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인권침해 조항들. 일부는 절반이 넘는 학교에서 존재했다.
토끼풀
'집단행동을 선동'하는 행위를 징계하는 학교는 10개였다. 일단 '선동'의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집단 행동을 규제한다는 발상도 반헌법적이다. 우리 헌법에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는데, 학교에서의 집단 행동을 막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 법률적으로도 형법의 '내란선동죄'나 테러방지법의 '테러선동죄' 등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국가적인 이익을 상당부분 침해할 때만 '선동'과 '집단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개 학교에 모든 종류의 집단 행동을 내키는 대로 징계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학교를 무너뜨리려는 목적으로 학생들을 선동하는 행위는 징계해야겠지만, 단순히 학교의 비상식적인 조치에 민주적으로 항의하는 행위까지 징계할 수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
'허가 없는 동아리 조직'을 통한 '교칙 문란'을 징계하는 학교는 8개였다. 우선 동아리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 활동하는 조직인데, 왜 학교의 허가를 받고 만들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학교의 시설물을 사용할 때는 허가가 있어야겠지만, 단순히 학생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규제하는 건 비상식적이다. '교칙 문란'도 기준이 모호하다. 내란죄의 구성 요건인 '국헌 문란'에서 따 온 것 같은데, 학생들을 잠재적 내란 우두머리로 취급하는 것인가. '교칙 문란'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교칙 문란'은 곧 '학교 관리자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 되기 쉽다. 실제로 신도중학교에서는 <토끼풀>을 '허가 없이 동아리를 조직해 교칙을 문란하게 한 행위'로 취급해 배포를 금지했다.
'불온 문서'를 제작·게시·탐독·유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학교는 10곳이었다. '불온 문서'는 더욱 기준이 없다. '학교 관리자들이 보기 싫은 문서'가 바로 불온 문서 아닐까. 과거 군사정권 시절 '금서'를 지정해 일부 서적의 출간을 금지한 행위와 무엇이 다른가. 당시 '금서'에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이 포함됐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신도중학교에서는 <토끼풀>을 불온 문서로도 규정해 배포 금지의 명분으로 썼다.
9개의 학교에서 '불법 집회에 참여' 하거나 '불온 단체에 가입'하는 행위를 징계하고 있었다. '불법 집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불온 단체'는 기준이 없다. '학교 관리자에게 거슬리는 단체가 곧 불온 단체'로 변질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이성 교제를 금지하거나 일부 제한하는 학교도 5곳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성 교제 전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불건전한'이나 '과도한' 등의 수식어를 붙여 규제한다. 하지만 이 또한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불건전'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키스는 불건전한 행위일까. 손 잡기는? 포옹은? 그렇다면 대다수 어른들도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일삼고 있는 셈이 된다. 피임하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데이트폭력 등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부족한 마당에 고작 이성 교제를 규제하는 데 학교의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낭비다. 학생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화장 전면 금지·화장품 소지 금지'도
여기까지는 꽤나 보편적인 사례들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 전국에서 대부분 없어진 화장·염색·파마를 금지하거나 일부 규제하는 학교들도 있다. 화장은 5곳, 염색은 3곳, 파마는 2곳에서 금지·규제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화장·염색·파마 중 한 종류만 규제하고 있는데, 충암중학교에서는 무려 화장과 염색, 파마를 전부 금지한다. 심지어는 화장품을 휴대하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자연적 갈색 및 곱슬머리는 학교장의 결재를 득한 후 허용한다"는 조항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연 갈색과 곱슬머리까지 허가받아야 하는 것인가.

▲ 충암중학교 학생생활규정 제12조 2항.
충암중학교
인권침해 조항이 있는 학교들과 세부 조항 목록은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지에서부터 새로 만들어야"
각종 시민단체들도 과거부터 인권침해적 학생생활규정의 개정을 꾸준히 촉구하고 있다. 특정 지역 전체 학교의 학생생활규정을 전수조사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는 등의 활동도 이어진다.
이러한 운동을 이어 온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공현 활동가는 이러한 학생생활규정에 대해 "기존의 규정을 조금씩 고치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백지에서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학교규칙 자체가 민주주의적인 원리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았고, 학생을 규제할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공현 활동가는 "근본적으로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보장을 통한 학교 민주주의 강화, 학생인권 침해를 구제하고 문제가 있는 학칙을 고칠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생생활규정의 인권침해적 조항들은 교육청과 국가인권위에서 과거부터 개정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이러한 권고가 반영되지 않는다. 왜 일선 학교까지 이러한 권고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교육청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해 봤다.
<토끼풀>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에 제기한 민원에 답변한 담당자는 "각 학교 담당 장학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며 "학생생활규정을 담당하는 부서(민주시민교육과)에서 일괄적으로 학교들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소극적인 대응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인권침해적 요소가 다분한 학생생활규정, 이제는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1987년에 민주화됐지만, 학교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지금은 202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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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는 학교장 결재 득한 후 허용" 서울 은평구 중학교 교칙, 2025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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