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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이 기자에게 보낸, 시꺼멓게 표시된 편지

한글날 떠오르는 사람, 이오덕·리대로 선생... 우리글 이어 우리말 되찾는 '영원한 한글 독립투사'

등록 2025.10.09 20:14수정 2025.10.10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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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9일 한글날에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이오덕 선생과 리대로 선생이다. 이오덕 선생은 내가 <한겨레신문> 기자였을 때 한 통의 편지로부터, 리대로 선생은 내가 16대 국회의원 때 국회 본회의장 이름패 한글교체 운동으로 인연이 있다.

자기나라 글자를 기리는 '한글날'이라는 게 다른 나라에는 없다. 오직 우리나라밖에 없다. 한글만이 문자를 누가, 언제, 어떤 원리,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우리말은 중국말과 다른 데, 중국말을 표현하기 위한 한자를 그대로 사용해야 하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한글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이유가 얼마나 멋진가.

기본적으로 글자란 말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말을 소리 나는 대로 그대로 표기하는 소리글자인 한글이 뜻글자인 한자보다 소리의 표기 수단으로 적합하고 배우기 쉽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20세기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한글은 꽃을 피우기 시작해 21세기 디지털 시대, 정보화 시대, AI(인공지능)시대에 최고의 글자로 날개를 달고 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합성 원리가 스마트폰의 12개 글자판에서 무한한 마법의 글자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K-pop(케이팝)의 인기와 함께 우리말은 세계인의 말로, 한글은 세계인의 글자로 떠오르고 있다. 한글이 이렇게 활짝 꽃 피울 수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 주시경 선생과 조선어학회, 미국 선교사 호머 헐버트 선생, 한글 기계화(타자기) 선구자 공병우 선생,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의 이오덕·리대로 선생 등 수많은 사람의 노력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이 보낸 편지 한 통

 이오덕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 박도

나는 1988년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인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이며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내가 정치부 기자로 있던 1996년 어느 날 신문사로 편지 한 통이 왔다.


이오덕 선생이 보낸 편지였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이오덕 선생이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한겨레신문> 기자는 없었다.

그 편지를 뜯어보니, 내가 쓴 신문 기사를 자른 부분에 시꺼멓게 '글자 고침' 교정 표시가 되어 있었다. 한자말을 순우리말로 바꿔 쓴 이 선생의 우리말 바로쓰기 교정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신문기사에 '첨탑'이라고 쓴 부분은 '뾰족탑'으로 바꾸고, '식탁'은 '밥상', '주방'은 '부엌'으로 교정했다. 단어뿐만 아니라, '~적(的)', '에 있어서' 따위도 일본말 찌꺼기라고 다른 말로 바꿔서 보냈다.

한글만 쓰는 <한겨레신문>이었지만, 글자만 한글이고 말은 한자어거나 일본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이 선생으로부터 내 기사에 대한 우리말 바로쓰기 교정 편지를 받았다. 이 선생은 <한겨레신문>뿐 아니라, 다른 신문이나 잡지 기사에 대해서도 이런 우리말 바로쓰기 교정 편지를 글쓴이나 편집자에게 보냈다고 한다.

나는 그때마다 부끄럽고 가슴이 뜨끔했다. 당연히 다음 기사를 쓸 때 가능한 쉽고 예쁜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했다. '금일'은 '오늘'로 바꿔 쓰고, '이후'는 '뒤'로 쓰는 등 우리말로 쓰려고 신경을 썼다.

이 선생이 보낸 편지는 오랫동안 보관했었는데, 신문사를 그만두고 정치를 하면서 여러 차례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분실되었다. 너무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한글날이면 어김없이 이 선생을 떠올리니, 이 선생의 가르침은 잃어버리지 않고 내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평생 한자말과 외래어의 쓰나미 속에서 온 몸으로 우리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힘쓴 선생의 가르침은 나에게 '한자어 대신 쉽고 예쁜 우리말로 써라.'는 글쓰기 첫 원칙으로 남았다.

리대로 선생의 국회 본회의장 한글 이름패 운동

나는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반드시 해야 할 몇 가지를 다짐했다. 그중 하나가 국회 본회의장 국회의원 이름패 한글 교체였다.

이대로 선생이 지난 14대 국회부터 국회 본회의장 국회의원 한자 이름패를 한글 이름패로 바꾸는 운동을 벌였으나, 국회의 높은 보수 기득권에 부딪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2003년 10월 새천년민주당에서 분당해 열린우리당으로 가는 중간 정당이었던 당시 통합신당 소속이었다.

당시 통합신당 원내대표는 김근태 의원이었고, 나는 원내 부대표를 맡고 있었다. 드디어 국회 본회의장 한글 이름패 교체를 달성할 절회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김근태 원내대표를 찾아가 설명했다. "근태 형님, 국회 본회의장은 대한민국의 얼굴인데 이름패를 한자로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겁니다. 외국인들이 국회 견학 와서 한자 이름패를 보면 한국은 아직도 중국 한자를 그대로 쓰는 걸로 오해합니다. 당장 한글 이름패로 바꿔야 합니다."

역시, 김근태!였다. "김 의원 생각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야. 바로 하지 뭐. 김 의원이 책임지고 한글날에 맞춰 한글 이름패로 바꾸자고. 어떻게 할지 잘 생각해봐."

나는 바로 한글 이름패 교체 비밀 작전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국회가 거부해온 한글 이름패를 관철시키려면 여론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언론에 나올 만한 대대적인 행사를 벌여 이슈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밀리에 모든 통합신당 의원의 이름패를 한글로 만든 뒤, 2003년 10월 9일 한글날에 맞춰 미리 언론에 보도자표를 배포했다. 미리 만든 한글 이름패를 들고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행사를 벌인 뒤,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도 찾아갔다.

예상대로 한글 이름패 행사는 당시 언론이 크게 다뤘다. 처음 반대하던 박관용 의장은 결국 그해 10월 말 국회의원 자율에 맡기는 결정을 내려, 통합신당 의원을 비롯한 120여 명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한자 이름패를 한글 이름패로 바꿨다. 해방 뒤 처음으로 16대 국회 말에 국회 본회의장 한글 이름패가 등장했다. 그 뒤 국회 상징표지, 국회의원 배지도 한글로 바꾸는 등 국회에 한글화 물결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밀려들었다.

리대로 선생의 오랜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 뒤 리 선생은 나를 비롯해 김근태 원내대표 등에게 한글사랑 감사패를 전달한 것으로 기억한다.

김구의 문화강국은 한글사랑에서부터

최근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다가 기분 좋은 소식이 눈에 띄었다. 오는 11월 14일, 이 선생과 함께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 운동을 펼친 주중식·이주영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이오덕 100돌 기림 한마당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지난 2003년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은 올해로 나신 지 100돌이다.

리대로 선생은 아직도 '광화문 한글현판 달기 운동'을 열심히 펼치고 있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광화문 광장의 6.25전쟁기념관화' 반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오늘 579돌 한글날을 맞아 이오덕·리대로 선생을 생각한다. 나의 한글 사랑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지금 한글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하신 나라의 스승이다.

이들은 우리글 한글을 지키는 데서 나아가 예쁜 우리말을 되찾는 운동에 온 삶을 바친 '영원한 한글 독립투사'다.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강국은 한글사랑에서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나의 페이스북에도 실립니다.
#한글날 #이오덕 #리대로 #국회본회의장한글이름패 #이오덕10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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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세상을 바라보는 창!> 둥근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둥글고, 각진 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모질다. 세상을 보는 창,즉 시각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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