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밭 사잇길 소쇄원 입구 대나무밭 사잇길
이윤옥
소쇄원이 자연 속에 제월당, 광풍각 등 몇 개의 정자를 지어놓은 '인공적인 느낌이 없는 자연친화적인 곳'인 것처럼 한국의 산천에는 반드시 정자가 있지만 일본에는 정자가 없다. 정자를 지어놓고 한가하게 자연을 노래할 역사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 이후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까지 683년 동안 일본은 무사시대(武士時代)였다. 무사시대란 싸움의 시대다. 적에게 먹히느냐 내가 먹느냐의 긴박한 역사 속에서 정자문화란 애당초 성립이 불가능한 것이다.
소쇄원이야기를 하다가 옆으로 샜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내려오니 귀여운 고양이 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 손님도 없는 고요한 광풍각 툇마루에서 졸고 있다가 기자를 발견하고는 놀자고 꼬리를 친다. 녀석과 전세 낸 듯한 텅빈 소쇄원 뜰에서 비 오는 가을날의 한때를 즐긴 시간은 또 하나의 추억이다.
참고로, 소쇄원의 제월당은 명승 (구)제40호로 2008년 5월 2일 지정되었다. 하나의 제언을 하자면, 제월당에 걸린 명시들을 한글로 설명한 안내문을 <제월당 툇마루>에 마련 해두었으면 하는 점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소쇄원 누리집에 한글로 된 번역본을 실어주어도 좋을 법하다. 아무리 좋은 시라도 그 내용을 모르면 그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뒤면 한글날이다. 그러고 보니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 선생을 비롯한 제월당에 시를 써 걸어둔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살다 간 시대는 세종의 한글 창제로부터 100년 뒤다.
세종임금은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겪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백성들이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한글을 만들었다'라고 했는데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비, 학자들은 세종임금의 '한글 창제'를 왜 외면했을까? 창제 이후 100년이 지났건만 제월당 벽면을 가득채운 문자는 '한글'이 아니라 '한자'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경우에도 한자 시가 여전히 편액 속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해도 후대의 우리들이 찾아가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조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글 번역본을 툇마루에 놓아두거나(코팅해서 읽고 그 자리에 두라고 하거나) 따로 설명판을 만들어 두거나 아니면 누리집을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소쇄원 제월당 편액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누리집을 찾으니 누리집이 '기간 만료'란다. 소쇄원이 단순한 '정원 구경용'이 아니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선조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세세한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담양 소세원이 하드웨어라면 제월당 편액에 걸린 시들은 옛 선현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일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소쇄원 글들은 하나같이 '하드웨어 찬양 일색'이다. 건물이 어떻고 배치가 어떻고 말이다. 모두 건축가가 될 것도 아닌데 그런 하드웨어적 관점보다는 자연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던 선현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다음 방문 때에는 기자의 제언이 받아들여져 제월당 편액 시들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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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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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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