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전 안내문 천수전의 주불(主佛)과 참배 방법, 주련 해석 등이 상세히 적혀있는 안내문이 천수전에 걸려있다.
이윤옥
문제는 이런 카페에서 다루는 차 종류들이 시중가 못지않게 비싸다는 점이다. 비싸면 안 사 먹으면 그만이겠지만, 절 순례를 하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쳐 잠시라도 쉬고 싶어지는데 절 안에는 카페 시설 말고는 딱히 쉴 만한 공간이 없는 곳이 많다. 절 경내에 그 흔한 긴의자 하나 없다. 갈수록 그런 느낌을 받다가 만난 불회사의 무인 찻집인 '비로찻집'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정갈한 찻잔과 잔받침, 찻주전자, 물식힘사발, 차선, 차칙(찻잎을 뜨는 대나무 숟가락) 등이 갖춰져 있고 '비로약차'까지 갖춰져 있었다. 친절하게도 비로약차를 어떻게 타야하는지도 잘 설명해 놓고 있었고 무선주전자에는 방금 누군가 코드를 꼽아 차를 타기 딱 좋은 물의 온도로 맞춰 놓았다. 두리번거려보았지만, 찻집 안에는 아무도 없다. 누군가 방금 차를 마셨는지 개수대에 찻잔을 씻어 정갈하게 엎어둔 모습이 인상 깊다. 고요하고 정갈하여 사색하기 좋은 찻집을 나주의 불회사에서 만나다니... 아주 감동적이었다. 집이 가깝다면 이 절의 신도가 되고 싶은 마음마저 일었다. 누군가 나주에 가거든 반드시 불회사의 비로찻집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비로찻집 1 무인으로 운영되는 깔끔한 비로찻집 창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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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찻집 2 무인으로 운영되는 깔끔한 비로찻집 입구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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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찻집 꽃꽂이 찻집을 관리하는 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꽃꽂이는 탁자마다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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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찻집 다구들 1 비로찻집 안의 각종 다구들( 1), 손님이 스스로 이 도구를 꺼내 차를 타 마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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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찻집 다구들 2 비로찻집 안의 각종 다구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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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 깜찍한 찻잔받침과 찻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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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겨울 나는 천년고찰이라는 어떤 절을 찾아간 적이 있다. 때는 2월 말이었지만 날은 추웠고 잠시라도 몸을 녹일 공간은 없었다. 마침 종무소가 있기에 문을 빼꼼 열고 잠시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고 보니, 은행 창구처럼 만들어 놓은 종무소 안쪽에서 여직원이 무슨 용무냐고 묻는다. 둘러보니 앉을만한 의자 하나 없다. 그냥 멋쩍어 '이 절의 홍보물이 있으면 하나 달라'고 하니 인터넷을 찾아보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나온 기억이 난다.
나는 찻주전자에 비로약차(榧露藥茶: 비자나무 아래서 이슬을 머금고 자란 찻잎을 일곱가지 약재와 함께 만든 발효차)를 우려내어 천천히 마셨다. 지난 30여 년 동안 찾아갔던 수많은 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30여 년 전보다 절의 전각은 커졌고 규모도 커진 것 같지만 정작 절을 찾는 이들이 쉴만한 공간은 늘지 않는다. 유료 찻집만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 상황에서 불회사의 비로찻집은 신선했다. 물론 이곳이 완전히 무료는 아니며 찻값은 자기가 알아서 보시함에 넣게 되어있다.

▲자율적인 비로찻집 절을 찾는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선풍기 바로 앞에 보시함이 있어 자율적으로 찻값을 내면 된다. , 비로찻집 입구 파란 탁자 위에는 보온물통 속에 우려낸 차와 종이컵이 마련되어 있어 찻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도 차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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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찻집 펼침막 대양루(大陽樓) 1층의 정갈한 찻집 외관에는 '불회사 비로차 한 잔 들고 가시게'라는 펼침막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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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에서 느낀 두 가지를 말하려다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나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련에 대한 해설을 해두고 있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정갈한 무인 찻집을 만들어 절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이용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이라는 말이 있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마셔야 한다'라는 뜻이다. 나는 비로찻집에 앉아 이런 아름다운 찻집을 만든 이가 누굴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 배려심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나주시청 문화관광과에서는 천년고찰 불회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백제 침류왕 시기인 384년 인도 고승 마라난타가 해로를 통해 들어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중국차의 한국 전래지로 천년이 넘은 전차(錢茶)의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한국 차문화를 상징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또한 대웅전ㆍ건칠비로자나불좌성ㆍ석장승 등 많은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웅전 뒤편의 동백나무숲과 국가 보호림인 비자나무숲이 유명하다. 불회사는 '춘불회추내장(春佛會秋內藏) 곧 봄에는 불회사, 가을에는 내장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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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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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온 이를 세심하게 챙겨주는 나주 '불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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