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재란 때 맨몸으로 왜적에 항거했던 일곱 명의 의사를 모셔놓은 석주관 칠의사 지붕 위로 가을 하늘이 맑게 떠 있다. 2024년 8월 9일.
하지권
1597년 6월 4일,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며 구례에 들어와 하룻밤 자고 도원수 권율(1537~1599)을 만나러 순천으로 떠난 사이, 구례 현감 이원춘(?~1597)은 으레 그랬듯 하루도 빠짐없이 토지면 석주관성에 나가 산성을 방비하고 있었다. 적을 맞이할 구례의 전진기지였으므로 그 중요성은 현감으로서 통감하고도 남았다.
'적은 반드시 저 섬진강 물길과 이 외길로 들어와 남원으로 들어갈 것이다.' 이원춘 현감은 그렇게 생각했다. 진주성이 무너졌으므로 이제 호남으로 들어가는 동쪽 관문은 남원성이었다. 하동에서 바로 섬진강을 건너 여수와 순천으로 쳐들어가는 방법이 있었으나, 그 바다는 이미 이순신의 바다였다. 장군은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을 경남 거제도 옆 한산도에 전진 배치시켜놓고, 왜 수군을 부산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게 묶어놓고 있었다. 이미 남해에서 18전 18승을 일궜던 이순신은 이름만으로도 적을 주눅 들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석주관 성벽에 올라서서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본다. 구례를 지나온 강은 지리와 백운 사이로 자신의 몸을 비틀며 날렵하게 남해로 빠져나간다. 그 강에 땅거미 내려앉고 있다. 저물녘 들판에서 하루 일을 끝낸 구례의 농부들은 저 강물에 삽을 씻겠지. 그러고는 따스한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테다. 평화나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이런 것이다. 아무 일 없는 일상. 먹을 걱정 크게 없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
그러나 428년 전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왜적과 명나라 외군이 조선 땅을 활개 치며 돌아다녔고, 조선의 왕은 존재감이 신통치 못했다. 백성을 지키는 건 나라가 아니라 백성 자신들이었다. 관군은 적과 싸워 이렇다 할 승기를 잡지 못했고, 뿔뿔이 흩어져 통신도 잘 닿지 않았다.
'호남 살육 전쟁'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정유재란은 호남을 주 타깃으로 삼은 전쟁이었다. "호남에 살아 있는 건 개나 돼지까지도 죽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는 1597년 3월 조선에 진출해 있는 장수들에게 이 같은 명령을 다섯 차례나 하달한다. 지난 임란 초기 부산으로 상륙해 한양과 명나라만 보고 직진하다시피 하느라 옆에 있는 호남을 상대적으로 간과했다. 그 결과 수많은 의병장들이 호남에서 발기해 전국 곳곳에서 왜군과 맞선 바 있다.
이순신과 이원춘,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서시천과 섬진강이 읍내를 감싸고 돌아 예부터 물산 풍부하기로 소문났던 구례. 그러나 그때엔 강이 물길 역할을 해 적을 이롭게 하기도 했다. 2025년 9월 5일.
한상무
그렇다고 괜찮은 관군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전북 웅치‧이치전투에서 맹활약하고,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순국한 남원 사람 황진(1550~1593) 장군이나,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 우연히 수장을 맡아 항전했고, 이후 왜군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던 김시민(1554~1592) 장군 같은 이들이었다. 남해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던 이순신 장군이야 두말할 것 없고.
그리고 구례 현감 이원춘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도체찰사(비상시에 군대를 지휘하는 최고 지휘관) 정철의 명령으로 전라좌도의 병력 5천을 이끌고 영남 의병장 정인홍, 호남 의병장 최경회 등과 성주성을 협공했고, 제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그의 아들 이인민과 함께 김시민 장군을 보위하기도 했을 정도로 전장에서 맹활약한 그다.
그 뒤 도체찰사 이원익(1547~1634)은 그를 조방장에 임명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구례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지키도록 명령했다. 1597년 6월 22일 권율을 만나고 순천에서 돌아온 이순신이 구례를 떠나는 7월 4일까지 13일 동안 매일 이원춘과 만나 향후 전개될 정세 예측과 조선군의 전략을 의논한 것도 이원춘의 실전 감각을 높이 산 까닭이리라.
아마도 그는 장군에게 호남의 관문인 구례와 석주관성의 지리적 중요성에 대해 그동안 연구한 바를 소상히 알렸을 것이다. 구례뿐이었을까. 구례를 알려면 섬진강 물길을 알아야 했고, 지리산의 지형을 알아야 했다. 섬진강은 왜적의 주요 통로였다. 당시에는 강이 길 역할을 했다. 섬나라 일본의 수군은 물길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섬진강을 알려면 또 남해를 알아야 한다. 바다에서 섬진강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하동과 광양이 있고, 순천과 여수가 있다. 이순신은 지난 7년간 그 바다를 누비며 수많은 전쟁을 치러왔다.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뒤 헤어진 두 사람은 그러나 자신들이 불과 70여 일 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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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도 되지 않는 자본의 권력가를 위해 99%의 희망 없는 삶으로 지내왔던 지난 날을 통렬히 후회하며, 조금더 나은 삶을 찾아 보고자 지리산과 섬진강 도도한 전남 구례로 이사 왔습니다. 농사도 짓고, 여행도 하면서 사는 일상이 흥미롭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결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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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정성 다 바쳐 구례 지킨 착한 무장 이원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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