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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0.02 16:58수정 2025.10.02 16:58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책임님, 너무 아쉬워요."
"정말 많이 애써주셔서 고마워요."
"다음에 또 만나면 좋겠어요."
지난 7월 프로젝트 마지막 날, 나는 놀랐다. 우리 팀뿐 아니라 함께했던 다른 팀들까지 따뜻한 인사를 건네왔다.
팀원들과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하며 악수하던 순간, '잘 살아남았다'는 전우애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그 악수는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라, 치열한 일상 속을 완주해낸 자에게 주어진 메달 같았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니까

▲ “멈춘 줄 알았던 삶은 다시 흐른다.” ? 중년 리부트의 바다는 언제나 새로이 파도를 일으킨다.
황의정
프로젝트가 끝나기 며칠 전, 햄버거를 먹으며 MZ세대 선임님에게 장난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임님, 이모 같은 아줌마랑 일하느라 힘들지 않았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전혀요.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일을 잘 마무리했다는 게 더 중요하죠."
그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실 중년의 경단녀로 사회에 돌아왔을 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자존감의 하락이었다. '나이 들어 뭘 하려고 하냐'는 주변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행동 하나하나가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특히 띠동갑을 두 번 넘는 MZ세대와의 협업은 큰 부담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곰곰이 돌아보니, 정작 팀원 누구도 나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각자 맡은 책임만 다하면 그 외의 것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중년의 아줌마'라는 선입견의 함정에 스스로를 가둔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나이의 함정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요즘 젊은 세대는 말이지' 하며 비교와 고집 속에서 변화와 배움의 기회를 놓쳐온 건 아니었을까?
나이의 선입견을 내려놓으니, "그래도 나는 끝까지 마무리하는 일잘러였구나"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건넬 수 있었다.
중년에 다시 일을 시작하며, 나는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회사보다 더 자율적이고 기간을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는 점이 내 삶과 잘 맞았다. 그리고 지난 9월 중순
새 프로젝트 면접 제안을 받았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담당자가 물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예전 같았으면 목소리를 떨며 작게 "그게… 아이는 없어요…" 소심하게 속삭이듯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나는 웃으며 당당히 말했다.
"늦게 결혼했더니 안 되더라고요. 그냥 둘이 즐겁게 삽니다."
잠시 후 또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몇 년간 공백이 있으시네요?"
이전이라면 구구절절 아픈 사연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짧고도 명확하게 답했다.
"유방암 치료로 건강관리를 했습니다. 지금은 건강합니다."
면접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유방암이셨군요. 제 지인도 치료 받으셨는데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다."
순간, 낯선 면접관과 나 사이에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겼다.
그때 깨달았다. 힘들고 두려운 이야기일수록 가볍게 내어놓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삶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자산이 된다.
경력보유라는 말

▲ 단절이라는 벽을 넘어서.
radission on Unsplash
한때는 스스로 사회에 나갈 자신이 없었다.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늘 꼬리표를 달고 오는 것 같았다. '아이가 없는 경력단절여성', '완치자가 아닌 환자',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그러던 어느 날, <오마이뉴스>에서 읽은 인터뷰 속 한 문장이 마음을 울렸다(관련 기사 :
그녀의 유쾌한 선언 "경력단절이 제 경력입니다").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보유다."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단절이라는 단어 속에는 벽이 느껴졌다. 그러나 '보유'라는 말 속에는 연결과 가능성이 보였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벽처럼 보였던 두려움도, 사실은 열 수 있는 문이었다.
"두려움은 항상 문 앞에 서 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나가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파울로 코엘료의 말처럼, 나는 내 앞의 두려움마다 작은 문을 달았다. 두드려보고, 흔들어보고, 용기를 내어 열어보았다. 처음엔 단 6개월만 버텨보자 했던 일이 2년을 넘어섰다. 그리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만나며 지금까지 일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중년에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 실패 이후 주춤해 있는 사람들, 느리지만 멈추지 않으려는 모든 이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두려움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그 문을 열면, 멈춘 줄 알았던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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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그리고,
마음의 풍경을 그림으로 담고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그림일기와 에세이를 쓰고,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따뜻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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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공백 있네요" 물은 면접관, 그 때 내가 열었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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