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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10.09 17:16수정 2025.10.09 17:16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추석 연휴를 맞아 사흘 밤을 주무시고 가셨다. 우리 아파트 정문 맞은편, 지근거리에 계시지만, 출퇴근으로 바쁘면 마음의 거리가 훌쩍 몇 주를 건너뛸 때도 있다. 다행히 수원에 사는 둘째 시동생 내외가 번갈아 살뜰히 살피니 믿는 구석이 있는지라 수고로움이 덜하다.
집에 들어서자 강아지가 짖는다. 손님맞이가 익숙하지 않은 강아지의 첫인사에 우리 가족은 늘 긴장하는데, 강아지가 어머니의 냄새를 맡은 후 금세 꼬리를 치며 낑낑거려 모두 웃었다. 어머니도 강아지와 반갑게 인사한 후, 거실을 둘러보며 '이 집 사기를 정말 잘했다'며 당신의 수고를 칭찬하신다. 이 집을 당신이 고르고, 심지어 당신 돈으로 구입했다며 이야기를 이어가신다.
나는 어머니 말씀에 맞장구를 치며 어머니 세상 속으로 고개를 내민다. 어머니는 소위 착한 치매를 앓고 계신다. 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당신만의 세상에 들락거리며 소일하신지 수년이 흘렀다. 처음 진단받았을 때는 충격과 걱정이 엄청났으나 상황을 받아들인 자식들은 현시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요양원에서 만든 작품을 가지고 오셨다. 곱게 칠한 색깔과 꽃, 나무가 예쁘다.
한현숙
지난해 겨울, 당신 혼자 끼니를 챙기지 못하고, 세탁과 위생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즈음 요양원에 입소하셨다. 자식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입소 후 밝아진 모습, 깨끗한 두발과 의생활, 세심한 생활 안내 등으로 오히려 안심과 위안을 삼게 되었다. 80대 중반 나이에 거동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너무나 잘 알기에 혼자 화장실을 다녀오시는 어머니가 그저 기특하시다. 병상에 누워 고생하시던 친정 엄마를 보며 보행과 거동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그 마음은 더 크다.
3박 4일 간 어머니 행동을 묘사한다면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이 딱 맞는 표현이다. 한시도 가만히 계시지 못하고 손과 입을 연신 움직이셨다. 베갯잇 지퍼와 서랍과 모든 상자를 여닫고, 내용물을 정리하고, 줄을 세우고, 옷가지와 이불을 개키었다. 그리고 연신 혼잣말을 하셨다. 30대 아낙도 되었다가, 결혼 전 산골 처녀였다가, 아버님 끼니를 준비하는 저녁때였다가, 동네 계모임에 나가 흥겨울 때였다가. 시간과 공간적 배경이 수시로 바뀌며 서성거리셨다.
남편은 오랜만에 어머님을 위한 노래 감상 시간을 마련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가수, 조미미와 이미자의 LP를 틀어드리자 흥겹게 노래를 따라 하며 박수를 치셨다. 안방에서 울리는 모자의 노랫소리가 정겨웠다.

▲ 아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 어머니는 조미미 노래를 즐겨 부르신다. 물론 이미자도 엄청 좋아하신다.
한현숙
이렇게 평온하셨다가도 어이없는 행동과 끝없는 되뇜으로 우리를 느닷없이 철렁하게 만드셨다. 베갯잇 속 살구씨를 꺼내 공기놀이를 하셨고, 화장실 가는 길을 잃으셨고, 방마다 불을 끄러 다니느라 분주하셨다. 5초 전 하셨던 짧은 질문을 무한 반복하셨다.
올 1월에 돌아가신 아버님 차례상 앞에서도 아버님의 부재를 눈치채지 못하셨다. 매일 아버님 식사 걱정으로 어서 집에 가야 한다를 수 천 번 읊조리시면서 정작 이별의 슬픔을 모르는 어머님 모습이 그저 애달프기만 했다.
추석 내내 비가 오다가 모처럼 햇빛이 들이친 날, 새벽부터 강아지 털과의 전쟁을 치르셨다. 전날 보이지 않던 마루의 털들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자 털을 일일이 줍고 떼느라 분주하셨다. 저러다 행여 넘어지실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강아지를 말동무 삼으며 귀여워하시고 좋아하셨는데, 틈틈이 음식을 간식으로 주려하셔서 우리를 긴장시켰다.
조용한 움직임이었으나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일상의 수고로움과 피곤함이 슬슬 몰려왔다. 밤 동안 배회하시며 이 방, 저 방 문을 여시고, 주무시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어머니 그냥 놔두세요. 만지지 마세요. 여기 앉으세요. 이리 오세요'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면 허허 웃으시며 나를 한번 쳐다보셨다. 예전 그대로 따스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때마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서글퍼졌다.
침대에 눕기를 거부하셔서 바닥에 이부자리를 깔아 드리고 나오는데, '싹싹하기도 하네, 고마워!' 하셨다. 그간 마음은 진심이었으나 말투가 그리 싹싹하지 못한 며느리였기 때문일까? '싹싹하다'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머니께 보다 더 다정한 말투를 건네기로 했다.
소파에 앉아 당신 가방 속 옷가지를 꺼냈다 넣었다 반복하시는 어머니에게 빨래 개키기를 부탁드렸더니 아들 속옷과 양말을 정성껏 챙기신다. 그러더니 당신이 쓰시는 성인용 기저귀를 찾아 '이게 정말 편하고 좋으니 외출할 때 써보라'며 나에게 건네신다. 황당한 슬픔과 함께 예전 어머님이 며느리인 나에게 나눠주던 따스한 정이 소환되었다.

▲ 평생 하시던 살림을 기억하신다. 늘 옷을 개키고 정리하시느라 분주하다. 아들 속옷을 여러 번 매만지며 접고 또 접는다.
한현숙
추석 다음날에는 기름진 음식으로 새콤한 맛이 생각나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오이, 양파 등 채소를 썰고, 열무김치를 곁들이고, 비빔 고추장을 만드니 손이 제법 갔다. 국수를 알맞게 삶아 양념에 버무리고, 맵고 짠 것을 못 드시는 어머니께는 간장비빔국수를 준비했다. 열무비빔국수에 비해 간단하게 그저 간장과 참기름, 깨를 넣어 버무렸을 뿐인데 뚝딱 한 그릇을 비우셨다. 얼마나 맛나게 드시는지 마음이 또 뭉클해졌다.
어머니는 식사 때마다 당신 앞 반찬 접시를 밀어내기 바빴다. 개인용 접시에 담은 음식조차 아들, 손녀 앞으로 좀 더 가까이 가도록 애쓰셨다. '이게 무엇이냐?' 같은 말을 수십 번 질문하고, 넉넉하니 편히 드시라 해도 자꾸 접시를 밀어내니 식사 때마다 성가시고 불편했다.
식구들 걱정소리에 당황하는 어머니 손길과 눈길을 보았다. 그것은 그저 예전대로 자식들 더 먹이려고, 남편 더 챙기려고 습관대로 하던 오랜 행동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저렇게 식탁에서조차 평생 가족을 우선으로 양보하며, 사랑하며 살아오셨구나. 마음이 다시 짠해지는 대목이었다.
3박 4일을 묵으시고 동서가 새로 준비한 겨울 옷가지를 꼼꼼하게 챙기시며 요양원으로 가셨다. 늘 웃는 부드러운 얼굴로 '고맙구나'를 말씀하시며 손을 흔드셨다. 비록 치매로 어리둥절하시고, 깜박거리기 일쑤인 며칠이었지만 여전히 예전의 곱고 부드러운 성정으로 우리를 따스하게 안아준 나날이었다.
어머니가 가시고 집안 곳곳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있다. 소소한 생활용품들을 기발한 곳에 잘 정리해 두셨다. 웃을 일은 아니지만 우리 가족은 때마다 웃었다. 할머니를 추억하는 방법의 차이일 뿐 사랑과 애정이 담긴 웃음이기에 마음을 가볍게 풀기로 했다.

▲ 어머니와의 3박 4일! 후다닥 만든 간장 비빔국수를 참 달게 드셨다. 강아지와의 대화는 어머니의 즐거움이다. 연신 웃으며 예뻐하셨다. 동서가 새로 장만한 겨울옷에 이름 표시를 해 드렸다. 어머니의 따스한 겨울나기를 바라본다.
한현숙
추석 연휴가 끝나간다. 깜짝 놀랄 만한 긴 연휴에 어른의 방학이라며 저마다 기대가 컸던 추석이다. 추석 전날 구름 속이지만 환하게 빛나던 보름달을 보며 여느 때처럼 소원을 빌었다.
이번 추석은 흔히 건네는 덕담처럼 풍성했다. 차례상을 준비했지만 동서와 나눠서 음식을 준비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무리하지 않았더니 스트레스가 크게 없었다. 손님 상 차리기도 두 번을 넘지 않았다. 큰집, 작은집 식구가 모여 어머니를 모시고 식사하고 과일을 안주로 가볍게 담소를 나누니 즐거웠다. 추석 음식의 양도 먹을 만큼만 준비하니 새로 보관하고 처리하는 고충이 없어 냉장고를 보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늘 새벽 출근으로 지친 남편에게 모처럼 큰 휴식의 시간이 되도록 일부러 여행이나 나들이를 계획하지 않고 집에서 보내고 있다. 몸과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니 느긋하고 넉넉하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 추석이었다. 돌아보니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도 함께 3박 4일을 보내는 일은 드물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자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새삼 느꼈다. 남편도 30여 년 만에 엄마와 함께 잠자리에 들어 감회가 새롭다고 한다.
앞으로 맞이할 명절과 노년의 삶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어머니를 보며, 추석을 지내며 생각할 수 있었다. 간단하고 건강하게 마음 편하게 삶의 방향을 잡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욕심 없이 건강하게 무탈한 일상을 바라는 나의 소원을 달님이 꼭 들어주실 거라 믿는다.
어머니처럼 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입버릇으로 삼고, 온화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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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국어 교사,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가족여행, 반려견, 학교 이야기 짓기를 좋아합니다. <엄마를 잃어버리고>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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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계신 어머님이 사흘 밤을 주무시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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