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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씨를 발견한 문익점처럼 가슴이 뛰다

변수가 많은 고차방정식, 죽일 듯 싸우면서 조화를 이루는 적대적 공생관계

등록 2025.10.06 14:43수정 2025.11.0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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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우에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딱 목화씨를 발견한 문익점 심정이었다. 나도 문익점처럼 이 귀한 기술을 고국에 가져가고 싶어서 가슴이 뛰었다. 메마른 콘크리트 벽을 자연과 교감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뚜껑 속에 몰래 감춰서 국경을 넘었지만, 나는 이 기술을 공개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헹잉바스켓 마스터 자격을 따서 당당하게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책을 꼼꼼히 잘 만드는 나라라서 널린 자료만 수집해서 공부해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헹잉바스켓을 만들어 낼 수는 있었다. 나는 그보다 이들의 30년 기량이 녹아있는 최첨단 핵심기술을 통째로 배워오고 싶었다. 그래서 시험을 선택했다.


 슬릿화분은 식물을 심기위해 화분 옆쪽에 세로로 좁고 긴 홈 5개를 파놓은 것이다
슬릿화분은 식물을 심기위해 화분 옆쪽에 세로로 좁고 긴 홈 5개를 파놓은 것이다 유신준

실기시험 조건은 3가지 이상 초화 10포기를 정해진 순서에 맞춰 심는 것이다. 1번부터 10번까지 자리가 정해져 있다. 화분도 지정돼 있다. SLT-25. 직경이 25센티인 반 타원형 입구에 아랫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헹잉바스켓 전용 슬릿화분이다.

슬릿화분은 식물을 심기위해 화분 옆쪽에 세로로 좁고 긴 홈 5개를 파놓은 것이다.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이 화분이 개발되기 전에는 화분옆에 구멍을 하나씩 뚫어 식물을 손질하여 끼워 넣어야 했다. 이 일은 난이도가 높아 초보자들은 접근이 어려웠다. 슬릿형 화분이 나오면서 식물을 있는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밀어 넣을수 있게 됐다. 누구든지 쉽게 접근이 가능해서 일본 헹잉바스켓은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3.5센티 폭의 좁고 긴 슬릿에는 부드러운 스펀지를 덧댈 수 있게 돼 있다. 스펀지는 배양토가 화분밖으로 새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초화를 밀어 넣을 때 줄기가 상하지 않도록 감싸는 역할도 한다. 실기 작품은 심는 방법이 따로 있다. 슬릿을 이용해서 1단과 2단, 3단까지 배양토를 채워가며 지그재그로 초화를 밀어 넣는다. 맨 위에 1단을 더 심어 총 4단으로 헹잉바스켓을 완성한다.

아카시부인이 꽃 모종을 준비해 왔다. 한달 이상 키울 아이들이니 최소한의 정보는 알아 둬야 한다며 꽃도감에서 사진들도 보여줬다. 처음 심을 때는 어린 모종을 심지만 다 자랐을 때 어느 정도 크기인지 미리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간을 나누고 전체적인 헹잉바스켓의 배색 구도를 정할 수 있다.

어떤 초화가 어떤 꽃 모양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커 나갈 것인지 생장형태를 알고 초화의 특징들을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각 초화류의 개별적인 특징을 아는 것이 실기 공부의 시작인 셈이다.


 이질적인 요소가 모이면 충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죽일 듯 싸우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이질적인 요소가 모이면 충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죽일 듯 싸우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유신준

나는 준비해 온 초화 모종 중 일일초 4주와 펜타스 2주, 코리우스 2주, 아루테루 난테라 2주를 골랐다. 초화들은 어느 것을 선택해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 된단다. 초짜들을 위해 배색을 배려했다는게 아카시부인 설명이다.

그녀는 다른 고려사항도 많지만 처음에는 무조건 배색만 신경쓰라 했다. 헹잉바스켓은 배색이 전부라 할 만큼 중요하다며. 배색요령은 이미 배운대로다. 비슷한 동계색들로 선택해 차분한 분위기를 만들건지, 아니면 색상차가 많이나는 조연을 선택해 다채로운 분위기를 만들건지 두가지만 고려하면 된다.


내가 선택한 것은 활기있는 빨강과 흰색이었다. 빨강은 임팩트가 강한 색이며 흰색은 연결색으로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린다. 내 삶에서 단조로움은 쥐약아니던가. 작품이란건 나를 표현하고 평가받는 것이다.

더구나 빨강과 흰색은 서로 잘 어울리는 족보있는 조합이기도 하다. 고채도의 선명한 빨강색과 채도 제로인 무채색 흰색은 약동감이 활발한 조화를 이룬다. 명도대비에서도 발군의 대조를 이뤄 서로를 돋보이게 만들어 실패가 적다고 알려져 있다. 초짜가 뭘 아나. 일단 쉬운 길로 가야지.

이질적인 요소가 모이면 충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죽일 듯 싸우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다. 다만 대비 요소들이 많아지면 산만하고 지루해 질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것만 조심하면 된다.

내 작품에는 안전장치도 있다. 일일초는 단순한 흰색이 아니다. 흰색바탕 가운데 붉은점이 보이는 혼색품종이다. 전체적으로는 적백 대비를 이루지만 부분적으로는 빨강이라는 동계색의 요소도 포함하고 있어 완전 대조의 위험을 누그러트렸다. 이만하면 배색은 충분히 고려했다.

일일초는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꽃이다. 여름동안 쉬지않고 꽃을 피운다. 매일 꽃이 피어있다고 해서 일일초다. 원산지는 아프리카의 섬 마다가스카르다. 그곳에서는 겨울이 없어 사계절 자라므로 저목으로 분류된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니 1년초로 쓰이는 거다.

펜타스는 일일초와 더불어 여름꽃을 대표하는 아이다. 고향도 비슷해서 아프리카 북부에서 아라비아 반도까지 걸쳐 자생한다. 그래서 여름철 헹잉바스켓에 일일초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 썸머 초화류다. 꽃이 지고나면 잘라주면서 잘 관리하면 계속해서 꽃을 볼 수도 있다.

코리우스는 동남아에서 온 아이다. 우리와 기후조건이 비슷하다. 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꽃보다 주로 관엽을 이용한다. 적백, 혹은 녹자로 너무 튀는 종류의 색깔이 많아서 그다지 호감을 못 느끼는 사람도 많다.

 배색은 가장 특징적으로 헹잉바스켓에 질서를 입히는 일이다. 질서는 조화를 낳는다.
배색은 가장 특징적으로 헹잉바스켓에 질서를 입히는 일이다. 질서는 조화를 낳는다. 유신준

코리우스는 존재자체가 강렬한 식물이라서 주연으로는 잘 안쓴다. 이걸 중심으로 쓰면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품을 이루려면 전체가 부분보다 두드러져야 한다. 먼저 전체가 보여야 한다. 부분이 너무 튀면 전체가 무너진다. 맘에드는 꽃들을 아무리 늘어놔 봐도 질서가 없으면 꽝이 되는 이유다.

키가 크거나 중간이거나 작거나, 꽃이 피었을때 색상들이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질서를 부여한다. 배색은 가장 특징적으로 헹잉바스켓에 질서를 입히는 일이다. 질서는 조화를 낳는다.

조화는 헹잉바스켓의 생명이다. 코리우스는 포인트 조연으로 조화를 돕는다. 조연이라고 가볍게 보면 안된다. 조화로운 작품을 이루려면 수많은 구성요소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하나로 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다. 포인트가 빠지면 간이 안맞는 음식처럼 전체적인 분위기가 맹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조화속이다.

알테르난테라라는 식물은 그곳에서 처음 봤다. 요즘 계절에 적당한 양념식물이란다. 중남미 원산이라는데 자잘한 이파리가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꽃모를 골랐으면 작업대 위에 놓고 위치를 바꿔가며 시뮬레이션을 한다. 머릿속으로는 전체적인 느낌을 그려놓고 눈앞의 초화류들을 이리저리 옮겨 보며 느낌을 맞춘다.

헹잉바스켓은 연극무대와 같다. 어떤 초화를 주연으로 할 것인지, 어떤 것을 조연으로 쓸 것인지 먼저 정해야 한다. 4단의 고저차를 하나의 화면으로 고려하면서 전체적인 배색을 구상하는 것이다.

나는 일일초를 주연으로 펜타스를 조연으로 쓸 생각이었다. 코리우스와 알테르난테라라는 전체를 조화시켜 줄 양념이었다. 주연과 조연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조화시켜서 이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 양념의 역할이다. 양념을 잘 사용하면 전체적으로 강약을 활용한 변화와 리듬이 만들어진다. 나는 양념이 주연만큼이나 대단한 존재라는 걸 코리우스를 통해서 깨닫게 됐다.

 헹잉바스켓은 어쩌면 변수가 많은 고차방정식같은거다.
헹잉바스켓은 어쩌면 변수가 많은 고차방정식같은거다. 유신준

시뮬레이션 과정이 끝나면 설계가 끝난거다. 이제 심는 일만 남았다. 나는 시행요강에 지정된 대로 아래쪽에서부터 심으면서 배양토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심을 때는 화분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뿌리 흙을 적당히 덜어내고 줄기도 정리한 다음 슬릿에 밀어넣으며 심는다. 배색 구상이 시간을 잡아 먹는 과정이지 그걸 실제로 심는 작업은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선배들이 옆에서 수험생들이 심는 것을 보며 조언을 해줬다. 아래쪽은 조금 아래를 향하게 하고 위쪽은 좀 더 위를 향하게 함으로 전체적으로 둥근 돔형을 이뤄야 한다. 키우면서 중간 손질을 할 때도 둥글게 둥글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실기시험의 심사요건이다.

우리처럼 선배 서포터들이 없으면 모든것 스스로 판단하며 진행해야 한다. 훗날 실기 시험장에서 한 눈에도 초짜티가 줄줄 흐르는 소박한 작품들을 수 없이 봤다. 경험도 없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으면 그게 당연한 결과다.

내가 만약에 마스터 자격을 따게 된다면 그건 아카시부인의 공로다. 헹잉바스켓이 주연과 조연, 양념으로 하나의 작품을 이루듯 인간세상도 주연이 저 혼자 잘나서 작품을 이루는게 아닌거다. 시험과정을 통해서 사람사는 이치를 많이 깨달았다. 배운만큼 느끼고 경험한 만큼 보이는 법이다.

실기작품은 같은 재료로 배치를 달리하며 2개를 만들었다. 시험날까지 앞으로 한달동안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예비후보를 하나 더 만들어 두려는 것이다. 실기 기초 작업이 모두 끝났다. 선배들의 지도는 받았지만 내 손으로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뿌듯했다.

아카시부인이 실기작품을 키우는 동안 헹잉바스켓을 걸어 둘 스텐드까지 준비해왔다. 시험준비 과정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 조상들이 도대체 나라를 얼마나 구하셨기에 내가 이렇게 타국에서까지 복을 누리는 것인지.

실기 작업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심어놓은 초화류들이 키우는 사람의 보살핌을 받으며 상상한 대로 자라줘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 남아 있다. 그래서 시험 실기 최종평가를 초화가 성장한 완성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마스터 시험이 만만치 않다고 소문난 이유가 여기 있다.

헹잉 바스켓은 어쩌면 변수가 많은 고차방정식같은거다. 함께 심는 식물의 상생조건에서부터 식물모양, 배색, 질감에다가 키우는 사람의 손길이 더해진다. 거기에 식물이 자라는 동안 자연조건까지 모든 변수들이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본인블로그 일본정원이야기 (https://blog.naver.com/lazybee1)에도 실립니다.요세우에 용어 정리 : 독자들께서는 헹잉바스켓과 요세우에라는 단어가 종종 섞여 나와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잠깐 정리하자면 요세우에는 초화류를 하나의 화분 안에 모아심는 걸 의미한다. (요세우에=모아심기) 그런 의미라면 헹잉바스켓도 모아심는 거니까 요세우에의 범주에 든다. 그런데 요즘은 바닥에 놓는 화분에 모아심는 형식만 요세우에라 부르고 있다. 헹잉바스켓은 바닥에 두지 않는다. 벽에 걸거나(일본쪽 경향) 공중에 매다는(서구의 경향) 형태다. 그러므로 요세우에와 헹잉바스켓은 뿌리는 같지만 다르다.
#헹잉바스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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