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앞두고 이순신 묘를 찾은 까닭

이순신 장군 묘소에서 올린 '취직 신고'

등록 2025.10.08 11:19수정 2025.10.0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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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지방에 있는 터라, 평일에는 지방에 머무르다 금요일만 되면 본가가 있는 서울로 올라가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 2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서는 오전 근무만 한 뒤 퇴근했다. 연휴를 맞아 도로가 막히기 전에 서둘러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로 가기 전,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서울과는 반대 방향에 위치한 곳이었다. 차를 끌고 30분 넘게 달려 도착한 곳. 충남 아산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묘소였다.


추석 앞두고 이순신 장군 묘를 찾은 이유

나는 어릴 적부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계기로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삶에 반해, 그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존경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인들 중에 이순신 장군을 흠모하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러나 나의 '이순신 사랑'은 유별난 편이다. 이순신이 좋아서 대학에서도 역사를 전공했고, 이순신처럼 되고 싶어서 취미 생활로 전통활쏘기(국궁)를 즐기고 있다. 국궁을 시작한 후로는 매년 이순신의 발자취가 서린 통영 한산도로 습사(활쏘기) 여행을 떠나고 있다. 이순신의 삶과 정신을 보다 농밀하게 느껴보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는 <난중일기> 원문을 매일 필사하고 있다. 조만간 <살짜쿵 활쏘기>라는 제목의 국궁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인데, 내 생애 첫 단행본이 될 이 책에서도 챕터 하나가 통째로 이순신 이야기일만큼 이순신에 대한 나의 애정은 각별하다.

 한산도 제승당 '한산정' 활터에서
한산도 제승당 '한산정' 활터에서 김경준

이토록 이순신을 좋아하니, 추석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의 묘역을 찾아 인사드리는 게, 얼핏 보면 특별할 게 없는 행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번 성묘는 나름대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바로 새 직장을 잡은 후 처음으로 장군을 찾아뵙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나는 지방의 한 박물관에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취직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석사과정 시절부터 무려 열 군데가 넘는 기관에 이력서를 냈으나 번번이 낙방했던 것이다. 지금 들어간 직장 역시 2년 전에 이미 한 번 지원했던 곳이었다. 그러나 최종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재도전 끝에 마침내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께 올린 '취직 신고'

"장군님, 저 드디어 취직했습니다!"


장군의 묘소를 찾은 날은 3개월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마침내 정규직으로 전환된 날이기도 했다. 아직 종이의 잉크도 마르지 않은 따끈따끈한 임용장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허리 숙여 인사를 드렸다.

 이순신 장군 묘
이순신 장군 묘 김경준

감개무량했다. 사실 새해 첫날에도 장군의 묘를 찾았다. 물론 그때만 하더라도,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곳을 다시 찾아 취직 신고를 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묘역 참배를 마친 후, 곧바로 이순신 장군을 모신 사당 '현충사'로 향했다. 묘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장군의 영정 앞에 똑같이 임용장을 올리고 향을 사르며 다시 한번 인사드렸다. 인사를 마친 뒤에는 현충사 경내에 위치한 '활터'를 찾았다. 이곳은 청년 이순신이 무과시험을 준비하며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현충사 내에 위치한 '활터'
현충사 내에 위치한 '활터' 김경준

활터에 서서 저 멀리 과녁을 바라보고 있자니 또 한 번 감상에 젖었다. 올해 1월 1일 이곳을 찾아 느꼈던 감상을,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소개한 바 있었다(※ 관련 기사 : https://omn.kr/2bqn2 )그때 내가 느꼈던 심경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1572년(선조 5년) 28살 청년 이순신은 무과시험을 치르던 중 낙마하여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낙방 후 다시 활터에 선 청년 이순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본인이 누란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고, 백세토록 한민족의 존경을 받는 성웅(聖雄)이 될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당장 다음 무과시험에 합격할 자신이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곳 활터에서 매일 같이 활쏘기를 연마하며 노력한 끝에 4년 뒤 32살의 나이로 식년시(式年試) 무과에 병과(丙科) 4등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민족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내 나이도 어느덧 33살이다.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한 나이를 넘어섰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전업 대학원생으로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남들은 다 취직하여 자리잡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나이에, 나는 여전히 '언제쯤 졸업할 수 있을지', '졸업 후 취직은 어떻게 할지' 기약 없는 미래를 바라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해 첫날, 청년 이순신의 활터에 서서 다짐해 보았다. 온갖 시련과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끝끝내 나아가 마침내 영웅이 된 이순신처럼, 나 역시 스스로를 믿고 더 열심히 정진하리라. 그 순간 청년 이순신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그동안 지원하는 곳마다 번번이 낙방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지원했던 곳에서조차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심한 좌절에 몸부림치며 세상을 저주하고 원망했다.

극심한 자괴감과 분노에 잠식되기 직전, 나를 붙잡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순신이었다. 포기와 좌절 대신 희망과 도전 등의 가치를 일깨워준 이순신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용기를 냈고, 절치부심한 끝에 마침내 이루던 바를 성취할 수 있었다. 우스개소리같지만 사실 이순신 장군 덕분에 취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충사 본전의 이순신 장군 영정
현충사 본전의 이순신 장군 영정 김경준

이번 성묘는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실 이번이 두 번째 직장이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직장생활이거니와, 원래 다니던 직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기관에 들어와서 아직은 어안이 벙벙하다.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직무도 서툴고 동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숙하고 어리바리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순신의 삶을 생각하며 다짐했다. 변방을 떠돌며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던, 때론 좌절과 역경을 겪기도 했지만 마침내 극복하고 전설이 된 사나이 이순신. 언제나 당신처럼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며 나의 초심을 잊지 않겠노라고.

이순신, 그는 나의 영원한 멘토다.

#이순신 #현충사 #활쏘기 #한산도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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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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