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고 허수경 시인 7주기, 고향 진주에서 '특별한 추모'

하미옥-성순옥씨, 동생과 진주 장대동 등 더듬어... 3일 빗소리 들으며 "혼자가는 먼집" 등 낭송

등록 2025.10.05 08:13수정 2025.10.05 08:13
0
원고료로 응원
"하나 밖에 없는 동생. 그 아이는 혼자 아버지 임종을 보았다. 언니와 내가 서울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잠깐 장을 보러 가느라 집을 비운 동안, 혼자서 아버지의 임종을 보았다. 그 후로 나에게 '누나' 하고 말을 건네면 그 동생이 안 쓰러워 내 마음은 한없이 쓰라리다. 아버지도 그때 그렇게 마음이 쓰라렸으리"(허수경 산문집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중).

타국에서 온몸으로 모국어로 글을 써 울림을 주었던 고(故) 허수경(1964~2018) 시인이 '동생'(허훈)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허수경 시인이 말하는 아버지는 1991년 세상을 뜬 고 허남벽 교수(경상국립대)다.

진주에서 태어났던 허수경 시인은 1987년 시 "땡볕"을 계간 <실천문학>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와 열정적으로 창작을 쏟아내다 아버지를 잃은 다음 해인 1992년 고고학 공부를 위해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집>,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는 허 시인이 생전에,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는 사후에 남긴 시집이다.

 고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진주 장대동 집 골목을 하미옥, 성순옥, 허훈씨가 찾았다.
고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진주 장대동 집 골목을 하미옥, 성순옥, 허훈씨가 찾았다. 성순옥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이 기일인 3일 진주에서 '특별한 추모'를 했다. 허 시인이 남긴 시에 흠뻑 젖어 사는 하미옥(학원강사), 성순옥(재능교육교사)씨가 동생 허훈(58)씨와 함께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집과 걸었던 골목을 찾아 어릴적 고인을 더듬은 것이다.

그녀가 이 세상과 이별하자 후배, 문인, 독자들이 고향에서 추모를 해왔다. 시인이 먼 타국에서 숨을 거두자 진주문고에서 '49재'와 1주기 추모식이 열렸고, 2~5주기는 코로나19로 비대면 혹은 개인적으로 추모를 했으며, 2024년 6주기 추모식이 진주문고에서 열렸다.

7주기에는 추모식이 아니라 몇몇이 모여 시인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는 것으로 고인을 기렸다. 하늘도 허 시인을 기리는 듯 비가 내렸다.

허 시인의 대학 후배인 성순옥씨는 "세 사람이 만나 허수경 시인의 길을 만드는 역사적인 대업을 시작했다"라고 소개했다. 이들이 찾은 곳은 진주시 장대동 71-11번지. 진주중앙시장에서 만난 이들은 옛 주소를 들고 시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동생 허훈씨는 "수경 누나와 큰 누나는 진주 강남동에서 태어났고 저는 장대동에서 태어났는데, 고모집에서도 살고 1971년부터 2010년까지 중앙시장에 있는 이 집에서 살았다"라고 술회했다.

새롭게 정비된 진주중앙시장의 '논개시장' 쪽 생선가게 사이로 골목길을 들어서니 생선가게 아주머니가 "훈이 아이가?"라며 알아봤다는 것이다.


이들은 우산을 쓴 채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꺼냈다. 하미옥씨는 "혼자 가는 먼 집"을, 성순옥씨는 "진주아리랑"을 빗소리를 반주로 여기며 낭송했다.

허훈씨는 "몇 년 전에는 혼자 이 골목을 다녀 갔는데 오늘은 동무들과 집주인과 함께라서 든든하다"라고 말했다. 그 골목 인근에 있는 한 목욕탕 앞에서 이들이 발길을 멈추었다. '진양탕'. 허수경 시인의 어머니가 잠시 운영했던 목욕탕이라고 동생이 말했다.

그런데 그 목욕탕이 지금도 누군가 맡아서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목욕탕과 논개시장을 지나 옥봉동으로 난 대로를 건너 허수경 시인이 가족들과 살았던 집 다른 두 곳을 찾아보기도 했다.

 고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진주 장대동 집 골목을 성순옥, 허훈씨가 찾았다.
고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진주 장대동 집 골목을 성순옥, 허훈씨가 찾았다. 성순옥

성순옥씨는 "골목 안에 옛 흔적이 남은 집 대문과 담벼락 앞에서 어린시절 추억도 듣고 고모집에서 살았던 사실도 이제 알았다"라며 "옥봉동 산 밑 동네에 개천이 있었고 집도 몇 채 없었던 1970년대 중반 어느날 연을 날리던 이야기도 들었다"라고 소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타국에서 모국어를 그토록 사랑했던, 먼저 간 시인의 흔적을 더듬는 시간은 '감동'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감동에 감동을 얹어 '수류헌'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옥카페로 갔다"라며 "'수류헌'의 석류가 보고 싶은 마음에 비 오는 길을 따라 한옥카페에서 들어서서 허 시인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창가 석류나무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곁에 두고, 시인과 가족들이 살았던 옛집의 구조를 그려보기도 하고, 시인이 떠나고 없는 '먼 집', '외로운 집'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1989년 쯤인가 아버지 위암 수술을 받았고, 이후 1990년 1월 1일 집에서 돌아가셨다. 난 그 때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이마에 꽂힌 주사바늘이 저절로 빠지더라"(허훈).

허수경 시인은 일곱해 전 독일 뮌스터에서 이 지상과 이별했다. 성순옥씨는 "앞으로도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기억하는 의식을 할 것이다"라며 "올해 7주기는 개천절에 명절연휴까지 겹쳐 드러내 놓고 못했지만 시인이 살던 집과 골목에 서서 시 한 줄 읽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보탰다. 그래도 우리의 작은 도모는 대성공이었다"라고 말했다.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 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나 벌초하려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고 허수경 시인의 어머니가 진주에서 한때 운영했던 목욕탕이다.
고 허수경 시인의 어머니가 진주에서 한때 운영했던 목욕탕이다. 성순옥

 고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진주 장대동 집 골목을 하미옥, 성순옥, 허훈씨가 찾았다.
고 허수경 시인이 살았던 진주 장대동 집 골목을 하미옥, 성순옥, 허훈씨가 찾았다. 성순옥
#허수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기를 빼달라고 하니 사장님이 내놓은 엄청난 김밥 고기를 빼달라고 하니 사장님이 내놓은 엄청난 김밥
  2. 2 주식을 안 해서 행복한 요즘입니다 주식을 안 해서 행복한 요즘입니다
  3. 3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
  4. 4 주방세제로 목욕하던 아이... 가난의 대물림 끊은 당구 선수가 전한 희망 주방세제로 목욕하던 아이... 가난의 대물림 끊은 당구 선수가 전한 희망
  5. 5 현대차 생산직보다 기자들 먼저 잘린다...'공중제비' 로봇의 진실 현대차 생산직보다 기자들 먼저 잘린다...'공중제비' 로봇의 진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