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테라스의 정경 산이 가깝습니다. 도시에서와는 또다른 여유에요.
전명원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보내는 올해의 추석 아침, 눈을 뜨자 창밖엔 푸른 산이 가득했다. 전날 오후 내내 흐리고 비가 내렸는데 미스트 같은 실비였다가, 처마에 도도독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빗줄기였다가 했다. 기온은 뚝 떨어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강원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낚시를 취미로 갖게 되면서부터 자주 찾는 친근한 곳이 되었다. 그 덕에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에 일주일짜리 강원도민으로 살아볼 마음도 먹게 된 것이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길다. 빨간 날이 일주일이나 연속되어 있다. 10월 10일에 월차를 낼 수 있는 직장인이라면 최대 열흘까지도 쉴 수 있다. 어딘가 멀리 떠나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국내에서 일주일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결국 우리 가족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여행보다는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도 그저 머무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두 달 전부터 미리 펜션을 예약했다. 그리곤 연휴 첫날 이른 새벽, 일주일 치 먹거리와 생활용품 등을 차에 싣고 나섰다.
어린 시절부터 추석 풍경은 늘 비슷했다. 엄마는 며칠 전부터 시장을 다녔고, 차례상에 올릴 나물을 다듬고, 새 김치를 담갔다. 추석 전날이면 하루 종일 전을 부치느라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했다. 껍질을 깎아놓은 밤알을 몰래 한두 개씩 집어 먹다가 혼나기도 했다. 엄마는 그렇게 매해 차례상을 준비했다. 어른들이 무언가 크고 작은 선물을 들고 오셔서 그걸 풀어보는 재미가 좋았고, 엄마가 해준 갈비찜과 송편, 그리고 토란국을 먹는 것은 매해 당연했다.
결혼한 이후에도 추석은 비슷했다. 친정에서는 대부분 엄마가 음식을 준비하는 걸 구경하는 딸이었지만 며느리는 그럴 수 없었다. 전을 부치고, 음식을 도왔다.
이제 양가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그나마 몇 없는 친척들과는 왕래가 거의 끊겼다. 형제들은 멀리 이국에 산다. 친정도, 시댁도 사라진 셈이니 이제 명절이 되어도 그 어디로도 갈 일이 없다. 찾아올 사람도, 인사하러 갈 곳도 없으니 미리 성묘를 마치고 나면 추석은 그저 긴 연휴로 남는다. 당연하던 풍경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고, 그저 그리운 마음으로 떠올리는 추억 속에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쓸쓸하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다.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생각도 든다. 추석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사람은 계속 바뀌고, 시대는 변하니까 추석의 풍경도 같을 수가 없는 것 아닐까.
마치 산장처럼 산 중턱에 올라앉은 펜션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느새 봉평에서의 네 번째 날이며, 추석 당일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니 전날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진 느낌이지만 상쾌한 강원도 산골의 공기가 좋았다. 주변엔 인가도 거의 없고, 그저 높은 산과 비탈에 자리 잡은 밭이 하나 가득 눈에 들어온다. 눈앞에 가득한 높은 산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말한다.
"이런 추석도 나쁘지 않네."
추석이면 다른 건 몰라도 보름달 만큼은 꼭 한 번씩 올려다봤었다. 어린 시절부터 검은 밤하늘에 쟁반같이 둥그렇게 떠오른 추석 보름달에 소원을 빌었다. 그것은 추석의 이미지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봉평의 산골짜기에서 맞이하는 올해 추석엔 하루 종일 실비가 흩뿌리는 중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 보름달을 보기는 어렵겠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오늘 밤 사방이 천근의 어둠에 잠기는 산속에 해가 지고 나면 해마다 추석에 그랬듯 오래도록 밤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이다,
비록 보름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추석의 보름달에 소원을 빌던 그 마음이면 꼭 보름달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많은 것이 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추석도 구름에 가렸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는 보름달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며, 글을 씁니다. 나름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공유하기
산골에서 맞는 추석 아침 "이런 추석도 나쁘지 않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