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책 표지
문학동네
반세기 전 우리와 오늘의 그들 사이
백수린이 등단 12년 만에 썼다는 소설 <눈부신 안부>다. 이 소설 마지막에 달린 작가의 말은 "노동력을 불렀더니 사람이 왔네 Wir riefen Arbeitskrafte, und es kamen Menschen."라는 유명한 구절로부터 시작한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쓴 이 문장은 노동계약 연장 불발로 강제송환 위기에 처했던 파독한국인 노동자들이 1973년 체류권 연장 투쟁에 나섰을 당시 앞세운 구호로 널리 알려졌다.
"얼마 동안이나 더 사람들이 물건처럼 이리저리 보내져야 하는가. Wie lange noch sollen menshen wie Waren hin- undhergeschoben werden"라는 문장 또한 이때 널리 쓰인 구호라고 전한다. 이 문장들은 그대로 <눈부신 안부>를 지탱하는 기초가 됐다. 1960~70년대 독일로 보내진 여성 간호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선진국 반열에 든 오늘날 한국이 마땅히 기억해야 할 목소리를 전한다.
주인공은 해미, 한 신문사에서 기자를 하다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고 있는 젊은 여성이다. 그녀는 13살 때 엄마, 동생과 함께 이모가 있는 독일 G시로 이주해 지내다 2년 만에 돌아온 일이 있다. 아빠는 한국에 남고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독일로 간 것인데, 여기엔 아픈 사연이 자리한다. 본래 해미에겐 언니가 하나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는 없기 때문이다. 독일로 가기 전 어느 날인가 학교에서 조퇴해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가스폭발사고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맏딸의 죽음 이후 전과 달라진 집안 분위기가 모두를 숨막히게 했다. 거듭된 다툼 속에서 엄마는 독일에서 신학공부를 하기로 했다. 아빠는 부산에서 일을 하며 돈을 보내기로 했다. 이게 해미가 2년 간 독일에서 지내게 된 사연이었다.
어린 나이에 다른 나라로의 이주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도 어린 해미의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어 떠난 것이 아니었고 돌아올 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인간이란 어디서든 적응하고 마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해미는 친구들을 사귄다. 한수와 레아, 독일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 피가 섞인 이들이 해미와 친구가 된다.
우리와 우리 아닌 것들을 이으려는 노력
소설은 해미가 이들과 함께 어른들은 모르는 비밀스런 과제를 수행하던 이야기를, 다 자라 한국에서 살아가는 오늘의 이야기에 덧대어 풀어간다. 해미에게 독일에서의 2년은 단절되고 밀봉된 상자 같은 것인데, 우연한 계기로 그 봉인을 뜯어 과거를 현재 안에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제게 다가와 호감을 보이는 남자 우재와의 관계가 타인을 제 안에 들이지 않으려 드는 해미의 태도로 인하여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가운데, 꽁꽁 싸매두었던 제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이 해미로 하여금 저의 오늘을 새롭게 돌아보도록 이끈다.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오늘을 치유하는 통상의 성장드라마와 얼마 다르지 않은 이 소설이 남다른 의미를 갖는 건 소설 속 해미의 이모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다. 소설은 독일에서 만난 해미의 진짜 이모를 비롯해, 그곳에서 이모처럼 가까이 지냈던 이모의 친구들 모두가 파독간호사라는 설정을 두고 있다. 박정희 정권이 독일로부터 차관을 들여오기 위해 보증격으로 파견했던 광부와 간호사 중 간호사들이 소설 속 해미의 이모들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수도 없이 다뤄져 온 파독간호사이지만, 백수린은 그를 그저 '가난'과 '희생', '애국'의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고의 수고를 한 듯 보인다. 그 결과로써 소설엔 해미와 친구들이 남몰래 첫사랑을 찾아나서는 문학소녀 선자 이모, 집에 돈을 보내는 대신 승용차를 뽑고 독일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마리아 이모, 머리를 짧게 깎고 겨드랑이 털을 기른 강성 페미니스트이자 각종 사회운동에 열심인 말자 이모, 가족을 위해 묵묵히 저를 희생하고 마침내 의사까지 되어 이주노동자를 돌봐온 큰이모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간호사 캐릭터가 등장한다.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독일문학이 좋아서 파독간호사의 삶을 선택한 이가 있고, 저를 옭아매는 한국의 보수성이 싫어서 감시할 이가 없는 독일로 떠나온 이도 있다. 그간 외화를 벌어오는 산업역군이자 이역만리 타국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하는 안쓰러운 젊은이로 다뤄졌던 이들이 제각각 생명력을 얻는 기적이 이 작품 안에서 빚어진다.
<눈부신 안부>는 해미가 과거의 사건을 직시함으로써 제 내면의 상처를 돌아보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흘러간다. 그 계기가 되는 것은 미처 뜯지 못했던 누군가의 편지이고, 엄두가 나지 않아 내던져두었던 미완의 과제이다. 불현 듯 찾아온 과거의 기억을 그저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다시 껴안은 용기와 책임감, 또 성실함이 해미로 하여금 오늘의 문제를 풀어내고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이끈다. 말하자면 성장이고 변화이며, 그에 필요한 용기다.
모두에게 삶이 있다, 그 당연하여 무시되는 진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소설이 다루는 파독 간호노동자들의 삶, 그 자체다. 독일에서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독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고생하다 한식 한 끼를 겨우 챙겨먹었다고 의사로부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는 말을 들은 사연은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서러움이 폭발한다. 의지할 곳 없는 20대 초반 젊은 여성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자고 약속하는 장면은 대견하기 짝이 없고, 간호사들이 처음 한 데 모여 김장을 하고 뒷마당을 파서 항아리를 묻는 순간은 즐겁고 애틋하다. 그와 같은 모습들 속에서 나는 반세기 전 파독노동자만이 아닌 오늘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을 떠올린다. 한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저들의 문화를 나누고 결속을 다지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 왔는지를. 그를 정다움이 아니라 보기 불편한 것으로, 심지어는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다. 선자 이모와 말자 이모, 마리아 이모와 또 다른 많은 이모들이 그러했듯, 서로 다른 배경과 사연을 지닌 인간들이 독일에 왔다. 그저 독일에서 외화를 벌어간 외국인 일꾼이 아니다. 각자의 수고와 지식으로, 그 인간됨됨이로써 독일사회에 기여하고 살아갔다. 소설은 말한다. 사람이란 그저 노동력쯤으로 대우되며 물건처럼 이리저리 보내져선 안 되는 존재라고. 그러나 여적 우리는, 또 소설 속 기자로 버텨내지 못하였던 해미 또한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물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희망을 바라게 되는 건 소설이 끝끝내 기대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오가는 마음, 곧 다정함 덕분일까. 1970년대 독일의 경제상황이 악화된 뒤 병원이 외국인 노동자의 계약을 연장해주지 않아 한국 간호노동자들이 강제송환 위기에 처하는 상황은 소설 가운데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간호노동자들은 이를 슬기롭고 용감하게 극복한다. 체류권 투쟁을 벌여 끝내 체류권과 영주권 관련 법안개정까지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 아닌 이들이 기꺼이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이 특별한 감상을 자아낸다. 병원 청소일을 하던 터키계 아이샤 아주머니가 서명지를 가져가선 터키인 여덟의 서명을 받아주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이런 마음이 모여 노동자가 물건도 노동력도 아닌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를 해보게도 되는 것이다.
소설은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 가운데> 속 문장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Alles ist noch unentschieden. man kann werden, was man will"를 또한 의미심장하게 인용한다. 정말이지 그렇다. 아직 아무것도 정말로 결정되진 않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선택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 또한 마찬가지. 한국은 지금보다 나은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 안의 그들을 우리 안의 우리로 포용하는 과정을 통해서다. 매년 수십 명씩 숨지는 노동자들, 병들고 다친 채 자국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 이들, 또 결혼하여 입국해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하고 그 삶을 껴안는 과정이 필요하다.
<눈부신 안부>는 반세기 전 독일의 한국 노동자들과 오늘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같은 시선에서 바라보도록 이끈다. 그 시절 한국 노동자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오늘 이주노동자에게도 귀한 마음들이 깃들어 있음을 알도록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전하는 '눈부신 안부'는 반세기 전 한국 노동자만이 아니라 오늘의 한국 내 이주노동자에게 닿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 안부에 기꺼이 답하고 싶다. 정말이지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은이),
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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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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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의 이주노동자와 반 세기 전 독일의 한국 노동자... 이 소설이 그 닮아 있음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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