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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꿇고 바친 명창의 노래, 옆에서 듣다 울컥했네요

    양기권 명창의 스승 강도근 명창 성묘, 애달픈 이별가와 답가를 들어보세요

    등록 2025.10.02 11:13수정 2025.10.0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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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인월역참터 역마 조형물, 인월전통시장
    ▲ 남원 인월역참터 역마 조형물, 인월전통시장 이완우

    지난 9월 30일 이른 아침, 전북 남원 대강면 가덕마을에서 양기권 판소리 명창과 김종숙 민화 작가가 남원 운봉면 국악의 성지를 향해 출발했다. 추석을 맞아, 국악의 성지에 있는 금파(錦波) 강도근(1918~1996) 명창의 묘소에 성묘하려 나선 길이었다.

    양기권 명창은 강도근 명창의 마지막 제자로 알려졌다. 강도근 명창은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 후리는 대목'이 특기였다. 이날 판소리 명창과 민화 작가는 남원시 인월면 김 작가의 고향, 운봉면 국악의 성지, 남원시 향교동 강도근 명창 생가, 왕정동 대복사 강도근 명창 독공(獨工) 토굴을 차례로 방문할 계획이었다.


    지난달 20일부터 오는 20일까지 가덕마을 마을회관에서는 김종숙 작가의 민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된 작품 중 판소리 <흥보가>를 소재로 한 '행복'은 남원의 판소리 문화를 민화로 작품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관련 기사 : 뉴욕 누볐던 작가의 민화, 시골 마을회관에 걸린 사연). 지난달 20일, 민화 전시회 개막식에서 양기권 명창이 남원 산 타령을 흥겹게 부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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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기권 명창의 산타령 양기권 명창 소리, 이완우 사진 편집 ⓒ 양기권


    에야디야 에헤에에야
    상사디어라 산아지로구나.

    지리산 서남쪽에 남원이 있고,
    동편제 높은 소리 울려 퍼지네.
    (후럼) 에야디야 에헤에에야
    어야라디어라 산아지로구나.

    남원에는 열녀는 춘향이가 있고,
    형제간에 우애는 놀보 흥보가 살았네. (후렴)

    남원엔 요천수는 섬진강에서 만나고,
    이몽룡과 성춘향은 광한루에서 만났네. (후렴)

    남원에 광한루는 영주각이 있고,
    오작교 다리에서 견우직녀가 만났네. (후렴)

    간다 못 간다 얼매나 울었나,
    남원역 마당에 한강수가 되었네. (후렴)

    남원에 서남쪽에 대강이 있고,
    섬진강 강물이 띠처럼 흐르네. (후럼)

    소리꾼이 모여든 고장

    남원의 젖줄인 요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백두대간의 큰 고개인 여원재를 넘어 운봉고원으로 들어섰다. 운봉읍의 람천을 따라 인월면 인월전통시장을 지났다. 이 시장 옆에 김종숙 작가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이 있다. 명창과 작가는 인월초등학교와 인월 전통시장을 둘러보았다.

    지리산의 인월장터는 섬진강의 하동 화개장터와 더불어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화합의 장터 마당이었다. 판소리 <흥보가>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화합의 장터를 배경으로 탄생하였다. 만석꾼이 3명 살았다는 운봉은 소리꾼이 모여드는 고장이었다.

     남원 운봉읍 국악의 성지, 전시관
    ▲ 남원 운봉읍 국악의 성지, 전시관 이완우

    운봉 국악의 성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민족 혼이 담긴 전통예술 국악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지리산 기슭 판소리의 고장 운봉읍에 조성된 국악 종합 전시관이다. 8세기 중엽, 옥보고(玉寶高)는 이곳 지리산 운봉고원 옥계동에 운상원(雲上院)을 열고 거문고 음악을 완성했다.


     남원 국악의 성지 전시관, 강도근 명창 유품
    ▲ 남원 국악의 성지 전시관, 강도근 명창 유품 이완우

     남원 국악의 성지 전시관, 강도근 명창 유품
    ▲ 남원 국악의 성지 전시관, 강도근 명창 유품 이완우

    명창과 작가는 국악 전시관에서 강도근 명창 유물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강도근 명창은 송흥록, 송만갑과 김정문의 판소리를 이은 국가무형문화재 명창이었다. 그는 <흥보가>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온 소리꾼이었다. 통성의 목소리 끝을 짧게 끊어내며, 대마디 대장단을 충실하게 구사하였다.

    강도근 명창은 동편제 판소리의 마지막 대가였는데, 60대 중반에야 판소리계에 이름이 드러난 은둔의 예술인이었다. 그는 '서울에 올라가 무대에서만 소리를 하게 되면 동편제 소리를 버리게 된다'라는 신념이었다. 그의 소리에는 지리산 운봉고원의 흙 내음과 쇳소리가 났다. 황산대첩의 명장 이성계 장군의 가별초 군악대 대라(커다란 소라나 고둥으로 만든 악기) 소리가 울려나는 듯하였다.


     남원 국악의 성지, 판소리 독공실
    ▲ 남원 국악의 성지, 판소리 독공실 이완우

     남원 국악의 성지, 악성(樂聖) 묘역 운상문(雲上門)과 악성사(樂聖祠)
    ▲ 남원 국악의 성지, 악성(樂聖) 묘역 운상문(雲上門)과 악성사(樂聖祠) 이완우

     남원 국악의 성지, 악성(樂聖) 묘역
    ▲ 남원 국악의 성지, 악성(樂聖) 묘역 이완우

    국악의 성지 전시관에서 독공실 토굴 세 채를 지나, 국악 선인(先人) 묘역으로 올라갔다. 운상문(雲上門)과 사당인 악성사(樂聖祠) 위 높은 지대에 판소리 명창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었다.

    양기권 명창이 강도근 명창의 영전에서 스승께 제수를 갖추어 예를 갖추고 헌주 삼배를 올렸다. 스승님 영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스승님을 사모하는 애달픈 심정을 창으로 즉석에서 불렀다. 듣는 이들이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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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 국악의 성지, 스승의 영전(靈前) 양기권 명창의 사모스승가(思慕師傅歌) 양기권 명창 소리, 이완우 사진 편집 ⓒ 양기권


    오늘이야 양기권이가
    선생님을 찾아대고 왔습니다.
    이곳이 어디라고
    이렇게 홀로 계십니까?
    언제나 그리웠던
    스승님을 뵈우리다.
    한번 헤어지면은
    다시는 못 만나 뵐 줄을 몰랐습니다.
    먼 후일에 선생님을
    뵈올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잘 계시옵소서.

    국악의 성지를 떠나서, 강도근 명창의 생가가 있는 남원시 향교동으로 향했다. 남원향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시기인 15세기 중엽에 요천 건너편 덕음봉 관덕정 부근에서 옮겨왔다. 향교 옆을 지나 조금 올라간 높은 지대에 강도근 명창의 생가가 있었다. 양기권 명창이 "터전은 의구하되, 집 모양은 변했다"라고 했다. 양기권 명창이 스승님께 마지막 수업을 들었던 방을 가리켰다.

     남원시 향교동 판소리 명창 강도근 생가의 판소리 학습실 위치
    ▲ 남원시 향교동 판소리 명창 강도근 생가의 판소리 학습실 위치 이완우

    강도근 명창이 여든 나이를 바라보며 타계하기 두 달 전이었다. 쉰 나이를 갓 넘긴 양기권을 불렀다. 스승은 제자에게 '오냐오냐' 창을 정성 기울여 전수했다. 이 시간이 강도근 명창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강도근 명창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양기권을 전법(傳法) 제자로 여겼던 것일까? 양기권 명창은 스승이 별세하고, 7년 정도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03년에 판소리 활동을 재개하였다. 스승의 '오냐오냐(이별가)'을 앞소리로 하고, 자신이 답가를 지어서 뒷소리로 합하여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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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도근 판소리 명창의 이별가, 제자 양기권 명창의 답가 양기권 명창 소리, 이완우 편집 ⓒ 양기권


    (스승의 이별가)
    오냐오냐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나는 간다.
    헐 수 없이 나는 간다.
    정처 없이 떠나는 몸이
    어느 곳으로 가서 산단 말이냐?

    (제자의 답가)
    산도 설고 물도 설은
    멀고도 먼먼 길을
    뉘귀를 보랴고 가랴시요.
    이제 가시며는 어느 때나 오랴시요?
    오실 날이나 일러주시요.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명년 춘사월에나 오랴시요?

    양기권 명창은 스승이 독공하였던 왕정동의 대복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복사는 풍수적으로 남원 고을로 향하는 거센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는 사찰이다. 남원 고을은 배의 형국이고, 교룡산은 배를 덮치는 험한 파도이며, 대복사는 그 파도를 막는 방파제라는 이치였다.

    지리산의 기운을 닮은 동편제 판소리

     남원시 왕정동 대복사 관음전과 선방
    ▲ 남원시 왕정동 대복사 관음전과 선방 이완우

    소리꾼들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폭포에서 수련하면 충분한 습기가 목청을 보호한다. 토굴에서 수련하면 자신의 목청을 들으면서 소리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강도근 명창이 판소리 수련하였던 토굴은 지형이 변하여 사라졌다.

     지리산 모데미꽃, 지리산과 섬진강 시인 김인호
    ▲ 지리산 모데미꽃, 지리산과 섬진강 시인 김인호 김인호

    동편제 판소리는 지리산의 웅건한 기상을 닮았다. 지리산 깊은 계곡의 폭포에 우리나라 고유 식물인 모데미꽃이 핀다. 지리산 운봉고원 회덕(會德, 모데미)마을의 구룡계곡 상류에서 모데미풀 모데미꽃이 100년 전에 최초로 발견되어 기록되었다.

    모데미풀은 1000m 넘는 한반도 곳곳 고산 지대에 드물지 않게 자생한다. 그러나 지리산에서는 더 이상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지리산과 섬진강을 지키는 김인호 시인이 지리산 높은 계곡에서 모데미꽃을 찾아 촬영하였다.

    지리산 모데미꽃은 전통의 소리를 계승하는 판소리 동편제 같았다. '운봉 금매화'란 별칭의 이 신비로운 야생화는 한복 입은 꼿꼿한 성정의 소리꾼 풍모이다. 지리산의 정령 모데미꽃이 무더기로 모여서 서식하고, 지리산 기슭에 터 잡은 판소리 동편제의 전통이 튼실하게 전승되기를 기원해 본다.
    #강도근명창 #판소리 #양기권명창 #김종숙민화작가 #동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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