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국 대표 모델" 한번도 못 해 본 일에 이토록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애국심이 그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알베르토 방
75년 전 6월. 잘 알지도 못하는 동양의 한 자그마한 나라에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열 예닐곱의 호주 소년들이 군장을 하고 배에 올랐다. 급작스런 전쟁의 어려움에 처했을 사람들을 돕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 한 달? 길어야 석 달 후면 돌아올 거라는 인사는 지킬 수 없었다. 난생 처음느껴 보는 추위와 맞서 싸우며 그들은 근 3년을 '코리아'에서 지냈다.
그렇게 그들은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고 돌아왔다. 더러는, 골목에서 함께 뛰어 놀다가 같이 입대했던 사랑하는 친구를 잃고 홀로 귀국길에 오르는 아픔을 가슴에 묻기도 했다. 7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이 달려가 지켰던 '코리아'는 세계 속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서 그때 그 시절을 감사할 줄 알고, 또한 감사를 표하는 경제강국, 문화강국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18일 오후 7시부터 멜번 시내 소재 주립 이민 박물관 공연 홀에서 양국의 친교 개시 75주년을 기념하는 '건배' 행사(Gon Bae! Celebrating 75 Years of Korean Australian Friendship)가 열렸다. 주립 이민박물관이 주관하고 헬로 뮤직(Hello Music : 대표 캐런 김)과 세계여성네트워크(KOWIN) 멜번지회(지회장 최형태)가 공동 주최한 민간외교 차원의 행사였다.
대한민국과 호주의 정식 외교 관계는 1961년 10월 12일에 시작되었지만 양국의 수교가 이뤄지기도 전, 한국 전쟁 참전으로 초기 인연이 시작되었고 올해가 그 75주년이라는 것에 뭔가 의미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이 모아져 몇 달 간의 준비를 해 왔다. 그리고 이날 3백여 명의 호주, 한국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멋진 문화행사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인의 멜번 이민이 시작된 1970년 초 두 살 나이로 부모에게 안겨 이민 와 성장 한캐런 김 헬로 뮤직 대표는 우리가 꼭 기념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 하나로 이번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을 막연하게 알고 있었는데 올해가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이고 당시 호주에서 1만 7천 여 명의 군인을 파견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물론 양국 국교 수립을 기념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관계가 아니던 그때 오직 휴머니즘에 입각해 도움을 주기 위해 떠났던 분들의 이야기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런 프렌드십이 쌓여서 양국의 관계가 이렇게 돈독해 진 것 아닐까요?"
창의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악 종합학교를 35년간 운영해 오고 있는 캐런은 참전비 건립 등 참전 호주 용사들을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리지만 이번에는 우리의 문화를 잘 어우러진 프로그램으로 양국의 '친교'를 확인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다소 급작스런 단 회성 행사여서 아무 지원도 없는 가운데 캐런이 속해 있는 세계 한인 여성 네트 워크의 최형태 지회장과 회원들이 선뜻 후원에 나섰고, '한복 오스트레일리아'를 운영하며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 이선영 한복 디자이너도 발벗고 동참했다. 이들은 티켓을 판매하고, 6주 동안 아홉 벌의 시대별 한복을 직접 제작했으며 공연자, 발표자들을 섭외 하는 등 '함께 또 따로'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열심히 준비했다.
한복 만들기에 취미가 있어 자그마하게 재봉 교실을 시작했던 이선영씨는 지난 2020년 부터 호주 국영 ABC 방송국 드라마 등에 필요한 한복 소품을 전담하는 등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양국 친교와 이민'을 테마로 잡아 조선시대의 궁중한복에 이어 1950년 전쟁 직후 부터 2025년 오늘의 한복까지 변천사를 연대별로 보여줬다.
"6 주 동안 하루에 두어 시간 씩 밖에 못 잔 것 같아요. 연대별 한복을 다시 공부하고 재봉틀 앞에서 살았네요."
원단을 자비로 다 구입한 것은 물론 노동력까지 보탠 이선영씨는 "그러나 하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 한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말하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한복디자이너 이선영 행사에 필요한 연대별 한복을 직접 제작 해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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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문화 패 소리'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열 두 발 상모 공연으로 신나게 문을 열었다. 이어 양국 국가제창, 그리고 데이빗 롤페(David Rolfe) 이민박물관장의 개회사, 멜번분관장 오진관 총영사의 축사를 겸한 건배 제의가 있었다. 디킨 대학교의 한국학 책임교수 데이빗 헌듯(David Hundt), 한국전참전 호주 용사인 고 로버트 엘더 목사(Rev. Robert Elder)의 딸 캐서린(Catherine), 로터리 오션 센터의 엘라인 프라틀리 박사(Dr. Elaine Pratley)가 한국과 호주의 관계에 대한 스피치를 한 후 '문화패 소리' 의 김민정 단장의 부채춤 공연이 이어졌다.

▲오진관 멜번 총영사 앞으로 더 깊은 우방이 되자며 건배 제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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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undt 디킨대 교수 한국과 호주의 문화 교류 성과 등에 대해 연설을 한 데이빗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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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 받는 한인 바이올리니스트 수지 김은, 숀 김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한복 차림으로 멋진 연주를 보여줬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패션쇼에선 연도별로 그 해에 호주로 이민을 온 한인들이 열심히 연습해 프로 모델 같은 무대 위 워킹을 선 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특히 호주인 남편, 한국인 아내 그리고 이들 사이의 4개월 아가 등 한복을 차려 입은 한 가정이 무대에 오르자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패션 쇼 후에는 모델들과 코윈 운영진이 함께 BTS 버전 '아리랑'을 합창 해, 관객들의 어깨춤을 이끌어냈다. 이들의 연습을 빛나게 하기 위해 헤어드레서 고영화씨가 역시 무보수로 헤어와 메이크업으로 재능 기부를 했다.

▲한호다문화가정 한국인 아내, 호주인 남편 그리고 그들의 4개월 된 아기가 한복으로 확실한 우호를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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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한국 차세대 전문인 연합 (Australia Korea Young Professional Association)의 김도희, 피터 박, 그리고 할리우드가 인정하는 한인 드론 촬영 감독 스티브 오 씨의 '호주 속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는 이 자랑스러움'에 대한 스피치도 큰 감동을 줬다. 그는 '절대로 포기 하지않는다면' 성공하는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요식업을 성공적으로 확대해 나가며 멜번의 코리아 타운 관리 회장을 맡고 있는 김채희 대표는 한 접시 안에 떡볶이, 잡채, 만두 등 여러 한식을 예쁘게 담아 이날 참석자들 모두에게 대접하며 다시 한 번 한식을 알리는 멋진 후원에 나섰다.
직접 한복을 만드는 문화교실의 수강생이며 이날 한복 모델로 나선 윤선주씨는 호주에 와서 살게 되니 이렇게 모델도 해 본다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뜻 깊은 자리에 우리의 아름다운 한복을 알리는 일까지 해 보게 되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한복 만드는 것도 더 열심히 배워서 이 아름다움을 확실히 알리고 싶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제대로 해 내며 멋진 행사를 이끌어 낸 이들이 바로 성공적인 이민 생활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양국의 친교를 나날이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배!"
한인들도, 호주인들도 정확한 발음으로 외치며 손을 들었다. 특히 호주 빅토리아 주에 거주하는 한인 여성들이 크고 작은 힘을 모아 민간외교의 진수를 보여 줬다는 것이 이날 행사의 의미를 더 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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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7 년차. 이제 공식적으로 은퇴 나이이지만 아직도 현장을 뛸 때 최고의 기분을 느낀다.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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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외교' 진수 보여준 호주 멜번 '건배'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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