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추석, 토박이말로 빚은 보름달을 드립니다

124개의 토박이말로 만든 '말의 보름달'

등록 2025.10.05 17:43수정 2025.10.0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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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토박이말 보름달
▲훈민정음 해례본 토박이말 보름달 김슬옹, 강수현

올해 추석엔 비까지 많이 내리니 보름달을 만나기 어려우시겠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곱게 간직되어 온 124개의 토박이말로 둥글게 빚은 '말의 보름달'을요.

579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이 담긴 말씨들


가운데 자리한 보랏빛 '달'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이 말들은 모두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려 있는 우리의 오랜 말씨들입니다.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위해 한글을 반포하시며 처음 기록한 토박이말들이지요. 필자가 강수현 작가와 함께 이 말들을 집자 방식으로 모아서 보름달을 만들었습니다.

이 124개 낱말들을 보면, 우리 조상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먼저 자연과 더불어 살던 삶의 모습들입니다. '땅', '뫼(산)', '섬', '물', '못', '샘' 같은 자연의 말들과 '달', '별', '서리', '우박' 같은 하늘의 말들이 15개.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시간을 헤아리고, '닭(酉時)'이 울면 하루를 마감했던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함께 살아가던 생명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범', '사슴', '노루', '여우', '새', '벌', '잔나비' 등 24개의 동물 이름들. 특히 '반딧불이', '올챙이' 같은 작은 생명까지 소중히 여겼던 마음이 느껴집니다. '누에'와 '고치'는 비단을 짜던 우리 조상들의 일상을 보여주지요.

먹고 사는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벼', '콩', '팥', '파', '율무', '갓' 등 22개의 식물과 열매들. '논', '호미', '낫', '키' 같은 농사 도구 4개와 함께 '밥'과 '엿' 같은 먹거리까지, 농경사회의 풍요로움이 담겨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아우', '종', '사람' 그리고 '사랑' 같은 말들. 비록 숫자는 적지만, '나'와 '너',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로 이어지는 관계의 소중함을 보여줍니다.

32개나 되는 생활 도구들! '종이', '붓', '벼루'로 글을 쓰고, '바늘', '실'로 옷을 지으며, '갓', '신'을 신고, '우산'으로 비를 막았던 일상. '거문고받침'과 '횃불', '낚시'와 '활'까지, 놀이와 일이 어우러진 삶이 그려집니다.


집과 마을의 정겨운 모습도 담고 있습니다. '절', '다리', '담', '울타리', '기둥' 같은 5개의 건축 관련 말들은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보름달처럼 둥근 우리말의 아름다움

낱말들을 보면 어떤 말들은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말들이고, 어떤 말들은 시간 속에서 조금씩 모습을 바꾼 말들입니다. '뫼'는 '산'이 되었고, '두텁'은 '두꺼비'가 되었지만, 그 정겨운 울림은 여전합니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이 말들이 단순한 명사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몸'을 나타내는 9개 낱말 중에는 '입', '혀', '손', '팔'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힘줄', '옆구리', '발꿈치'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있어, 몸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추석, 말의 보름달과 함께

비록 하늘의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있을지라도, 이 '훈민정음 보름달'로 마음만은 환하게 비추시길 바랍니다. 124개의 토박이말이 만든 이 둥근 달은, 579년 전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를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주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달의 중심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빛나듯이, 이번 한가위에도 가족과 이웃 간의 사랑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족과 함께, 혹은 홀로 계시더라도, 이 토박이말 보름달을 보시며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조상들의 지혜를 되새기는 풍성한 한가위를 보내세요.

우리말이 곧 우리의 정신이고, 우리의 삶입니다. 이 말의 보름달이 모든 분들께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추석 #한가위 #보름달 #훈민정음해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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