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년된 소나무 우뚝 선 소나무가 마음의 평화를 준다
김태리
입장권을 건네며 환영 인사를 전하고, 짧은 감사의 말로 손님을 맞이한다. 단 몇 초의 대면이지만, 그 순간의 미소와 인사에는 묘한 에너지가 있다. 스스로 '오트로버트(autrovert, 공식적인 단어로는 ambivert)'(기존의 외향적(Extrovert)과 내향적(Introvert) 성격 유형 외에, 내향적이지만 사회적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새로운 성격 유형으로 제안된 개념) 유형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이런 짧고 단정한 소통은 딱 맞는 리듬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집에서만 작업하던 루틴이 무너지고, 일과 생활의 경계가 흐려지던 시점에 '출근'이라는 규칙적인 리듬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다. 그리고 첫 출근이 추석 연휴였다.
모두가 귀향 준비로 분주하던 시기, 나는 처음으로 "명절 알바"라는 걸 시작했다. 새로운 일터에서 명절을 맞이한다는 게 조금 낯설고, 가족들과 시간을 오롯이 보내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입장하는 관광객들의 밝은 미소와 함께 "명절인데 수고많으십니다!" 하는 인사를 받을 때면 보람도 함께 느껴졌다.
명절 첫 근무, 그리고 빠른 적응
명절 시즌이라 관광객이 많았다. 제주를 찾은 가족 여행객, 연인, 친구들,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들어왔다.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지만, 덕분에 금세 리듬을 탔다. 티켓을 건네고, 인사를 하고, 미소를 짓는 일은 생각보다 잘 맞았다. 짧은 대면이지만, 사람들과 주고받는 인사 속에서 힘이 생겼다.
"수고 많으세요."
"명절인데 일하시네요."
이 짧은 말 한마디들이 모여 낯선 공간 속 나에게 응원을 보내주었다.
처음으로 명절에 출근해 일하며 느낀 건, '누군가의 하루를 돕는 일'이 꽤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작은 매표소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내가 건넨 미소 하나, 짧은 인사 하나가 제주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사업만으로는 아직 불안하다'는 솔직한 현실
창업 초반 (여전히 초반이지만) 나는 굿즈 제작, 콘텐츠 기획, 챌린지 운영을 하며 "이 일 하나로 충분히 버텨보겠다"는 패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보다 녹록치 않았고, 숫자는 냉정했다. 고정 수입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큰 불안이었다.
하루 종일 일해도 통장 잔고는 늘 스치듯 가벼웠고,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점점 많아지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남편과의 대화 끝에 결심했다. 꾸준히 내 일을 하기 위해선, 내 삶을 지탱할 기반부터 세워야 한다. 그게 바로 주 3일 알바였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사실 처음엔 망설였다. '사업한다고 해 놓고 이제 알바를 해?' 주변의 시선도 걱정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창업자라는 타이틀 뒤에서,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 내 용돈은 내가 벌기로 했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네, 저는 개인사업자이자 주 3일 알바생이에요. 여러분, 저 투잡합니다!'
솔직하게 글로도 말로도 뱉고 나니 생각보다 더 시원했다.
출근이라는 루틴, 다시 찾은 리듬
집이 곧 작업실이다 보니 하루의 경계가 모호해졌었다. 청소와 아침 운동을 마치면 벌써 오전이 훌쩍 지나 있고, '조금만 쉬자'며 잠깐 눕다 낮잠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일은 밤으로 밀리고, 저녁 준비는 남편의 몫이 되기 일쑤였다. 그런 나에게 '출근'은 새로운 리듬을 선물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일정한 장소로 향하고, 사람들을 맞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단순히 '돈을 벌러 나가는 일'이 아니라, 이건 '삶을 다시 세우는 루틴' 이 되어주었다. 출근이라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시 사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내 자리에서 보는 세상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티켓을 건네받고 웃으며 지나간다. 나는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하고 인사한다. 그 몇 초의 순간이, 이상하게 마음을 환하게 만든다.
이제 막 시작했지만, 이미 배운 게 많다
아르바이트를 막 시작한 지금, 모든 게 새롭다. 손님에게 인사할 때의 어색함, 점심시간에 마주 앉은 동료들과의 짧은 대화, 하루가 끝난 뒤 퇴근길의 뿌듯함까지. 무엇보다 '일'이라는 행위가 주는 소속감과 안정감이 있다.
매주 월·화·수,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며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 이 루틴 덕분에 나머지 4일 동안은 창업자의 마음으로, 창작자의 시선으로 내 일을 이어간다.
나는 여전히 창업자이다. 누군가 "요즘 일은 잘돼요?"라고 묻는다. 이전처럼 패기 있게 "그럼요!"라고 대답하는 목소리 볼륨은 조금 줄었지만,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제 막 다시 시작하는 중이에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배우고 있어요."
그 말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조금 느리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이 길은 반드시 잘 될 거라는 걸 믿고 있다. 처음으로 명절을 일하며 맞이한 올해의 가을, 붉게 물든 하늘이 참 고왔다. '누군가는 휴식을, 누군가는 여행을 떠났겠지만, 나는 지금 내 인생의 또 다른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주 3일의 알바는 나에게 생계와 삶의 의미를 동시에 준다.

▲퇴근 길 아름다운 일몰이 집까지 안내한다. 서쪽 퇴근길의 행복
김태리

▲한라산 아래 퇴근 길 한라산 굽이가 매일 배웅해준다
김태리
일터와 작업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머릿속으로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할 창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매표소에서는 밝은 미소로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온라인에서는 내 브랜드의 고객들과 마주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일을, 나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 퇴근길에는 한라산 굽이굽이가 나를 배웅해준다. 서쪽으로 붉게 물드는 일몰은 하루의 수고를 다독여 준다.
아침엔 입장 전의 고요함을, 저녁엔 모든 손님이 다녀간 뒤의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일. 이 자연 속에서 일한다는 건 참으로 큰 축복이다.
명절에도 근무 중인 모든 근로자들에게,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하루를 버티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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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와 그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
제주에서 달리고, 쓰고, 만들며 작은 일상을 기록합니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창업한 <그마음굿즈>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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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명절 알바, 자존심은 밥값을 벌어주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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