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 구양리 햇빛두레 발전소는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한다. 발전소 뒤로는 마을 공유자산인 풋살장도 보인다.
손우정
구양리 괭이마을은 남한강 인근, 세종대왕릉 서쪽에 자리 잡은 70여 가구, 120명 정도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에 고양이(괭이)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 이곳에는 태양광발전소 여섯 기가 설치되어 있다. 2024년 11월 21일 태양광발전소가 준공된 이후 유지보수비와 운영비, 금융비용과 감가상각비를 제외하면 매달 대략 1천만 원의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전국에서 시도되고 있는 에너지 전환 마을의 한 사례 정도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괭이마을의 특징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수익을 창출했다는 것이 아니다. 신안군과 달리 괭이마을의 재생에너지 발전소 수익은 개인에게 배당하지 않는다. 발전소도 수익금도 온전히 마을이 '함께' 소유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농촌의 위기에 공동체 전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마을의 새로운 활로로 삼게 된 것은 구양리 마을 주민들이 특별히 기후 위기에 민감하거나 환경 의식이 투철했기 때문은 아니다. 기후 위기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정부 대책에서 농촌의 위기를 느낀 것이 동기라면 동기다.
계기는 2021년 발표된 2050 탄소중립 계획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엄청나게 만들겠다고 하는데, 건물 옥상이나 벽면만 활용해서는 목표치를 달성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도로나 유휴부지에 태양광 패널을 올릴 수 있는 양은 많지 않고, 공장 지붕에 얹자니 대부분 담보가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지붕이 멀쩡한 곳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발전소는 막강한 자본을 등에 업고 농지로 밀려올 것이 확실했다. 이건 농산물 수입 개방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어쩐다? 피할 수 없다면 먼저 치고 나가는 수밖에.
공동 자산, 공동 사업, 공동 소유
구양리의 특징은 예고된 위기를 개인의 힘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구양리만의 특색이 크게 작용했다. 모두가 형, 동생이고 대부분 동창인 농촌 마을의 유대감이야 별난 것이 없더라도, 남한강 인근 마을이라 매년 5천만 원 정도 받는 수계 지원금을 마을 전체가 함께 사용해 온 공유자산 운영의 경험은 남달랐다.
처음 수계 지원금으로 마을이 함께 쓸 수 있는 돈이 생기자, 마을 기금을 만들어 논을 사고 부족한 주차장과 함께 쓰는 농기계 보관소를 만들었다. 어릴 적부터 인근 중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놀던 주민이 많았으니, 그 돈으로 풋살장도 만들었다. 필요할 때만 쓰면 되는 농기구를 가구마다 사는 것이 낭비 같아서 벼 건조기 4대, 콤바인 2대, 지게차 2대, 트랙터 1대, 이양기, 파종기와 각종 작업기를 마을 기금으로 구매했다. 주민이 공동으로 쓰는 창고도 4동이나 지었다.

▲구양리 공유자산 구양리에는 수계 지원금으로 조성한 마을 공유자산이 많다. 주민이 공동으로 쓰는 창고 4동에는 벼 건조기, 콤바인, 지게차, 트랙터, 이양기, 파종기 등 공유 농기구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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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수계 지원금이 생겼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같은 수계 지원금을 받는 인근 마을은 이런 형태의 공유자산이 없다. 이런 구양리의 '공유 전통'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지어 보자는 시도도 자연스럽게 개인이 아닌, 마을 전체의 과제가 됐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주택 지붕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이걸 연결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농촌 마을에는 무허가 주택이 많아 합법적으로 패널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작게 작게 하려니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고령화된 농촌의 주민들은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툭 하고 냉소적인 한 마디를 던졌다.
"이봐, 내가 한 20년 더 살 것 같지?"
대안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마을 공동 자산도 많은데, 거기에 올리면 되잖아?" 다른 마을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구양리에서는 너무 쉬운 해답이었다. 결국 총 16억 7천만 원이 든 사업비를 여기저기 융자를 받아 마련하고, 인근 부지를 더 매입해 총 6개의 발전소를 만들었다. 100% 마을 주민이 소유하는 햇빛두레 태양광발전소가 완성됐다.
구양리의 특색이 이렇다 보니, 태양광발전소에서 나오는 수익을 어떻게 쓸 것이냐는 문제 역시 쟁점조차 되지 않았다. 공유자산의 경험이 있고, 그 효능감을 충분히 느껴왔던 구양리 사람들은 당연히 발전소의 수익도 마을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전소 수익과 수계 지원금을 합쳐서 마을 사무장 1명을 고용하고, 주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무료 마을 식당을 만들어 조리장 2명을 채용했다. 여기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활용해 3명이 식당 일을 맡는다.

▲구양리 마을식당 구양리 마을식당에서는 주민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식당 운영을 위해 주민들의 일자리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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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리 행복버스 멀리 나가는 주민을 위해 마을 행복버스도 무료로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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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교실과 노인대학에 나가는 주민이 많으니 '행복버스'라 이름 붙인 마을버스도 한 대 사서 꾸몄다. 비닐하우스에 놔둔 탁구대에서 탁구 치는 재미에 흠뻑 빠진 주민들이 늘어나자, 실내 탁구장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추석 노래자랑과 설 윷놀이 등 마을 행사 들어가는 술과 음료, 음식은 모두 마을 기금에서 충당한다.
구양리의 태양광 사업은 지구 환경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했다기보다, 예고된 위기 속에서 살길을 찾은 것에 가깝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다 보니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쓰레기 처리다. 시골에서는 쓰레기를 모아 두면 나도 모르게 불을 붙여 태우는 게 습관이다.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고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만들어 놓고 쓰레기를 태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자각이 생겼다. 그래서 주민에게 환경 교육도 하고 있다.
내친김에 전기 트랙터와 전기 콤바인, 태양광을 활용한 도정을 통해 저탄소 쌀을 생산해 브랜드를 만들어보자는 구상도 추진 중이다. 이제 막 재생에너지 사업에 첫발을 뗀 구양리지만, 공동체가 함께 해법을 모색하고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구양리 사례, 다른 마을에서도 가능할까?
구양리 사례는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의 위기와 농촌 소멸, 공동체 해체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마을에서도 구양리처럼 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사업을 구상하고 있지만, 위험해 보이는 함정이 도처에 있다.
"농촌이 살려면, 규제만 완화하고 외부 자본이 돈벌이 수단으로 (마을에) 들어오는 방식으로는 절대 안 돼요. 재생에너지의 주인은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개인은 욕심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돈이 사람을 왜곡해 버려요. 저희 마을에 견학 온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을 명의만 빌려주면 3메가 와트 발전소 지어서 1메가 와트 분량을 마을에 주겠다는 업체가 많대요. 농민을 바지 사장으로 내세워서 돈 벌려는 속셈이지요. 그럼 다 망해요.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서 주민이면 누구나 공동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꼭 필요해요."(전주영, 구양리 이장)

▲햇빛연금의 공동체 모델 공동체가 함께 운영하고 수익을 공유하는 구양리 모델은 전국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시절 구양리를 방문했고, 우원식 국회의장도 다녀갔다. 마을식당 입구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장 방문 기념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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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 이장도 신안군처럼 개인에게 수익을 배당하는 방식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가 우선해야 지속할 수 있고, 주민 간의 갈등도 줄일 수 있다. 말은 쉽다. 그러나 구양리처럼 공유자산의 경험이 축적된 마을은 많지 않다. 대부분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의 특성상,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초기의 어려움을 견뎌 내자는 논리도 설득이 쉽지 않다. 손쉽게 정책자금을 받거나 외부 자본의 투자를 받아 일단 개인 배당을 받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쓰고 보자는 심리가 싹트기 쉽다.
또한, 공동체가 함께 운영한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헌신은 필수적이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난관과 주민 간의 갈등을 관리하는 것은 많은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 막대한 수고가 나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공동체의 이익으로만 돌려진다면 누가 나설 것인가? 이런 문제는 모든 공동체 사업의 숙명이기도 하다. 외부 업자를 통해 손쉽게 발전소를 설치하고, 공짜 돈 같은 배당을 받는 '편리함'의 유혹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로 공동체의 안정적 수입원을 마련할 수 있더라도, 이 공동체가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느냐는 질문도 곧 다가올 문제다. 지금 한국 농촌 마을의 현실은 더 이상 주민이 외부로 떠나지 않을 동기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환갑이 청년인 상태로는 소멸의 위기가 성큼성큼 다가올 수밖에 없다.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와야 한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함께 뛰어놀고,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감당한 경험이 없는 '외지인'이 온전한 공동체의 성원이 될 수 있을까?
"(외부에서 귀촌, 귀향한 사람들도) 마을회비 1년에 5만 원만 내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어요. 물론 외부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들어오면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지요. 그래서 우리 마을회는 3년 이상 거주하고 청·장년회나 부녀회, 노인회 등에서 활동해야 투표권을 줄 수 있다고 정관에 명시해 있어요."(전주영)
인구가 늘고 있는 신안군에서도 비슷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자격 조건이 된다고 해도 살아온 경험이 다른 이들과 마을공동체로 묶일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구양리에서도 젊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이면 당연히 마을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기성세대와는 감성부터 다르다. 그러나 농촌 마을이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문제는 많다. 무료로 제공하는 마을 식당조차 120여 명의 주민 중 30명 정도만 이용한다. 공짜로 밥을 먹는다는 걸 미안해하는 사람, 밥 먹으면 마을 일을 맡게 될까 주저하는 사람, 내성적인 사람, 최근에 싸운 사람, 돼지고기나 소고기, 밀가루를 안 먹는 사람들은 안 온다. 공유자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또한, 구양리의 태양광발전소는 모두 일반형이다. 농지 위에 기둥을 세워 패널 아래에서 농사도 가능하게 한 영농형이 맞다고 보지만, 아직 설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구양리 사례는 기후 위기에 가장 성공적으로 대응한 농촌이라고 부르기는 아직 이르다. 이제 막 도전과 실험을 시작한, 주목해야 할 사례일 뿐이다.

▲햇빛두레 발전소 햇빛농사로 마을연금을 만들어 농촌회생의 길을 열겠다는 햇빛두레 발전소가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을까? 공유자산 운영 경험이 없는 곳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공동체보다 이권이 지배하면 오히려 농촌이 파괴될 수도 있다.
손우정
위기와 공동체,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구양리의 사례는 기후 위기와 농촌의 위기에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공동체의 파괴와 소멸을 개인적 수준에서 감당할 수는 없다. 구양리는 공유자산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경험으로, 함께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을의 공동체는 법적 지위가 없어 태양광 사업은 협동조합이라는 틀을 만들어 하고 있지만, 출자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한다.
다른 마을에서도 구양리와 같은 시도가 가능할까? 공유자산이 전혀 없고, 공동체 활동의 경험이 없다면, 앞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농촌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그것이 정말 소멸하는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방식이 될 수 있을까? 물론 지켜봐야 겠지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공유자산과 공동체의 경험은 꼭 새로운 도전을 위한 전제라기보다, 그 도전을 계기로 새롭게 만들거나 복원해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상당한 의지와 노력, 자제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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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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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도 주목... 매달 1천만원 버는, 인구 120명 마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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