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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0.11 18:16수정 2025.10.11 18:1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쾅쾅쾅. 딸랑구 안에 있어? 나랑께~"
"네~ 나가요. 나가요."
'딸랑구'란 말은 언제 들어도 어색하다. 아침 잠이 많은 나로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처럼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억지로 일어나 서둘러 현관문을 열러 나갔다. 할머니의 고함과 문 두드리는 소리를 얼른 끝내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옆집에는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혼자 산다. 내 기억에 아마 3년 전 쯤 겨울이었다. 장정 여럿이서 이삿짐을 연실 나르고 있었다. 집안 식구들인 듯 보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별하며 배웅하는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다 풀지 못한 짐과 함께 남겨진 할머니가 추워 보여 내가 믹스커피를 뜨겁게 타서 가져갔다.
그 다음 날이었나 커피 고마웠다며 할머니가 인사를 해왔고 옆집에 그것도 딸 같은 여자가 살아서 너무 좋다고도 했다. 혼자 사는 이웃끼리 도우며 잘 지내자고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이웃이 생겼다.
세탁기가 안 돌아간다고, 우편물을 들고는 읽어 달라고, 방금 아파트 방송이 무슨 내용이냐고, 현관 열쇠가 빠지지 않는다고... 할머니는 소소하지만 간절한 이유로 초인종과 문을 두드렸다. 늘 그 어색한 '딸랑구'라는 호칭과 함께. 적잖이 귀찮기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손톱깎이를 손에 쥐고 날 부른 건 아마 지난해쯤이지 싶다. 언제부터인가 눈이 침침하고 허리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대충 짚이는 대로 깎아 댔단다. 그 거칠고 삐죽한 발톱에 걸려서 양말 신기가 얼마나 불편했을지 알겠다.
발톱 쯤이야

▲옆집 할머니 발톱 옆집에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혼자 산다
황승희
걸을 때의 괴로움을 버티다 버티다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삐죽하게 나온 부분만 깎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뿐 아니라 부모님 댁에 갈 적마다 엄마, 아빠 손발톱을 깎아드리는 게 일상이다. 그러니 할머니 발톱 열개 쯤이야 세수하다 코 만지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오늘 집에 있었는가?"
"어무니. 벌써 발톱 깎을 때 됐어요?"
"잉. 벌써가 뭐여~. 두 달이 넘었을걸? 딸랑구는 지금 인났냐?"
지난주 어느 날, 늘 하던 대로 할머니는 소파에 한 다리를 뻗고 앉으셨다. 나는 바짝 붙어 앉아 시작하다가 내 무릎 위에 발을 올리게도 한다. 이래야 깎는 사람도 편하고 발은 내준 사람도 편하다. 보통 노인들처럼 할머니 발톱도 엄청 두껍고 이미 질병으로 색상도 변한 상태였다. 끝 부분을 둥그렇게 만들면서 살을 파고드는 양 옆을 다듬는다. 뭉툭한 부분을 얇게 만드는 작업이 손이 제일 많이 간다. 몇 번을 만져가며 걸리는 게 없을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모양을 잡고 나서 샌딩기로 곱게 간다. 할머니도 열 개를 돌아가면 만져보고 이제 됐다 하면 오일과 크림을 발라드리고 끝이 난다. 어느새 1시간 정도가 훌쩍 지났다. 소파와 내 옷과 바닥은 할머니 발톱 때와 희멀건 발톱 잔해물로 늘 범벅이 된다.
할머니는 가래떡, 사발면, 가끔은 김치를 한 접시 담아 올 때도 있다. 이날은 소면 한 봉지를 가져왔다. 그냥 오시라 해도 매번 하나씩 들고 오는 할머니는 본인 딸한테 내 칭찬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며, 요즘 이렇게 착한 처자가 어딨냐며 고마워했다.

▲소면 옆집 할머니가 오늘은 소면 한 봉지를 가져왔다.
황승희
나도 언젠가는
"넌 참 이상해. 무엇하러 그렇게까지 하냐, 하지 마~"
비위가 약한 친구는 이해를 못 하지만 나는 깨끗해진 할머니 발을 보면 그저 기분이 좋다. 성취감, 보람 이런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어서 해주고 싶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면 그냥 좋은 것이다.
어쩌면 나도 '예비 독거노인'으로서, 약간은 정이 고픈 본질적 감상일지도 모르지.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노크할 내 모습? 그래서일까 나는 오늘도 기꺼이 옷을 털고 자리를 치우며 잠깐 상념에 빠졌다.
어서 커피콩을 갈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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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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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 들고 우리집 찾은 옆집 할머니의 요청, 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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