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밥 먹기' 어려운 직장인들, 문제 없습니다

'밥조' 문화를 통해서 본 관계 설정의 어려움... 적정선은 어디일까

등록 2025.10.12 14:01수정 2025.10.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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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적당주의자>를 꿈꿉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여러 중독성향을 관찰합니다.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일개미들의 일상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적당함'을 생각합니다. 행복한 적당주의자가 되기 위한 일상 레시피를 쓰고자 합니다.[기자말]
명절은 가족들과 밥과 정을 나누는 자리다. 며칠 동안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다보니 문득 밥의 의미와 함께 먹는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말을 나누다보니 '밥조'가 대화 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가족들의 눈동자와 와인 잔이 한 데로 모아졌다.

보통의 삶은 밥을 위한 투쟁이다. 나와 가족을 위한 밥벌이는 숭고한 사명임에 틀림없다. 누구든 하루 세끼 혹은 두끼를 먹는다. 그중 한 끼는 밖에서 먹는다. 요즘은 아침을 거르거나 가볍게 먹은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점심은 참고 기다리는 한 끼일 수밖에 없다.


오전 10시 30분이 되면 사무실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함께 점심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임(일명 '밥조')의 총무들. 이들은 그날 그날 점심 장소와 메뉴를 정한다. 구내 식당이 아닌 경우에는 인원을 파악해서 메뉴 예약까지 담당한다.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라 통상 그 팀의 막내가 맡는다.

직장 내 밥조 문화

밥조 총무가 카카오톡에 공지를 띄운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요?' '참석하실 분?' 여차저차 오늘의 목적지가 정해지면 다시 구성원들에게 알린다.

"오늘은 구내 식당입니다. 메뉴는 순두부찌개에 나물 반찬과 깍두기입니다. 12시에 뵙겠습니다."

얼마 전, 함께 일하는 한 직원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마 친하다고 느껴서 말했을 터이다.


"같이 밥 먹는 게 불편한데도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데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그렇다고 매번 빠지는 것도 눈치 보이고요."

"음... 밥조는 의무적인 것도 아니고 거부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마치 팀워크나 인간관계를 거부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긴 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용감하게 거절하고 혼자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사실 스스로도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관계 설정의 경계선의 문제.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점심은 고단한 일상 속에서 누리는 큰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직장인의 3대 즐거울 락(樂)은 월급날, 휴가, 점심이다. 월급은 한 달에 한번, 휴가도 어쩌다 한두 번, 하지만 점심은 매일. 그래서 점심시간이 불편하면 하루의 유일한 즐거움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밥조'는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용어다. 이는 혼자 밥 먹는 풍경이 어색한 조직 문화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관행으로 보인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업무나 팀 단위로 짜인다. 매일 점심을 누구랑 어떤 메뉴를 먹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큰 장점이 있다.

 직장 내 밥조 문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직장 내 밥조 문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inhh11hh on Unsplash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다 보면 다양한 호불호의 캐릭터를 마주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까닭에 밥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함께 하다 보면 점심시간을 통해 자기계발 시간이나 휴식 시간으로 활용하지 못할 수도 있고, 불필요한 대화에 시간을 빼앗기거나 감정과 에너지가 낭비되는 단점도 있다. 업무상 관계가 식탁으로 이어져 끌려가는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혼밥'이 가능하고 편하다면 굳이 모여 밥을 먹는 불편한 상황을 연출할 필요가 있을까? 서로 식사 습관이 다른 이들이 모여 먹다 보면 빨리 먹는 사람들 쪽에 식사 시간이 맞춰질 가능성이 높다. 천천히 먹는 사람들은 덜 먹거나 급하게 먹을 수밖에 없다. 혼자 원하는 음식을 먹으며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상상의 나래로 빠질 수도 없다. 여럿이 모인 밥조는 식당이나 메뉴 선택권도 제한받는다.

아직 여러 공·사 조직에는 이런 밥조가 꽤 유지되고 있다. 한참 전에는 불편해도 속내를 꾹꾹 눌러대던 사람들이 이제는 숨기지 않는다. 이런 관행이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겠지만 점심시간마저 계속 마주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상황이 껄끄러울 수도 있다. 최근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구내식당에서는 '혼밥용'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별도로 팔고 있다. 오전 11시쯤 길게 늘어서서 간편식을 구입하는 직원들을 보면 모여 밥 먹는 상황이 한두 사람의 사소한 불평은 아닌 듯했다.

밥조를 둘러싼 논쟁은 '회식문화 논쟁'과 더불어 조직 내 관계 설정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공동체 문화의 속성이 강한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들일수록 함께하는 모습에 익숙하다. 아직도 혼자 밥 먹는 상황이나 그러한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남아있다. 밥을 모여 먹을 것인지 아닌지가 옳고 그름의 대상은 아니지만 개별 취향이나 선택을 제약하는 문제점은 있다. 생각해보면 '밥'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간의 관계'가 문제 아니었을까.

인간관계의 적정선은 어디일까

최근 주위를 보면 밥조의 고충을 얘기했던 직원처럼 갈수록 '함께 일하고 같이 밥 먹는 일이 어렵다'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의 인간관계가 옳았고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때에는 불편한 상황을 말하지 못하고 거부하지 못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런 표현마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사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시절.

후배이기 때문에 직급이나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까닭일 터다. 당시에는 조직 부적응자나 불평 불만자, 눈치코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혔을 확률이 아주 높다. 서로 갈등 상황에서 밥을 먹고 하룻밤 술 마시며 풀었다는 얘기는 '라떼의 전설'로 회자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관계는 이래저래 어려운 문제다.

명절 밥상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대학 새내기 큰아들이 한마디를 보탰다. 가장 먼저 부딪친 장벽은 역시 동기나 선배들과의 관계 설정이었다고. 아들의 말을 빌자면, 같은 과에 소위 'N수생' 비율이 많아 호칭과 관계가 문제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학번끼리나 다른 학년 사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제 상황이 발생한다고 했다.

돌아보면, 이 문제는 비단 올해 대학 새내기만의 문제가 아닌 한때 새내기였던 모든 기성세대들의 고민이었다. 친구도, 이성 교제도, 선후배들과의 만남도 모두 관계(설정)의 문제다. 경계선 설정이 잘못되거나 틀어지면 양자의 관계는 관계 의존부터 관계 중독, 외톨이나 독불장군이라는 다양한 형태로 변할 수도 있다. 대학에서 다양한 차원의 인간관계를 경험하는 아들에게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도 이유 없이 잘할 필요도 없다. 상대방들도 마찬가지다. 뭐든지 과하면 문제다. 우리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서 관계의 친밀도를 고려하지 않고 소비하는 것은 낭비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하는 인간관계는 피해야 한다. 애정 공동체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밥조도 적당히 내가 불편하지 않을 때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가족들은 '운명적인 밥조'에 속할 텐데, 아무쪼록 추석 명절 밥상 위에 모종의 불편함이 올라와 있지 않았길 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밥조 #관계설정 #관계경계선 #명절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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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아이들과 함께 지구별을 여행하는 행복 탐험가. 부모의 삶과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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