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국가사회주의 공동체의 제5차 전국대회. 여러 유럽 국가의 단체와 독일 참가자들이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으로 장식된 선전 깃발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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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세뇌 수단
- 얼핏 '전쟁'과 '디자인' 사이에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실제 디자인은 어떤 방식으로 전쟁에 이용됐나.
"루이스 설리번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은 군사 무기 디자인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병기는 장식이 아니라 목적에 최적화된 형태, 예컨대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스텔스 폭격기의 기묘한 외형만을 갖춘다. 이런 기능 중심의 디자인은 전장에서 파괴력을 극대화하려는 계산의 산물이다. 프로파간다(선전)은 설계된 언설로 정통성과 정당성을 꾸미는 '꾀하는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디자인이 단순한 미적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파괴를 조직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십자군의 문장, 최근 러시아의 'Z' 마크처럼 전쟁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디자인의 공통점은.
"바로 단순함 속 상징성이다. 전쟁 속 상징들은 기억에 남기 쉬운 단순함을 지녔다. 동시에 일상성을 깨는 약간의 위화감을 포함해 대중의 시선을 끌도록 설계했다. 이런 특징 덕분에 상징은 한순간에 강요되지 않고 서서히 사회에 스며들어, 어느새 모두에게 각인되는 효과를 냈다. 이상적인 세뇌 수단이라 할 수 있다."
- 그럼에도, 책에서처럼 '디자인은 죄가 없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디자인(Design)'은 '설계하다'라는 뜻뿐 아니라 범죄를 '계획하다', 사람을 '속이다/꾀다'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를 보면 문제는 디자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고 운용하는 인간에게 있다. 또한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평가도 달라진다. 9·11 세계무역센터(WTC) 테러 당시, "중동의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디자인했다"라고 떠들썩했다. 이 사건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중동 일부에서는 이를 기뻐하는 보도도 나왔다. 같은 사건이라도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악이 되기도, 선이 되기도 하는 셈이다."
- 그렇게 보면, 디자인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집단을 결속시키기도 하며, 전쟁으로 동원되기까지 한다. 그 영향이 상상 이상인데.
"대중은 늘 '알기 쉬운 것'에 끌린다. 이를 확대하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러한 단순함은 종종 사고를 멈추게 하는 효과(깊은 생각을 하지 못함)를 냈다. 이런 '사고 정지'가 가장 위험하다. 상징적 디자인은 이를 부추기는 기술로 활용됐다. 현대인은 사고를 정지시키는 다양한 요소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이었고, 'AI'의 발달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했다. '생각하는 것'이 인간다움의 핵심인 만큼, 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분열, 다툼, 죽음을 희석하는 디자인
- 오늘날 정치 선전이나 구호, 상업 광고에서도 전시(戰時) 디자인의 요소가 엿보인다.
"일상 속에 숨어있는 전쟁의 발소리는, '위험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똑같은 시각 정보와 똑같은 언설이 거리나 미디어에 과도하게 넘쳐나기 시작하면 '황색 경보'다. 다시 말해, 지금의 미국처럼 '다양성'이 부정되고, 언론이 규제되는 사회는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분열과 다툼을 가속화하는 비민주적 국가라고 할 수 있다."
- 책에서 미국의 '영구적 자유 작전', 푸틴의 '특별 군사 작전', 독일의 '존더코만도(특수부대)'처럼, 일본도 전멸을 '옥쇄(玉砕)', 장렬한 죽음을 '산화(散華)', 전사자를 '영령(英靈)'이라 불렀고, 자폭 공격을 '신풍 특공(가미카제)'이라 불렀다고 썼다. 이런 대체 용어 역시 언어의 전시 디자인인가?
"'영구적 자유 작전' '특별 군사 작전' '존더코만도' 등은 배경에 있는 비참한 사건을 은폐하려는 속임수였다.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표현도 자주 쓰였지만, 실제로는 결코 부수적일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이 그 뒤에 있었다. 죽음은 단순한 수치가 아닌 '통계 속 수치로만 남고 싶지 않다'는 비통한 절규로 읽혔다. 일본군의 '옥쇄' '산화' '영령' 등은 병사들의 죽음을 희석하고, 오히려 찬양하기 위한 기만적인 말(欺瞞語)이었다. 폭주한 국가의 책임을 숨기고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묘한 덫이었다."
- 욱일기(旭日旗)의 경우 한국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다. '디자인'의 측면에서 이것이 사회적, 국가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욱일기 디자인은 원래 태양의 빛남을 상징하며 일본에서 경사스러운 징표로 사용됐다. 그러나 보신 전쟁(1868~1869, 이 전쟁으로 막부가 저물고 메이지 신정부가 들어섰다) 때 메이지 정부군이 욱일기를 들고 승리하면서 '국가 승리의 디자인'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침략의 상징으로 변질됐다. 태평양 전쟁의 전말을 아는 일본인에게는 인상이 좋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욱일기는 현재 자위대 해군 깃발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주변국 침략에 대한 반성이 아직 미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 내에서는 여전히 전쟁 책임을 부정하는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있다. 전쟁 세대가 모두 사라지면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전쟁 디자인이 폭력성을 감추는 이유
- 전쟁 디자인이, 때로 폭력성을 감추거나 혹은 강화하는 이유는.
"디자인은 미학적 매력을 높이려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에, 폭력성을 덮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일이 발생했다. 디자인은 창이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하는 모순된 존재며, 운용하는 측의 의도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졌다. 폴 비릴리오가 비행기가 추락을, 자동차가 사고를, 배가 침몰을 발명했다고 말했듯, 디자인도 '효과적인 세뇌 수단'을 낳았다. 현대의 SNS와 스마트폰 역시 '사기'를 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편리함 속에는 언제나 양면과 긍정·부정의 측면이 공존한다고 본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우리 몫이다."
- 그렇다면, 디자인이 전쟁이나 선전(선동)에 사용될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어디까지일까.
"디자인은 우리 사회에 공개되면 큰 힘을 발휘했지만, 동시에 악의적 목적으로 이용되기 쉬운 취약성을 지녔다. 전쟁 중 프로파간다에 참여한 디자이너들 가운데 죄를 물은 사례는 없었다. 대부분 수주받아 일하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가담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디자이너라면 평소 사회 동향을 주시하고, 국가적 캠페인이나 선거 등 큰 영향력을 가진 작업에는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 특히 어떤 점을 주목해 주길 바라는지. 또, 전쟁 디자인의 반면교사를 아는 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준다고 생각하나.

▲ <전쟁과 디자인> 표지
교유서가
"나는 평소 한국(조선) 민족이 역사적으로 호전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으로 타국을 침략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지만, 한반도는 외침을 받거나 내분이 있었을지언정 단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에도 시대 일본인이 250년 이상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한반도에서 침략자가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침략만큼 어리석은 행위도 없다. 인적·물적 자원이 파괴되고, 경제적 이득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막는 개인의 역할은 미약했지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전쟁만은 안 된다'는 심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는 시대를 대비해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의 역사와 디자인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정보 기술의 발달은 비릴리오의 말처럼 '악한 꾀'도 진화시켰다. 인간의 본성은 문명이 발전해도 쉽게 바뀌지 않으므로,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마쓰다씨는 어떤 문제든 그 근원을 '나 자신'에서부터 찾길 권했다. 그는 "자신을 주어로 두면 세상 흐름에 쉽게 휘말리지만, 술어로 두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며 자유와 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고의) 다양성이야말로 전쟁을 피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쉽게 말해, 자신만 생각하면 세상에 물들지만, 흐름 속에서 역할을 조정하면 선택의 자유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책에서 깊이 다루지 못했지만, 마음속 잠재의식과 디자인, 즉 '어느새 물들어버리는' 문제를 앞으로 더 탐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를 설명하며 "권력자는 대중을 영합하게 만들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중은 수동적 역할에 머물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동에) 물들지 않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며, 디자인 이야기가 그 안목을 기르는 데 일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2010년 말, 불평등, 실업, 부정부패 등으로 일어난 시민혁명)처럼 강압적 권력자가 독재 체제의 붕괴를 피하기 위해 교묘하게 진실을 숨기기도 한다. 그것을 간파하는 것도 개개인의 안목에 달렸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그로 인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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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권리를 위해서라면 끝까지 싸우겠다" - 영국 작가 에블린 홀 - / seoulp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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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악용한 권력... 그 참상을 신랄하게 고발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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