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경북 의성산불 피해주민 인터뷰(임시주택). 맨 왼쪽에서 두번째가 유해정 센터장.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피해자가 원하는 만큼만 드러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설령 사회적으로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예상되더라도,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이를 한 명의 온전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태도이자, '피해자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기록'을 실천하는 또 다른 방식인 셈.
유해정 센터장은 "우리는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 후의 삶까지 생각해 봐야 한다"라며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뒤에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세상을 바꾸는 기록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사회적 기억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이 두 원칙을 균형 있게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의 존재다.
우선 제대로 된 질문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는다. 유해정 센터장은 "우리가 만나는 피해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수집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라면서 "대신 사건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다"라고 말했다. 그 위에서 기존에 이 사안을 다루던 방식과 다른 관점에서 던질 질문을 계속 고민한다. 정형화된 방식으로 피해자를 소비하지 않고, 닫혀 있는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한 질문을 첫 만남부터 내미는 것은 유해정 식 방법이 아니다.
유해정 센터장은 인터뷰를 기본적으로 최소 2번 이상 할 각오를 한다고.
첫 만남에서 준비한 자료와 질문지 꺼내는 대신, "오늘 제가 인터뷰 요청했는데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를 승낙하셨어요?" 또는 "어떤 얘기하고 싶으셨어요?"라고 물으며 인터뷰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쭉 듣는다. 기록을 위해 피해자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과 삶을 온전히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면서 안전한 대화의 장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터뷰이와의 라포(신뢰와 공감, 친밀감이 형성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면, 준비했던 질문지를 꺼내며 인터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질문지를 제대로 준비했어도,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 유해정 센터장은 질문의 기교나 대화의 기술 등에 의지하기보다는 곁을 지키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마음을 얻는다고 한다. 인터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의 곁에서 함께 농성하고, 시위하며 그들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식이다. 함께 연대하는 시간을 거치며, 피해자들은 기록자를 자신의 이야기를 소비하는 관찰자가 아닌, 함께 곁을 지키는 동료로 인식하게 된다.

▲ 10.29 이태원참사작가기록단과 북콘서트 후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유해정 센터장.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이 모든 과정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다"라면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인터뷰 전후, 함께 모여 질문지와 취재 내용, 기록 결과 등을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을 공유하며 개인의 한계를 보완하고 서로 조언을 얻는다. 책의 통일성을 맞추고 각 인물의 서사가 잘 드러나도록 목차와 강조점을 세밀하게 조정하기 위해서도 유기적인 팀워크는 필수다.
하지만 안전한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이다. 워낙 감정적으로 소모가 큰 일이지만, (피해자들과의 약속으로) 어디에 가서도 쉽게 얘기할 수 없어 혼자 끙끙 앓으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이 때 동료들은 그 누구보다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울타리가 돼 준다. 유해장 센터장 역시 트라우마가 큰 인터뷰를 진행한 경우에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30분에서 1시간가량 감정과 어려움을 털어놓음으로써, 무너지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가 실상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그 공백을 메워주는 것도 동료들의 몫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가족분들이 화를 내고 있지 않은데, 오히려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그걸 알아차려 주는 건 저 자신이기도 하지만, 동료들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런 동료들 덕분에 저는 잠시 물러설 수 있어요. 제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여전히 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 2024년 11월, 416재단 성과보고회 현장에서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유해정 센터장.
유해정
유해정 센터장은 말한다.
"우리가 만드는 기록에서 혼자는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든 기록 활동가든 시민이든요. 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기록이라는 활동을 통해 우리 사이에 벌어진 틈을 메우고, 서로 연결되고 연대를 형성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계속 기록해 보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참사의 고통이 조금 더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유해정 센터장의 이야기와 노하우는 오는 10월 30일(목),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에서 공개된다. 세상을 바꾸는 기록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엣지가 준비한 온라인 교육 <
엣지 ON-활동의 정석>(
https://activistcampus.org/basicsofactivis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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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유가족다워야 한다"는 틀을 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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