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령면에서 보는 마이산 마령면은 삼국시대부터 말(마)가 들어가는 마이산을 품은 고을이다.
이병록
과거 호수였던 지형이 융기하며 마이산을 중심으로 남쪽은 섬진강, 북쪽은 금강 수계로 갈라졌다. 섬진강 참쉬리와 금강의 쉬리가 약 3800만 년 전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다는 연구 결과는 금남호남정맥의 형성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용담호수 자체가 강의 큰 물줄기이지만, 탑사와 은수사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백운면 데미샘은 섬진강 발원지다.
진안은 산지가 많아 벼농사보다는 밭농사에 의존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진안 담배(초연)가 명품으로 꼽힌다. 고원 기후는 인삼 재배에도 적합해 지금도 진안읍에는 전통 인삼 시장이 이어지고 있다. 줄사철나무와 이팝나무는 식물의 북방한계선이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고목의 우람함이 아닌 청장년의 한창 나무로 크고 있다.
마이산은 금강산처럼 계절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봄에는 봉우리가 안개 속에서 돛대 같다고 하여 돛대봉,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이 용의 뿔처럼 보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 귀를 닮아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 같은 문필봉이라 부른다. 가을 이름이 대표적인 것도 금강산과 같다. 그리고 '나도 밤나무'처럼 '나도 (마이)산'도 있다.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 조선 초 태조 이성계는 속금산(束金山)이라 불렀으며, 태종 이후 마이산이라는 이름이 정착했다. 속금산은 이성계가 꿈에서 본 금척과 닮아 붙인 이름이라 전해진다. 지금도 은수사, 이산 묘, 주필대 등 이성계의 건국 신화를 품은 유적이 마이산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이산에는 전설도 전한다. 부부 봉인 암수 마이산이 키를 키우다 사람이 소리쳐 멈췄다는 이야기, 그래서 수봉이 암봉을 발로 차서, 돌아앉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약 산이 다 자랐다면 지금 그 자리가 서울이 되었을 것이라는 뒷얘기도 흥미롭다.
나는 진안고원길 1길 마이산길과 2길 들녘길을 걸었다. 마이산길은 마이산에서 마령면으로 이어지고, 들녘길은 백운면으로 이어지며 영모정과 계남 방앗간을 지난다. 14개 구간, 210km에 이르는 진안고원길은 마을 길, 산길, 물길이 어우러진 걷는 길이고 전북 천리길과 3개가 겹친다.
저녁 식사 후 역사박물관과 진안향교를 들른 뒤, 주민 추천으로 우화산 유적군에 올랐다. 우화정, 가학대, 영모대 등이 있고 암벽에는 천안 전씨의 가계가 새겨져 있다. 500년 넘은 보호수 느티나무가 내려다보는 읍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마령면행 버스를 타려는데, 동네 할머니가 자기가 타는 차를 타라고 한다. 마령을 지나 백운으로 가는 차라서, 중간에 내려 백운면 영모정에 갔다. 왜적도 인정한 효자 신의련의 유적비를 보고, 냇가에 자리한 돌 지붕 영모정과 인근 미룡정을 둘러보았다.

▲영모정 부모 대신 죽겠다는 효심에 감동해 왜장이 살려 주었고, 소식을 들은 난민 5만 명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이병록
이어 백운면 물레방아까지 3.4km를 걸었다. 시골 가게는 문을 닫았고, 자판기 하나 없었다. 물레방아는 지붕을 빨갛게 단정한 채, 열려 있었다. 높이는 낮지만, 폭이 넓은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다. 하원산마을 경로당에서 수돗물을 얻어 갈증을 풀었다.

▲백운면 물레방아 백운면은 물레방아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이병록
마령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마을 노인은 "지원금이 나올 때만 직원이 있었다"라며 아무것도 없다고 열어주지 않았다. 농사 짓기 바쁜 사람에게 문화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마을과 박물관이 따로 노는 모습이 아쉬웠다. 노인 말대로 (나이를 먹어) 베려버렸다. 곡성 신흥가게처럼 마을 기념관을 겸했으면 좋으련만.

▲마령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 군에서 지원금이 끊기고, 마을 공동체 박물관 계남 정미소는 빈집 상태가 되고, 일 년에 한 두 번 사진 전시회를 연다고 한다.
이병록
마령면은 삼국시대 마돌현(馬突縣)이라는 이름이 마이산을 끼고 있는 마을임을 증명한다. 원강정 마을은 630년 된 당산나무가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둘레 7.4m의 당산나무 아래에는 힘 자랑을 하던 지금의 역기 역할을 했던 장흥에서도 봤던 '들돌'이 남아 있다. 머슴의 힘을 재서 세경(쌀로 주는 연봉)을 주고, 백중에는 마을 잔치를 열던 공동체의 흔적이다. 관모봉을 뒤에 둔 이 마을에는 서원과 여러 유적이 모여 있어 안동 탑동마을처럼 마을 자체가 문화재다.

▲원강정마을 이 마을은 안동 탑동 마을처럼 마을 자체가 하나의 문화재다.
이병록
수선루는 바위틈에 아슬하게 자리 잡은 누정이다. 절을 지었다면 석굴암이 되었을 것이다. 2019년 12월 30일 보물 제2055호로 지정되었다. 이산 묘를 마지막으로 진안 여정을 마친다.

▲수선루 연안 송씨 네 형제가 아버지를 위해서 지은 정자다. 2019년 보물로 격상되었다. 부근에 구산서원, 구암제 등이 있다.
이병록
2025년 9월 13일 순천고 산악회와 함께 가서, 혼자서 하루를 더 보냈지만, 운일암·반일암, 부귀 메타세쿼이아길, 용담호수, 천황사 전나무숲, 진안성당 어은공소 등은 들르지 못했다. 다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여운을 남기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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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전)서울시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발전연구위원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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