인의 삶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있는 현장으로 자손 대대로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맑게 흐르게 해달라고!
덧붙이는 글 9월10일부터 9월16일까지 제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조천리용천수 #용천수탐방길 #두이빨사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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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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