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새로 짓는 우리집을 위한 한부모가족 캠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 저는 편부모보다 한부모라는 용어가 더 익숙한데요. 한부모라는 호칭을 만들었을 때 이 호칭이 이렇게 보편적인 언어로 자리 잡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생기: "그때 당시 편부모라는 이름에 대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킬 정도로 너무 싫다는 거예요. 그 소리 듣기가 너무 싫다는 거예요. 제일 힘들어했던 부분이 학교에서 이혼했으니 애가 영향을 받아서 안 좋다는 피드백을 주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한부모가족의 인권 선언'도 같이 만들었었죠. 그런 것처럼 계속 안 좋은 인식에 대해 불편해해서 우리가 욕구 조사를 했어요. 뭘 원하는지, 뭐가 힘든지. 그중에 편부모 명칭을 바꿔보자, 대안 명칭을 만들자고 얘기해서. 한부모, 단독 부모, 싱글 페어런트, 모부자 가족, 네다섯 가지로 후보를 올렸어요.
한부모가 뭐냐 그래서 '한'이 한가위, 한강처럼 온전하고 가득 차고 크다고 얘기했더니 '그거다', 너무 좋아하면서. 한부모가 하나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그걸 전제하고 의미를 부여하니까 너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기를 쓰고 홍보했죠. 언론이나 여성부에 보낼 때, 한부모라고 계속 보냈고. 그러면 무슨 소리냐. 이렇게 해서 또 설명해주고. 계속 외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한부모라고 쓰더라구요."
성폭력상담소의 정체성을 찾아서: '여성주의 상담'에서 '성폭력 없는 사회' 만들기까지
오이: "성교육을 잘했는데, 그때 성폭력상담소로서 민우회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죠. 교육이 정체성이기도 했지만 이슈화에 대한 부족함? 상담만 열심히 잘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상담을 이슈화하고 외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되게 첨예했어요. 상담을 잘 받고 내담자가 역량을 강화하고 치유하는 것이 상담에서 중요한 거 아니냐 했는데, 나는 민우회 내에서 그게 상담소 목표의 전부는 아닐 것 같다는 얘기를 한참 하면서 피 튀기는 싸움을 했었죠."
- 지금도 평가하면 그게 반복되기도 해요. 우리가 상담하면서 새로운 이슈를 발굴했는가. 상담이 안정적으로 되는 해에는 여건이 되는데, 상담만으로도 허덕일 때가 있고. 과거의 기록을 보면 같은 자리를 맴도나 싶지만, 또 우리의 활동으로 인한 변화를 보게 되잖아요.
오이: "우리가 사무실에 있지 않고 매일 밖에 나가서 연대도 많이 했었죠.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색을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욕정을 못 이겨' 문구 삭제 캠페인*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며 외화하고 되게 의미가 있었죠. 그다음에 몰카 추포 '몰카를 추포하라'랑 성적 수치심 ''성적 수치심', 괜찮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로 퇴장을!', '성적수치심부터 빡침까지: 정해진 감정은 없다'!"
생기: "언론에서 성폭력 이슈 다룰 때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의미가 컸었죠."
달개비: "2006년에 용산 아동 성폭력 사건 일어나면서 언론보도가 엄청 많이 나왔는데 그때 보도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 가이드라인 만든 것도 있고요.**"
오이: "그게 시작이었고 그다음부터 이슈화되었고. '욕정을 못 이겨'가 독특한,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할 수 있었던 사업이었어요. 가해자 교육도 엄청 열심히 했었고요. 가해자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집해서 강사 워크샵을 꽤 오랫동안 했단 말이에요. 한때 가해자 교육이 엄청 많았을 때가 있었어요."
달개비: "가해자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예방해야 하는 거잖아요. 가해한 이후에 또다시 가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런 부분에서 의미가 있었던 거고. 피해자들의 요구도 있었죠. 가해자 교육 과정을 통해서 사건 해결이라는, 가해자 교육이 끝나고 그 이후에 사과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종결하는 의미도 있었고. 그때 당시는 피해자들이 고소까지는 너무 힘들잖아요. 그 과정이. 불려 다니고 그러니까. 고소까지는 안 가지만 적어도 가해자 교육은 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굉장히 원하는 내용 중 하나였거든요."
오이: "가해자 교육하면서 이때 이미 남성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원인에 대해서도 탐구했고. 가해자 교육을 준비하면서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생기: "맞아요. 그것도 있지. 스트레스 풀었어요, 심지어."
달개비: "왜냐하면 내가 정리되어야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대응하는 말을 엄청 많이 생각했어야 했잖아요."
생기: "그럼, 맞대면했는데 풀어봐야지."
*2007년, 상담소 활동가들은 성폭력 사건 판례와 사법연수원 교육자료를 분석하여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 등의 문구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 문구가 성폭력을 폭력의 문제가 아닌 성적 욕망이 잘못 표출된 실수 정도로 사소화한다는 점, 가해자 변명으로 활용된다는 점, 피해자유발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공소장과 판결문, 사법연수원 [검찰서류 작성례]에 명시된 '욕정을 일으켜' 문구 삭제를 요구하였다.
<[삭제요청서]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 문서에 '욕정을 일으켜' 등의 문구 삭제를 요청합니다!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
- 이제 가해자 교육은 안 하지만 공동체 교육, 공동체 워크샵은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죠.
달개비: "이런 게 다 쌓여서 '공생의 조건'도 하고, 공동체 조직문화로 고민이 이어진 거죠."
오이: "1차 기획회의가 생각나네요. 공동체의 조건이라고 해서 공동체 내부 징계위원회·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서 논의된 경우, 사람들한테 생각한 걸 가지고 오라고 해서, 이분들에게 성폭력에 대한 소회, 평가, 우리 고민을 가감 없이 얘기하자. 왜냐하면 사람들이 못한 얘기가 많았어요. 성폭력에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자. 공동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단상, 가해자 교육을 통해 본 공동체 사건 해결, 공동체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을 찾아보기 해서, 12개의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게 첫 회의였어요.
그 내용에는 설득이 어려웠던 것, 반격을 많이 받았던 것, 피해자를 궁지에 몰았던 것, 가해자 태도에 대한 단상, 사건이 산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던 적, 징계나 논의가 종결된 경험이 있는지, 종결되지 못했다면 이유는 뭔지, 공동체 성폭력 사건 구성원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피해자가 조직에 대한 불신을 갖는 이유가 뭔지, 사건 해결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이 뭔지, 사건을 공개한 피해자들이 나중에 갖는 감정이나 어려움이 뭔지. 심지어 피해자로 인해 화가 나거나 감정이 상했던 순간까지도 얘기했어요. 회의에 있는 사람들 모두 생각을 다 던지는 거예요."

▲ 2012년, <공생의 조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기획 회의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 피해자 중심주의는 지금도 민우회 상담소에서 많이 얘기하는 주제인데 여기에서 출발했나 봐요.
오이: "왜냐하면 우리가 고민이 많았어요. 피해자에 대해서. 그래서 기획 회의 바로 일주일 후에 또 모여서 세부적으로 기획하게 된 거예요. 정리하는 회의를 하고 난 뒤에 또 모였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터뷰할 사람들을 다 정했고. 인터뷰하고 난 뒤에 1, 2, 3, 4회기의 프로그램 세부안을 만드는 게 우리 목표였어요. 공동체 조직문화에 대한 강의안을 다 만들었고, 이걸 가지고 가이드북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너무 고민이 많이 된 강의였어요."
달개비: "그 당시만 해도 진짜 너무 어려웠어요."
생기: "사실 어디를 가도 우리는 굉장히 두려움을 갖고 했잖아요."
오이: "완전 너무 쫄아서. 진짜 어려웠던 교육이었어요."
생기: "그래도 다른 데서 안 하는 거고 민우회가 잡고 가야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있었죠."
오이: "이때 '2차 가해' 얘기가 많고, '2차 가해' 때문에 와해되는 조직도 많아서 비공개회의를 한 번 더 했어요. 그때 민우회가 주장했던 게 '2차 가해'라고 하지 말고 '2차 피해'라고 하자는 거였죠.*"
*성폭력 상담소 활동가들은 비공개 집담회를 통해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을 검토하였고, 논의 내용을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토론회에서 발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왜곡된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함을 이해하고,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2차 가해'의 의미-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를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받아들였을 때, 피해자는 보호해야 할 성을 지닌 무기력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는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성별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일상적 행위, 성역할 문제 등 성폭력 사건이 가진 차별적 시선'에 대한 공동체적 논쟁과 정정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편, '2차피해'는 피해자가 문제 해결 과정에서 겪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특히 더 2차 피해에 많이 노출되는 위치·여건을 분석하여 피해자 간의 차이와 교차성 문제를 가시화한다. (
2017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 :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 세 분 다 민우회에서 오랜 시간 활동하셨잖아요. 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생기: "제가 교직 3년밖에 안 했고 아이 출산 후에 10년을 전업주부로 있었는데, 우연히 동북여성민우회로 연결되면서 교직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개별 여성으로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힘든 과정에서 채워지는 것이 있었고 뿌듯함이 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시절에 여성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뭐를 해도 수용이 되고 갈등이 있어도 풀 수 있는, 지지고 볶아도 신뢰할 수 있는 동료 활동가들이 있었고. 그러면서 훨씬 더 힘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여성 운동을 통한 여성의 힘 키우기라고, 그런 힘 키우기가 조직 안에서 저도 가능했던 것 같고. 한부모를 비롯해서 다른 활동가나 다른 사람들이 그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보는 것도 마찬가지죠."
오이: "동력은 사람들이죠.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남긴 사업들요."
달개비: "저도 오래 할 수 있었던 건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고. 제가 활동하던 후반기에, 생기와 오이는 상근활동가가 아닐 때도 운영자문위원회로 함께하면서 계속 과거와 현재가 같이 가는 게 저한테는 큰 힘이었다고 생각이 들고. 동료. 왜냐하면 밖에서는 이런 얘기를 하면 아무도 이렇게 말이 안 통하잖아요. 무슨 고민을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여기서는 치열하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 시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 2025년, 오른쪽부터 달개비, 오이, 생기, 눈사람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 마지막으로 상담소에 하고 싶은 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생기: "지금 활동가들이 넋 놓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아니까. 꾸준하게 계속 이슈를 잘 찾아갔으면 좋겠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내 마음은 내가 챙겨야 하거든. 각자의 마음 챙김을 누구한테 기대지 말고 스스로 챙겨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재미있게 하되 의미 있게, 살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오이: "따로 할 말은 없고 즐겁게, 그러니까 머릿속에 좋은 일, 재밌는 일 한 가지 정도는 생각이 둥둥 떠다니게 합시다."
달개비: "다 하셨어요, 얘기 다 하셔가지고. 건강을 잘 살피면서 활동했으면 좋겠어요."
나가며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상담소 활동 한 줄 한 줄의 기록과 순간을 포착한 사진 뒤에는 지지고 볶아도, 어렵고 두려워도,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결국엔 해내고 뿌듯함을 느꼈던 활동가들의 치열함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담소의 시간은 곧 사람들의 시간이었다.
여성으로서 삶을 생각하게 되면서,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고 싶어서, 사회를 바꾸고 싶어서, 저마다의 마음과 인연에서 시작된 활동은 나와 동료, 활동하며 만난 많은 이들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생기와 달개비, 오이는 활동하면서 어느 시기를 함께했고, 세 사람 다 상담소를 떠난 이후에도 각자의 여정을 걷다, 때로 마주치고 연대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상담소 현 활동가 눈사람은 달개비와 함께 활동하던 시절 맛있는 걸 같이 먹으러 다니곤 했고, 인터뷰를 정리한 조연은 눈사람의 이야기에서, 상담소 자료에서 생기와 달개비, 오이를 발견하곤 했다.
세 사람뿐 아니라 서른여섯 명의 상담소 전·현 활동가, 상담소와 함께 짧거나 긴 싸움과 피해 회복의 여정을 찾아가는 피해자들, 피해자와 연대하며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첫 사람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서로를 이어 30년을 채워왔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를, 시간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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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는 1987년 태어나
세상의 색깔들이 다채롭다는 것,
사람들의 생각들이 다양하다는 것,
그 사실이 만들어내는 두근두근한 가능성을 안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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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성'에 기겁하던 학교들... 그래도, 열심히 찾아다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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