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림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팀의 축구 경기를 직관하며 일상을 보낸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 지난 7년 동안 혜림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무고죄로 나를 기소했던 검사 이름을 끝까지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름도 얼굴도 흐릿해졌어요. 무고죄 무죄 확정 판결 후 마음이 멀어졌고, 사건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고죄 피고인이 되어보니까 이제 '웬만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7년을 싸우니까 버티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어요. 시간은 어떻게든 흐르니까 버텨보자.
그리고 성폭력 피해가 있기 전에도 여성 의제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사건 이후 해결 과정을 겪으면서 다른 성폭력 사건에도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연대할 수 있거나 작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탄원서에 연명도 하고. 그래서 민우회나 연대자 D님의 SNS에 올라오는 글들은 관심 가지고 봐요. 내 일 같기도 하고, 그래서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더라고요."
- 재정신청까지 하면서 성폭력 사건 불기소처분에 이의신청도 하고, 민사도 1심, 2심까지 다퉜지만 다 수용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도 법정 싸움을 마무리했잖아요. 싸움을 마무리하기까지의 심정은 어땠나요?
"사실 성폭력 형사고소도, 가해자와 회사를 대상으로 한 민사소송도 제가 시작했는데 어쨌든 저는 법적으로 봤을 때 패소자잖아요. 패소한 사람인데 그래도 괜찮더라고요.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까 저도 이제 그 사건을 보내줄 때를 느끼는 것 같아요. 민사 1심 판결이 났을 때 무조건 3심까지 간다고 마음 먹었는데, 2심이 끝나고 나니까 그만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내 삶이 이것만 빼고는 너무 만족스럽고 불만일 게 없는데 괜히 가해자와 불이익한 조치를 했던 회사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노하게 되고, 갑자기 화가 나고 그랬거든요. 어느 순간 내가 분노로 가득 차는 게 싫은 거예요. 6~7년을 부정적인 것에 너무 가까이하고 살았으니까, 더이상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어요."
졌지만, 난 이렇게 괜찮다
- 싸움의 마침표를 찍은 혜림이 여전히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말을 쉽게 보태기가 정말 어려운 건 아는데 (잠시 정적) 시간이 흐르잖아요. 흐르면 옅어진다. 그래서 감히 '조금만 더 버텨보세요.' 이렇게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내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에 연락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어요. 나도 그렇게 연대와 지지를 받고 했으니까.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됨으로써, 그거 하나만으로도 버티는 힘이 생기니까 그랬으면 좋겠어요.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덜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다른 피해자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에 있었는데요. 거기 사람들이랑 사건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서로 이렇게 계속 연대하고 의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때는 컸던 것 같아요. 같이 기뻐하고, 안타까워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남거든요. 그 커뮤니티 분들 중 한 분이랑은 2년 전까지도 가깝게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분과 연락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상황이 전혀 섭섭하지 않고 '그분도 어디선가 잘 살고 있겠구나.', '잘 사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모두가 재판에서 이겼든 졌든 그냥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 성폭력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여성 운동 단체는 혜림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제가 버틸 수 있는 첫 원동력이었다고 해야 하나? 왜냐하면 친구들은 '다 잘 풀릴 거다' 이렇게 말은 해줘도 사실 사건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여러 사건을 경험한 여성 단체에서 연대를 해 주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거죠. 그때 (민우회에) 연락 안 했으면 어떻게 이 긴 싸움을 했을까 싶기도 해요. 회사에서 부당한 일이 있거나 그럴 때마다 민우회에 메일 보내고, 민우회에서 전화를 주고 그랬던 것이 '아,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같이 방법을 찾고자 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어느 순간에는 '내가 너무 하나하나 전화하고, 메일을 보내는 걸까? 그래도 되는 걸까? 다른 상담들도 많을텐데 이렇게까지 연락해도 되나?' 싶은 마음을 가지고 연락을 해도 성심을 다해서 상담해주시니까 의지가 되고 다행이다 싶었어요."
- 올해 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개소한 지 30주년이 되었는데요. 30년이 된 민우회 성폭력 상담소에 혜림이 한마디를 전해준다면?
"성폭력 사건 자체가 가지는 무게가 있는데, 민우회 활동가분들도 매번 그 무게감을 느끼고 피해자와 연대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엄청 힘들텐데 30년이나 지속되고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이 존경스러워요. 30년 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가야죠! 그리고 민우회 같은 곳이 있다는 것이 피해자들한테는 너무 큰 의지가 되니까 파이팅! 파이팅! 마지막으로 저처럼 패소한 피해자들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졌지만 나 이렇게 괜찮다'라는 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긴 사람의 얘기만 들으면 법정에서 진 피해자들은 '나는 왜...'하면서 좌절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렇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얘기할 수 있어서 인터뷰 제안이 감사했어요."

▲ 혜림은 출장차 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자주 탄다. 포르투갈 여행에서의 혜림.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나가며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힘들지 않냐고 많이 묻는다. 힘들고 어려운 때도 분명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피해자들과 사건을 나누고, 같이 분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내담자의 힘과 에너지를 느끼며 오히려 힘을 얻기도 한다. 사건을 뜨겁게 마주할 때와 결국 보내줘야 할 때를 아는 혜림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들의 싸움이 차곡차곡 쌓여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해졌기에 민우회 상담소가 30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단단한 김혜림처럼, 앞으로도 굳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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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재판에서 이겼든 졌든 그냥 잘 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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