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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0.06 12:27수정 2025.10.06 12:45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 후 23년 만에 차례와 제사를 안 지내게 되었다. 명절에 차례를 안 지내기로 하고 과일과 송편으로만 간단하게 성묘만 하고 온 남편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남편의 명절은 어릴 적부터 늘 북적거렸다고 한다. 북적대던 명절이 시부모님과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시며 점점 간소화되며 이젠 아예 차례와 제사를 안 지내게 되었다. 뭔가 허전하지만 편안한 며느리인 나와 다르게 남편은 유난히 긴 명절 연휴가 허전함 그 이상인 듯 보인다.
일 년에 기제사 4번과 차례 2번을 지내는 남편과 결혼했다. 6번의 제사도 반으로 줄인 거라고 했다. 남편은 결혼 전 제사와 차례에 대해 얘기해주었지만, 친정에서는 제사를 안 지내왔기에 제사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어머님이 대부분 음식 준비를 하셨고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님이 능숙하게 음식을 하셨기에 나는 거드는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이 불편했다.

▲ 해외여행
서희연
명절이 싫었던 이유는 여느 며느리처럼 다 먹지도 못할 음식을 하루 종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몇 광주리씩 되는 음식은 한눈에 보아도 명절 연휴에 매끼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었지만 이것도 반으로 줄인 양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싫었던 건 음식을 하는 도중에 끼니를 챙겨야 하는 거였다. 몇 시간째 기름 냄새를 맡아 전이랑 떡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싶은 나와는 다르게 어머님은 끼니를 거르면 안 되는 분이었다.
몇 번의 명절을 어머님 말씀대로 매 끼니를 챙기다 용기내어 말씀드렸다. 남편과 아이들 핑계를 대며 점심 메뉴를 라면으로 먹자고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나의 제안에 어머님보다는 남편이 더 놀란 듯했다. 남편은 30년 넘는 세월 동안 명절에 라면을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형님도 아닌 내가 한 것에 더욱 놀란 듯 보였다.
어머님은 그래도 명절인데 라면을 먹으면 안 되지 않냐고 하셨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쉽게 허락해 주셨다. 라면을 허락받은 후 한발 더 나아가 설거짓거리를 줄이기 위해 컵라면으로 먹고 싶다고 했다. 쿨한 어머님 덕분에 각자 원하는 컵라면을 종류별로 사와 라면으로 간단하고 맛있게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명절에 먹는 라면은 나만큼이나 형님도 만족해하셨다.
그 이후엔 가끔 명절에 짜장면, 짬뽕도 사 먹곤 했다. 감사하게도 어머님은 내가 의견을 내면 무조건 반대하지 않으시고 변화하는 명절 문화에 서서히 젖어 들어가셨다.

▲ 짬뽕짜장면
서희연
해가 갈수록 제사의 횟수, 음식의 양과 가짓수가 줄어들었다. 점점 간편해지긴 했지만 명절 연휴에 차례와 성묘로 인해 여행이나 다른 계획을 잡을 수 없었다. 남들은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간다고 매스컴에서 떠들어댔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아주버님이 돌아가신 후 세 분의 3년 기제사를 끝으로 이제 제사와 차례를 집에서 안 지내게 되었다.
이번 추석이 차례를 안 지내기로 한 첫 명절이다. 그래서 아예 명절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연휴 첫날이면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었지만 이번 명절엔 집에서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명절이지만 기름 냄새 없이 일상과 같은 음식을 먹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여행
서희연
명절 당일 아침에 다녀오려고 했던 성묘는 비가 온다는 소식에 하루 일찍 다녀왔다. 사과, 배, 송편, 포와 술을 사서 선산으로 갔다. 차례 음식 없이 간단한 상을 차려 술을 올리고 절을 하니 시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도 했다. 이제는 명절을 이렇게 지낼 것이기에 이 또한 적응이 필요하다.
"명절에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하니까 이상해.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보다 오랫동안 제사를 지내오신 형님은 더 적응이 안 되는 듯했다. 형님도 제사를 안 하고 싶어 하셨지만, 습관처럼 지내온 제사와 차례를 막상 안 하려니 마음 한편이 불편하신 듯 보였다. 그동안 수고하신 형님께 말씀드렸다.
"형님, 이제는 명절에 편히 쉬면서 가끔 여행도 함께 가요."
요즘엔 명절이어도 대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가정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차례가 간소화 되거나 지내지 않는 가정이 많아지고, 전통 음식 대신 간편식으로 대체되고 여행과 취미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명절을 보낸다는 기사를 쉽게 접한다. 변화하는 명절 문화에 우리 가족도 편승하려 한다.
차례 없는 명절이 처음이라 아직은 쓸쓸하고 어색하지만, 다음 명절부터는 나와 가족이 하고 싶은 시간으로 채우는 충만하고 편안한 명절을 보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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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미수의 '기분좋게 하라, 행복하게 하라'는 뜻처럼 글을 쓰는 저와 글을 읽는 독자가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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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처음으로 차례 없는 명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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