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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부부가 숲에서 산짐승처럼 따먹은 그것은?

숲이 건넨 특별한 선물 '으름'

등록 2025.10.04 14:07수정 2025.10.0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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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덩굴 숲 으름과 다래 덩굴이 엉켜 있는 모습
▲으름덩굴 숲 으름과 다래 덩굴이 엉켜 있는 모습 유상신

"여보, 오늘은 꼭 함께 숲에 들어 가보게요."

며칠 전, 혼자서 집 뒤로 이어지는 숲에 살짝 들어갔다가 곧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늘쯤이면 벌어져 있을 터였다. 바쁘다던 남편의 일정이 취소되어 아침을 먹자마자 서둘러 나섰다. 1년에 단 한 번 찾아오는 기회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자 쓰고 장화 신고, 남편은 장대 전지가위와 낫을 챙기고 나는 소쿠리를 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숲에 들어섰다.

"어머나, 내 예측이 딱 맞았어요. 여보, 저거 좀 봐요."

나무와 덩굴 사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길쭉하게 쩍 벌어져 뽀얗게 드러난 속살은 은근하게 빛을 뿜어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린 '숲속 천연 사탕', '한국의 바나나' 라고 불리는 으름이었다.

으름 열매 주렁주렁 따먹기 좋게 벌어져 매달린 모습
▲으름 열매 주렁주렁 따먹기 좋게 벌어져 매달린 모습 유상신

산골에서 자란 나는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깊은 숲속에서 자란다는 달콤한 열매, 으름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정작 내 입으로 맛본 적은 없었다. 내가 다니던 작은 산에는 으름 덩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도시로 전학을 가 그대로 도시 생활자가 되는 바람에 결국 으름은 언젠가 꼭 먹어보고 싶은 전설 같은 산중 과일로 남아있었다.

세월이 흘러 도시 생활을 접고 귀촌을 결심했을 때, 집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의 집 뒤편 숲을 처음 만났다. 바위 위로 으름과 다래 덩굴이 뒤엉켜 있는 풍경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상상만 하던 으름을 실컷 따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일었다. 마치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은 듯한 감각이었다. 그날의 강렬한 끌림이 결국 우리를 이곳 숲으로 데려왔다.


이곳에 산 지도 어느덧 10년. 매년 가을이면 이제나저제나 으름이 벌어질 때를 기다린다. 오늘이 바로 그날. 남편이 따 준 으름을 받아 들자마자 하얀 속살을 이빨로 훑어 날름 입안에 넣었다. 농익은 과육이 혀끝에서 퍼지며 달콤한 맛이 감돈다. 씨를 발라 입안에 모았다가 '퉤'하고 뱉는 순간의 짜릿함은 말할 수 없이 즐겁다. 으름 따먹기 시동이 걸리자, 한 손으로는 으름 껍질을 잡고 속을 훑어 입안에 넣고, 다른 손으로는 다음 으름을 향해 뻗어가며 '우물우물', '퉤! 퉤!', '톡! 톡!' 3박자가 리듬을 탄다.

장대 가위로도 닿지 않는 높은 곳의 으름은 햇볕을 많이 받아 바나나만큼 크고 탐스럽다.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며 속살을 드러낸 모습은 아찔하게 유혹적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아마도 눈 좋은 새들이 먼저 맛보고 갔을지도 모른다.


산짐승1 으름은 따서 바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 최고
▲산짐승1 으름은 따서 바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이 최고 유상신

산짐승2 으름은 역시 따서 바로 먹어야 제맛!
▲산짐승2 으름은 역시 따서 바로 먹어야 제맛! 유상신

쉬지 않고 으름을 따먹는 우리의 모습이 마치 숲속의 두 마리 산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롯이 자연과 연결되어 살아 있다는 느낌, 그것이 귀촌 생활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이다.

"우리가 너의 번식을 도와주는 거야. 오늘 너의 씨앗 몇백 개를 숲에 뿌려줬을걸."

농담 같은 진담을 던지며 돌아서는 길, 우리는 함께 웃음이 터졌다. 숲에 뱉어낸 씨앗들이 언젠가 또 다른 으름덩굴로 자라날 거라 생각하니 괜스레 뿌듯해졌다.

우리는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대신 집 주변의 꽃밭과 작은 텃밭을 가꾸며 소일한다. 때에 맞게 집 안팎을 단속하며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을 돌보고, 상추와 고추 같은 채소를 키우는 일도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매년 가을 숲으로 들어가 으름을 따먹는 순간만큼은 그간의 피로가 단숨에 사라진다.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이 온몸에 퍼진다.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풍경. 마트에서 사 올 수 없는 맛. 이것이 숲이 주는 가장 특별한 선물이다.

완숙된 으름 검은 씨앗이 살짝 비칠 때 먹어야 가장 달콤하다
▲완숙된 으름 검은 씨앗이 살짝 비칠 때 먹어야 가장 달콤하다 유상신
으름은 '으름덩굴'이라는 덩굴 식물의 열매다. 가을이 되면 연 보랏 빛 감도는 껍질이 저절로 갈라져 흰 속살을 드러낸다. 씨앗이 까맣게 박혀 있어 먹기에는 번거롭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감질나게 발라 먹는 맛'이 별미이고 재미다. 효능도 다양하다. 신장 건강, 소화 개선, 항산화 작용, 혈압 조절 등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최근 건강식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막 따온 으름열매 이때 맛보지 못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막 따온 으름열매 이때 맛보지 못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유상신

올가을 숲 어딘가에서 껍질이 벌어져 속살을 내보이는 으름을 만난다면, 주저하지 말고 한 번 따서 맛보기 바란다. 단번에 바나나처럼 느낄 수 있는 달콤함은 아니지만, 은근히 스며드는 달콤함 속에 자연의 시간이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당신도 나처럼 잊고 있던 '야생의 감각'을 되찾을지 모른다.

요즘은 일부 농가에서 재배하여 판매거나 체험 마을에서 '으름 따기 행사'를 열기도 한다니, 가을이 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채취의 즐거움과 색다른 맛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이 글을 쓴 시점은 10월 1일입니다.

<으름 섭취 시 주의 사항>
-과다 섭취 주의 : 으름은 몸에 좋은 성분이 많지만, 과다 섭취 시 설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알레르기 반응 : 으름에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섭취를 피해야 합니다
-임산부 및 수유부: 임산부 및 수유부는 전문가와 상담 수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으름 효능은 제대로 알고 먹을 때만 건강한 결과를 줍니다.
#으름 #숲 #가을 #부부 #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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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책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은퇴 후 나의 하루는 내가 디자인하며 삽니다. 지금 여기에 사는 즐거움(기쁨이자 슬픔)을 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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