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돌발가뭄보다 더 무서운, 보이지 않는 '봄 가뭄'

과학기반 산촉촉 운동으로 이른봄의 산불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등록 2025.09.23 11:49수정 2025.09.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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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은 '돌발가뭄 (flash drought)'이다. 며칠 사이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가축이 물 부족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 돌발가뭄은 주로 폭염과 일부 지역의 물 부족에 머무른다. 나무에는 여전히 수분이 남아 있고 잎이 달려 있어 산불로 번지지는 않는다. 긴급 급수나 절수 대책으로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한 가뭄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매년 이른 봄에 찾아오는 '보이지 않는 가뭄 (invisible drought)'이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산이 사실은 속부터 바짝 말라 있다. 잎이 떨어져 수분을 머금지 못한 나무와 메마른 토양은 작은 불씨 하나에도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다. 최근 반복되는 대형 산불의 배경에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가뭄이 있다.

광주 야산에서 확인한 과학적 증거

기자는 2022년 가을부터 경기도 광주시 야산에 '물모이'(빗물 저장 웅덩이)를 만들어 토양 함수율과 온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했다. 계곡과 경사면에 6개의 센서를 설치하고, 10cm·30cm·45cm 깊이에서 10분 간격으로 데이터를 수집했다(관련기사: 봄마다 산이 바짝 마르는 이유, 과학으로 밝혀보았습니다, https://omn.kr/2ctys).

데이터는 명확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경사면 토양 함수율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장에서는 '얼음기둥(frost heaving)' 현상이 관찰됐다. 토양 속 수분이 위로 끌려 올라와 표면에서 얼었다가 증발하며 땅을 바짝 말리는 것이다. 여기에 봄철 식물 생장이 겹치며 함수율은 더욱 낮아졌다. 기후변화 탓만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봄 가뭄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개미와 베짱이, 그리고 산촉촉 운동

이 상황을 보면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떠오른다. 여름 내내 부지런히 식량을 모은 개미는 겨울을 준비하지만,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 굶주린다. 빗물 관리도 마찬가지다. 지금 넘친다고 흘려보내면, 봄이 오면 불길을 맞는다. 지금부터라도 개미처럼 빗물을 모아야 한다(관련기사: 개미는 빗물을 모으고, 베짱이는 산불을 맞았다, https://omn.kr/2e28e).


그 방법이 바로 '산촉촉 운동'이다. 빗물을 붙잡아두는 작은 물모이를 곳곳에 만들어 토양 수분을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서도 물모이 주변은 경사면보다 훨씬 오랫동안 촉촉함을 유지했다. 물모이는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패이자, 소방용수와 산 생태계의 생명줄이 된다.

돌발가뭄은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가뭄은 전국적 위험이다


강릉 사태에서 본 것처럼 돌발가뭄은 갑작스럽게 찾아오지만, 물을 긴급히 공급하거나 수요를 조절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급박하지만 지역적이고, 대응할 시간과 방법이 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가뭄은 다르다. 봄마다 전국의 산이 동시에 위험지역으로 변한다. 불씨 하나가 튀면 해당 지역만이 아니라 인접 지역까지 연쇄적으로 번져,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낳는다. 돌발가뭄이 '해결이 가능한 국지적인 문제'라면, 보이지 않는 봄 가뭄은 '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전국적인 위험'인 셈이다. 하지만 산불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 해결책을 찾아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산림청에 묻습니다

나는 여름철 비가 많이 오기 전, 산림청 관계자에게 "이러한 물모이 실험을 해보자"고 정중히 제안한 적이 있지만(관련기사: 물모이 실험 제안, 산림청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https://omn.kr/2dleu) , 적어도 지금까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는 산불이 나면 헬기를 띄우는 '베짱이 산림청'이 아니라, 가을부터 빗물을 모아 숲을 촉촉하게 준비하는 '개미 산림청'이 되어야 한다. 겨울은 비가 오지 않아 새로운 대책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산불 예방은 겨울이 아니라 가을부터 시작해야 한다. 올가을부터라도 물모이를 만들어 숲을 촉촉하게 지켜낸다면, 내년 봄은 달라질 수 있다.

산불은 불씨로만 나지 않는다. 물이 사라진 땅에서 불씨는 불꽃이 된다.

"산이 촉촉해지면, 불은 멈춘다."

이 단순한 진실을, 이제는 정책으로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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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산림청 #물모이 #산촉촉운동 #보이지않는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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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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