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 글을 낭독하는 걸로 수업이 진행된다
최은영
어르신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그게 제일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녹음을 떠올렸죠. 스마트폰에는 녹음 앱이 다 있잖아요. 버전 차이가 있지만 음성을 텍스트로 바꿔주기도 하고요. 물론 안 써본 앱을 쓰는 건 어르신들께 아주 큰 도전인 걸 알죠. 그래도 뭐, 제 기준보다 '아주' 천천히 하면 될 겁니다.
천천히의 정도는 매우 다릅니다
앱을 홈 화면에 꺼내놓는 게 가장 어려워요. 그래서 그건 제가 1:1로 미리 다 해놨습니다. 하다보니 마이크 설정을 다시 해야 하는 폰도 있길래 그것도 했죠. 와, 이정도면 저 시니어 디지털 강사 겸직해도 되겠어요.
아니네요. 완벽하게 제가 틀렸습니다. '아주' 아니고 '아주아주아주아주' 천천히 해야했고 저는 그 속도를 아주아주 못 맞추는 사람이었습니다. 옛날에 라디오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보셨냐고 물으니 다들 기억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녹음앱만 첫 화면에 보이면 수월할 줄 알았습니다.
한 문장만 녹음해보기로 했습니다. 그전에 먼저 강조할 게 있어요. 만일 안 되면 어르신이 못하시는 게 아니라 제가 설명을 잘못한 거니까 개의치 말고 손을 번쩍 들어달라 했죠. 다들 싱긋 웃어주십니다. 마음이 너무 편해요.
아니, 안 편합니다. 동시에 너댓명이 손을 드셨거든요. 이게 녹음이 되는지 모르겠대요. 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안 해봤냐고요? 저는 아이폰 유저라 갤럭시 공폰을 구해서 캡쳐뜨고 실습도 다 했어요. 그런데 녹음버튼과 정지버튼, 저장과 재생이 설명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네요.
첫 시간 녹음앱 사용법 익히기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아예 손놓고 계시는 분도 생기더라고요. 글쓰기 수업에서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싶어서 급하게 끝냈어요. 첫 화면에 녹음 앱이 꺼내져 있고, 마이크 설정을 해놓았으니 다음을 기약해야죠.
다음 시간, 작정하고 천천히 가봅니다
"녹음앱 다 찾으셨죠? 그거 누르시면 빨간 버튼 있어요. 그거 누르시고 말씀하시면 화면에 뭐가 막 지나갑니다. 아, 누른채 아니고요. 살짝 터치만 하고 손 떼신 후에 말씀해주세요. 화면 멈춰있으면 녹음 아니에요. 말씀 다 하셨어요? 까만 네모 눌러주세요. 뭐가 뜨죠? 그대로 저장 눌러주세요."
화면 캡처로는 안 되겠어요. 영상 캡처해서 스크린에 띄워야겠군요. 글쓰기 시간에 왜 자꾸 머리아픈 핸드폰만 하냐 민원 들어올까 봐 10분 이내로 끝냅니다. 지난주에 숙제로 나왔던 글을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올렸는데 두 분이나 채택되셨거든요.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 찰나인데 핸드폰으로 그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되잖아요.
수업하는 복지관의 행정 간사님이 전달 공지 있다고 잠깐 들어오셨어요.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우리 선생님이 노인들을 인터넷 신문 기자로 데뷔시켜 준다고, 시간 외로 일하는데 뭐 없냐고 강조하십니다. 어르신들께 시민기자 데뷔는 정말 기분좋은 일인가봅니다.
그렇지만 그 기분 좋음은 오래 가기 어렵습니다. 계속 써야 채택되는 거잖아요. '계속'은 생각보다 어렵고요. 그 계속을 위해 녹음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해요.
진짜 디지털 포용을 배우는 중입니다
재작년 다른 수업에서는 제가 1:1로 녹음을 다 알려드리고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녹음이 익숙해지면 핸드폰과의 대화에 입이 트이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입트인 어르신은 정말 인생을 '풀기' 시작하셨고요. 일주일이 지나면 원고가 10장씩 나왔어요.
그걸 추리고 사진을 넣으니 정말 자서전이 뚝딱 완성됐지요. 그때 수업 정원은 7명이었어요. 지금은 15명이고요. 제가 인원을 간과했네요. 아마 그때보다 한참 느려질 거 같아요. 제가 빠름에 중독되어 있는 거 같아요.
우리는 언제부터 '빠름'에 중독되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과정'인데 말입니다. 어르신들이 녹음 버튼 하나를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 그 시간 동안 쌓이는 신뢰와 성취감은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어요.
제가 가르치려 했던 건 '녹음앱 사용법'이었는데, 어르신들이 배우고 계신 건 '용기'였을지도 몰라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기,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용기, 젊은 선생님 앞에서 '모른다'고 손드는 용기, 그런 거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디지털 포용'은 어르신들을 기술에 맞춰드리는 게 아니라, 기술을 어르신들의 속도에 맞춰 풀어내는 일이더라고요.
다음 시간엔 제가 학생이 되어, 어르신들의 속도를 제대로 배워보려 합니다. '입트인' 분이 이 교실에서도 나오면 저도, 어르신들에게도 자기 효능감이 최대치가 될 거 같군요. 그 날을 기다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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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글쓰기 수업에서 핸드폰 녹음 기능 알려주는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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