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험난했던.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the song of angry man?
담
1학기까지 포함하면 엄마공부방에는 많은 고비들이 있었다. 격앙된 채 끝나버린, 이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공부를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날들이 숱했다. 그럼에도 나는 늘, 반성하고 사과하고 다음을 다짐했다. 나는 잘 참지 못하고 화를 냈지만 일관성이 있었고, 담이의 학습 상태와 기질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많아졌다.
애초에 최수일 선생님께 전해 들은 개념학습의 핵심인 '선생님 놀이'는 우리집에서 '구두 평가'로 변질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 길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허준이 교수의 선생님 놀이까지 변질되는 것을 보고, 이 모든 문제는 내 문제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수학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 '옳게 가르치느냐'가 아니다. 명확하고 분명한 언어로 규명하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우선하지 않는다. 아이가 '할 만하다'고, '참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그것을 내가 하고 싶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그것이 내 역할이라고 최수일 선생님도, 허준이 교수님도 말했고 나는 그 의미를 정확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작 담이와 책상 앞에만 앉으면, 나는 옳은 개념을 가르치고 잘못된 개념과 표현을 고쳐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때문에 아이가 좌절하고, 답답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왜 이걸 못하지?' 한숨을 쉬고, 엄마의 실망에 아들은 다시 좌절하기를 반복하고있다.
이불을 푹 눌러쓰고 누운 담이에게 사과하려고 다가갔다. 말도 꺼내기 전에 "대체 몇 번을 사과하는 거야?" 볼멘소리가 난다. "그래, 엄마가 또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잘 자."
목이 메어 겨우 자리를 피했다. 무수히 반복되었던 일인데, 그 날은 내게도 충격적이었다. 나의 이성과 지식은 나의 본능과 무의식과 달랐다. 내게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 무력한 밤이었다.
Day-23, 24, 25
잘 해보려던 나의 수고는 그 날을 계기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이후 며칠은 공부를 했는지, 무얼 했는지 별 기억이 없다.
내가 처음 아이와 엄마공부방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힘들 텐데'
'그게... 될까?'
'그냥 학원 보내세요.'
보낼 때 보내더라도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는 내심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과 자신감, 기대, 희망, 의지 같은 단단한 것들이 한 순간에 꺾였다.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절망스러웠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최고의 공부방을 만들어 보겠다는 열정과 의지를 잃어버린 채로, 그러나 다만 학교 숙제를 하고 가방을 챙기는 것을 우리의 평범한 날로 만들겠다는 작은 의지 하나를 겨우 붙들고 일상을 이어 갔다. 담이를 볼 때마다 죄스럽고 부끄러워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다행인 것은, 그런 내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이 담이는 즐거워 보였다. 그렇게, 마음이 지옥같은 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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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얻는 힘과 지혜를 동경하며 책 <과학샘의 그라운딩, 자연에서 춤추다>를 펴냈다. 두 아들(초1,4학년)을 키우며 늘 흔들리면서도 읽고 쓰고 나누길 멈추지 않는, 앎을 삶으로, 삶은 예술로, 좋은 건 다 하고 싶은 현실적 이상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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