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문제는 풀이를 보다 깜짝 깜짝 놀란다.
왕수학
엄마공부방은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나와의 약속이다. 아이들이 학령기에 들어서면서, 나 역시 이에 걸맞은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밥 먹는 시간, 배움을 정리하는 시간, 내일을 준비하는 태도. 이런 일상으로 우리 가정을 가꾸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이 공부방에 있다. 공부방 3주차, 아이를 핑계로 다시 내가 늘어진 데 대한 자책이 올라왔다.
"아니야.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잖아. 다들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고 해. 나는 그 어려운 일에 도전 중이라고. 자책 말고, 인정. 아자 아자 화이팅."
D-20
요즘 담이의 귀가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집에 오면 엄마가 밥먹고 공부하자고 할 걸 알기에, 최대한 놀다 온다. 처음에는 공부방 시간을 습관화하려고 매번 전화를 했지만, 그게 전부도 아닌 것 같아 스스로 오게 두었더니 이제는 6시가 다 돼야 들어온다.
오늘도 6시가 넘었다. 100점을 맞았다면, 신이나서 시험지를 들고 집에 뛰어 들어오지 않았을까?
벌써 점수가 예상이 되는데, 집에 들어선 담이가 투덜거렸다.
"엄마, 오늘 시험 쳤는데 기분 나빠. 오늘부터 공부 정말 열심히 할 거야."
"오, 좋은 생각인데? 그런데 기분은 왜 나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어?
"당연하지! 두 개나 틀려서 기분 나빠. 나는 100점 맞고 싶었다고."
지금까지도 2개 정도는 늘 틀렸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저도 나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지 아쉬운 모양이다. 반에서 100점은 없었고, 5학년 선행을 하는 아이조차 세 문제를 틀렸으며, 한 문제만 더 맞았어도 본인이 1등이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분수가 등장하면서부터 아이들이 수학을 힘들어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공부구나 싶다.
하지만 나 역시 기운이 빠졌다. 단원평가라 해도 기초적인 수준인데 100점을 받지 못하니 마음이 흔들린다. '공부로 밥 벌어먹을 것 같으면 알아서 잘 했겠지. 네 욕심이야. 그냥 즐겁게 놀게 둬.' 악마의 속삭임이 찾아왔다. 다행히 다른 목소리도 금세 따라왔다. '아직 어린아이야. 발달 단계에 맞춰 잘 자라고 있다고. 너는 초등 전문가가 아니잖아. 섣불리 단정하지 말고, 아이에게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해.' 오늘도 그 작은 목소리를 붙들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D-21
아이들에게 유튜브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더 중독자다. 나 역시 요즘 한창 유튜브에 빠져있다. 아이들을 보낸 후 유튜브를 켜고 여유를 즐기던 아침, 우연히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 '허준이'님의 인터뷰를 만났다.
초등 자녀의 수학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에 허 교수는 아이와 하고 있는 '선생님 놀이'를 소개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 문제를 만들면, 아빠가 그것을 맞추는 식이다. 아직 저학년이라 문제는 단순하다. 동그라미를 몇 개 그려두고 몇 개인지 맞추라는 식. 아빠를 곤란하게 하려고 아이는 점점 더 큰 동그라미를, 더 많은 동그라미로 그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100개가 넘는 동그라미를 그려도 한 눈에 답을 말해버리는 아빠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그라미를 나란히 줄지어 그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그려 놓으면 아빠가 곤혹스럽게 세아리며, 이따금씩 틀리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즐거워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수학 공부랄 게 이렇게 간단하고 특별할 게 없는 수준이지만, 이를테면 동그라미를 나란히 10개씩 13줄을 그려서 130개가 답인 문제를 만들면서 아이가 곱셈의 원리를 자연스레 터득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이제 담이가 배운 수학으로 문제를 하나씩 만들고 내가 푸는 새로운 선생님 놀이를 해야겠다.' 문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는 개념을 스스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 또, 말의 차이가 의미의 섬세한 차이를 만든다는 것도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만큼은 내가 학생이 되어 담이의 '선생님 기'를 살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정한 귀 명창으로 거듭날 기회가 온 셈이다. 내일이 기다려졌다. 역시 하다보면 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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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얻는 힘과 지혜를 동경하며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를 펴냈다. 두 아들(초1,4학년)을 키우며 늘 흔들리면서도 읽고 쓰고 나누길 멈추지 않는, 앎을 삶으로, 삶은 예술로, 좋은 건 다 하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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